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잎 다 떨군 앙상한 나뭇가지가 황량한 들에서 찬바람을 맞는다. 생의 기운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그것들 사이에 얼마간의 색을 입은 무언가 있어 가만 살피니 꽃눈이다. 죽지 않았으니 다가올 봄이면 햇볕 아래 무엇이고 틔울 것인데, 지금은 겨울이다. 솜옷 도톰하게 차려입고 견딘다. 그것들이 다 때를 알아 자연스럽다. 때를 모르고 죽어 간 건 사람들이다. 떨어지고, 끼이고, 폭발에 휩싸여 그러는 동안에도 기계는 멈출 줄을 모르고 잘도 돌았다. 돈이 돌았다. 돌아오지 못한 아빠가, 아들이, 동생이 저녁 밥상 대신 제사상을 받았다. 밥 한 끼 같이 먹지 못한 걸 두고두고 한으로 여긴 아들이 선 자리마다 아버지 돌아가신 지 며칠째, 날짜를 센다. 아들 앞세운 엄마가 평평한 무덤 앞에 생일상을 차린다. 비슷한 처지 사람들이 오늘 또 죽어 간 사람들 숫자를 센다. 지붕 없는 자리에 버텨 밥을 굶기 시작했다. 한뎃잠을 잔다. 눈이 내렸다. 죽은 이의 동료들은 진창 길에 엎어져 오체투지 느릿한 행진을 이어 간다. 그 등에서 모락모락 김이 오른다. 살아서 그런 것일 테다. 이들도 다 때를 알아서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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