어느 저녁 연장 가방 달그락거리며 집에 들어온 아빠 몸에선 시멘트 냄새가 났다. 발 구린내가 섞였다. 종종 술 냄새, 홍어 냄새가 날 때도 있었다. 그럴 때면 얼굴 벌건 아빠가 까칠한 턱으로 내 얼굴을 부볐다. 땀 냄새가 시큼했다. 싫다고 버둥거렸다. 그게 다 밥 냄새였다. 조경관리 노동자들이 초여름 땡볕 아래 연신 허리 굽힌다. 거름 포대 둘러매고 청와대 앞 너른 화단을 훑는다. 군더더기 없는 간결한 동작으로 거름을 흩뿌린다. 지극한 관심 덕에 잔디는, 또 거기 색색의 꽃과 온갖 풀이 쑥쑥 자란다. 구린내가 진동한다. 뒤편 가족상
천둥소리 크더니 아침부터 비가 요란스럽게 내렸다. 웬 비가 이렇게 자주 오냐며 출근길 사람들이 구시렁댔다. 벌써부터 장맛비 걱정이다. 바람까지 불어 제법 썰렁했다. 옷장 깊은 곳에 넣어 둔 도톰한 소재 옷을 다시 꺼내어 입고 나온 참이다. 가만 서면 춥고 움직이면 곧 덥다. 종잡을 수 없는 게 요즘 날씨다. 행진 나선 해고자들은 출발지점에서 부지런히 비옷부터 챙겨 입었는데 안으로는 노조 조끼, 밖으로는 구호 새긴 몸자보까지 껴입었으니 곧 더울 것을 잘 안다. 가만히 있으면 잊힐 것을 또한 잘 알아 언젠가 한 달여를 굶고, 바닥을 기
집회와 토론회, 대의원대회며 크고 작은 온갖 회의까지 만날 일이 참 많은데 어쩌나. 사람들은 비대면 시대를 사느라 모니터 앞에 자주 선다. 클릭 몇 번이면 저 멀리 반도의 끝에, 또 지구 반대편 사는 누군가와 실시간으로 연결된다던데, 그 모든 편리한 기술이라는 게 나한테는 먼일이었는지 껌뻑껌뻑 먹통 화면만을 바라볼 일이 잦다. 컴퓨터 좀 만진다는 척척박사 능력자들이 어디에든 한 명쯤은 있어 앞자리 나서 보는데, 이게 또 뚝딱 풀리질 않는다. 화면이 나오면 소리가 문제, 소리가 됐다 싶으면 또 뭐가 말썽이라, 토론회 시작도 전에 해결
코로나 시대에도 할 말은 차고 넘쳐 기자회견이 잦다. 여럿이 모여 큰 목소리 내는 집회는 언감생심, 그러니 그 자리 현수막과 마이크, 스피커가 ‘열일’을 한다. 배터리를 탑재한 무선 마이크 시스템이 전기 끌어오는 노력과 발전기 소음이며 엉킨 선 푸는 고생 따위를 없앴으니 신통방통한 일이었다. 크기도 작고 소리가 우렁찼다. 그 손잡이에 단결투쟁 머리띠를 감을 만했다. 노조마다 하나씩, 필수품 자리를 꿰찼다. 기술의 발전은 분명 편리함을 가져왔다. 그러나 쉽게 해결하기 힘든 온갖 골칫거리도 함께 왔으니 마냥 좋지만은 않다. 기자회견 옆
아시아나케이오 해고노동자 기노진씨가 29일 오후 건강 악화로 병원으로 후송되고 있다. 단식농성 17일 만이다. 해고자 김정남씨가 천막 안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30일 정년을 맞는 김씨는 단식농성을 이어간다. “착잡하다”고 정년을 맞는 소감을 남겼다. 중앙노동위원회의 부당해고 판정에도 복직 이행이 기약 없다. 거리 농성이 이날로 350일째다.
28도 초여름 날씨. 이미 다 지나가고 있는 봄을 부른다며 사람들이 도로에 엎어져 느린 행진을 한다. 서울 한남동 구불구불 오르막길을 꾸역꾸역 오른다. 따라 걷던 누군가 왜 여기엔 인도가 없냐고 물었다. 과연 그 길엔 사람길이라고 할 만한 곳이 달리 없었다. 포르쉐 카이엔과 제네시스 G90과 메르세데스 같은 큰 덩치 차들이 경사진 그 길을 넉넉한 힘으로 쭉쭉 올라갈 뿐, 걷는 사람을 찾아볼 수 없었다. 사연 새긴 전단 들고 앞서 걷던 사람은 나눠 줄 사람을 찾지 못해 바쁠 일 없었다. 종종 탁 트인 한강을 내려다보며 땀을 식혔다.
아시아나케이오 해고자와 연대단체 회원들이 정년 전 원직복직을 촉구하며 22일 오체투지 행진을 시작했다. 서울 한남동 박삼구 전 금호아시아나 회장 집 방향으로 오르고 있다.
사월 그리고 열여섯째 날이면 가슴 저릿저릿한 사람들 어디든 모여 언젠가의 기억과 책임과 약속에 대해 말하고 듣고 묻는다. 서둘러 피고 진 벚꽃 자리에 연초록 어린잎 왁자지껄 돋아난 안산 화랑유원지 숲길 가운데, 노란색 우산과 리본과 점퍼와 가방을 입고 든 사람들이 섰다. 7주기, 왜 여태 노란 옷 엄마 아빠들은 거리에 섰는지 사회자가 물었다. 화면 속에서 삭발한 엄마가 비명을 지르다 울었다. 목이 쉰 아빠가 언젠가의 진상규명 약속을 묻고 또 물었다. 제멋대로 삐쭉삐쭉 자라난 짧은 머리칼을 한 엄마들이 뒷자리에 서서 그걸 보느라 눈
무성하게 자란 장미 넝쿨을 쳐내느라 가지를 잡아 비틀다 그만 가시에 찔렸다. 따끔하고 말 줄 알았는데, 종일 욱신욱신 찔린 자리가 아팠다. 다가올 여름에 빨갛게 피어 예쁠 장미는 꼿꼿한 가시를 촘촘하게 품었다. 그래선지 집 울타리에 흔했다. 철 따라 붉어 멀리서 예뻤지만 가까이하기엔 위험했다. 함부로 넘나들지 말란 뜻일 테다. 길 가 어디고 말 무성하게 뻗는 곳이면 거기 화분이 있다. 언젠가 대한문 앞에서 수십여 영정을 두고 “해고는 살인”이라고 말하던 쌍용차 해고자들 천막 뜯긴 자리엔 어느 날 화단이 들어섰고, 예쁜 꽃 무더기로
언젠가 나무장승 두 개를 깎아 학교 문 앞에 세울 일이 있었다. 장소를 찾던 중, 딱 저기다 싶은 곳이 있어 의견을 전했더니 안 된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 자리 심은 소나무 한 그루가 얼마인지 아느냐며 교직원은 우리를 나무랐다. 산이고 어디고 흔한 게 소나무였는데, 비싸 봤자 얼마나 하겠느냐고 따져 물었는데, 답을 듣고는 바로 입을 닫았다. 비쌌다. 예상을 훌쩍 넘는 숫자였다. 자주민주통일이며 노동해방 같은 구호 새긴 장승을 세우려던 뜨거운 피 청년들은 돈 앞에 겸손해야 했다. 다른 자리를 찾아 세웠다. 사는 동네 뒷산에 나무들이
밥 꾸러미 싣고 내달려 밥벌이하는 사람들이 저기 섰다. 현수막 하나에 아홉 명씩, 두 모둠이었다. 저마다 할 말이 있어, 속도 경쟁을 멈추라고, 안전 대책을 마련하라고 요구하던 기자회견은 점심시간 즈음까지 이어졌다. 그 뒤편 패스트푸드 가게로 헬멧 쓴 라이더들이 줄줄이 들어갔다. 빠르게 조리한 음식을 들고 잰걸음으로 문을 나왔다. 부르릉 내달려 멀어져 갔다. 한 콜, 두 콜, 그게 다 돈인데 밥벌이 잠시 멈추고 저기 모인 사람들은 번쩍번쩍 수시로 바뀌는 노동조건을 꼬집었다. 인공지능이 일감을 주면, 그것이 알려 준 일직선 길을 따라
집 근처 중고 의류 매장에서 파격 세일을 하기에 1만5천원 주고 노란색 점퍼를 하나 사 입었는데 마음에 쏙 들었다. 겨울에서 봄 넘어가는 때에 입기 좋은 두께인데, 펑퍼짐하고 알록달록한 것이 딱 요즘 유행하는 복고 스타일이다. 설연휴 내내 벗지를 않았다. 설빔으로 여겼다. 어릴 적 엄마가 사 준 유명브랜드 신발을 신고 동네 나설 때 기억이며, 신문배달 알바하고 받은 첫 월급으로 직접 사 신은 신발 이름이 새삼 떠올랐다. 기분이 좋아 지금은 멀리 사는 엄마에게 옷 자랑을 좀 했는데, 돌아온 말이 싸늘했다. 나는 너 그렇게 키우지 않았
목인지 어디선지 꽉 막혀 나오지 않는 말길을 트느라 삭발한 엄마는 마이크 잡고 아아, 또 아아아…, 뜻도 없는 비명을 내질렀다. 잔뜩 몸을 웅크리며 한 번, 고개 들어 또 한 번. 긴 한숨 끝에 비로소 내뱉은 말이 새롭지 않았다.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오래 묵은 말을 재차 하느라, 엄마 아빠는 또 한 번 길 위에 고난을 전시한다. ‘그림’ 되는 일이다. 툭툭 잘려 바닥에 떨어지는 머리칼과 줄줄 흐르는 눈물 앞에 비로소 카메라 여러 대가 바삐 돌았다. 검찰 세월호 참사 특별수사단의 수사 결과를 규탄했고, 대통령에게 책임을 묻겠다
라면을 먹거나, 어쩌다 텔레비전 한 번 보는 일이 세상 중요한 아이에게 아빠는 종종 단호한 목소리 앞세워 약속도 지키지 않는 ‘나쁜 사람’이다. 아차차, 마음 급한 나머지 시원스레 쏟아냈던 그 무슨 쿠폰 생각이 떠올라 할 말을 잃고 만다. 서로 약속을 잘 지키는 게 중요하다는 잔소리를 얼마나 많이 했던지, ‘눼눼’ 하고 받아넘기는 아이의 태도를 꼬투리 잡아 들들 볶는다. 나빴다. 사과하고 약속은 지킬 일이었다. 요즈음 세간에 이런 저런 희망찬 약속이 떠도는 걸 보니 곧 선거인가 싶다. 공약은 자주 빌 공자 오명을 뒤집어쓴 채, 쓰레
체온이 오르는 게 요즈음 무서운 일이라지만, 체온을 잃는 것이야말로 오래도록 사람들이 경계한 일이었다. 한강이, 홍제천이 얼어붙고 처마 끝엔 고드름이 주렁주렁 매달렸다. 집집이 삐죽 나온 보일러 배기구에서 연기 폴폴 날리면, 그 아래 떨어진 물방울이 쌓여 빙산이 커 간다. 시동이 걸리지 않아 걀걀 소리만 내던 차 주인이 시린 손 호호 불면서 집으로 뛰어든다. 밖에 나가질 못해 답답한 아이들과 지지고 볶느라 기운 뺀다. 전기장판에 누워 등을 지진다. 이불 밖은 위험한 계절이다. 지금 밖에 사는 사람들이 있다. 선전판 몇 개 둘러 세워
내년에도 일하고 싶다, 삐뚤빼뚤 직접 쓴 손팻말이 어느 빌딩 널따란 로비에 다닥다닥 붙었으니 겨울, 연말이다. 새벽 첫차 타고 출근해 쓸고 닦고 열심히 몸 부릴 줄만 알았던 사람들이 언젠가 노동조합을 만들었고, 그제야 인간답게 살 수 있겠다는 희망을 품었다. 부당한 걸 부당하다고 말하는 일이었다. 변화가 적잖았다. 어느 날 계약해지 통보가 날아들었다. 노조 만든 죄라고 누구나가 말했다. 나이 적지 않은 청소노동자들이 파업,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 싸움에 나섰다. 노예 취급하지 말라고 빨간색 현수막에 새겨 길가 나무에 걸었다. 평소 삼
겨울, 잎 다 떨군 앙상한 나뭇가지가 황량한 들에서 찬바람을 맞는다. 생의 기운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그것들 사이에 얼마간의 색을 입은 무언가 있어 가만 살피니 꽃눈이다. 죽지 않았으니 다가올 봄이면 햇볕 아래 무엇이고 틔울 것인데, 지금은 겨울이다. 솜옷 도톰하게 차려입고 견딘다. 그것들이 다 때를 알아 자연스럽다. 때를 모르고 죽어 간 건 사람들이다. 떨어지고, 끼이고, 폭발에 휩싸여 그러는 동안에도 기계는 멈출 줄을 모르고 잘도 돌았다. 돈이 돌았다. 돌아오지 못한 아빠가, 아들이, 동생이 저녁 밥상 대신 제사상을 받았다.
큰일이 난 것인지, 어느 날 국회 앞 줄줄이 늘어선 경찰버스가 빈틈없는 차벽을 이뤘다. 인도는 겹겹이 설치해 둔 철제 펜스 따라 구불구불 미로였고, 그 끝을 막고 선 경찰이 지나는 시민의 관상을 살펴 문을 여닫았다. 집회시위자의 상이 따로 있느냐고, 사람들이 이유를 물었는데, 돌아오는 답이 없어 밀고 당기는 소란이 곳곳에 가끔 일었다. 해산명령이 1차 2차 또 3차에 걸쳐 득달같이 쏟아졌다. 막느라 모인 경찰이 빽빽하게 붙었고, 말하느라 작은 현수막 펼쳐 든 사람들이 서로 멀찍이 떨어져 섰다. 헬멧 차림 경찰이 시위자에 딱 붙어 해
거리를 둬야만 했던 우리는 따뜻한 방구석에 홀로 앉아서도 누구나와 연결돼 위로와 공감을 나누는 시절을 살지만 아무래도 저기 손 포개어 잡는 일을 따라갈 수는 없을 테다. 정부서울청사 앞, 다시는 거길 찾고 싶지 않았다던 문중원의 아내에게 그 마음 잘 안다고 용균이 엄마가 손 꼭 잡고 말했다. 눈 맞춰 안부 주고받는다. 껴안고 어깨에 기댄다. 눈을 감아본다. 내내 울던 사람이 그제야 웃는다. 그러니 구불구불 사연 깊은 사람들은 꾸역꾸역 길에 나와 시린 손을 비빈다. 산 사람 손을 잡는다. 더는 죽지 말자고 서로를 다독인다. 자식 앞세
찬바람 부는 때를 알아 이파리는 한바탕 요란스레 내린 빗물 머금고 아래로 아래로 떨어졌다. 겹겹이 쌓여 거기 차가운 돌바닥 위로 주단처럼 납작 누웠다. 마스크 쓴 사람들이 그냥 지나치질 못하고 팔 쭉쭉 내밀어 찰칵, 한순간도 멈출 줄을 모르는 시간을 잡아챈다. 스마트폰 속 일 년여 사진첩엔 어느덧 변화무쌍한 사계절이 다 담겼는데, 변함없이 마스크 차림이다. 내일 치우면 안 되느냐고 그 앞 밀대 든 사람에 물었지만, 답을 바란 건 아니었다. 점점 줄어드는 레드카펫 위에서 총총 뒷걸음질해 가며 연신 사진을 찍었다. 배우처럼 걸었다. 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