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28도 초여름 날씨. 이미 다 지나가고 있는 봄을 부른다며 사람들이 도로에 엎어져 느린 행진을 한다. 서울 한남동 구불구불 오르막길을 꾸역꾸역 오른다. 따라 걷던 누군가 왜 여기엔 인도가 없냐고 물었다. 과연 그 길엔 사람길이라고 할 만한 곳이 달리 없었다. 포르쉐 카이엔과 제네시스 G90과 메르세데스 같은 큰 덩치 차들이 경사진 그 길을 넉넉한 힘으로 쭉쭉 올라갈 뿐, 걷는 사람을 찾아볼 수 없었다. 사연 새긴 전단 들고 앞서 걷던 사람은 나눠 줄 사람을 찾지 못해 바쁠 일 없었다. 종종 탁 트인 한강을 내려다보며 땀을 식혔다. 70억원인가 80억원인가 한다는 그 동네 어느 아파트 얘기를 하다가는 헛웃음을 지었다. 오르막이라 힘들다며 사지 않겠다고 농쳤다. 철 모르고 껴입은 사람들은 점퍼를 벗어 허리에 묶었다. 흰옷 입은 사람들이 북소리 맞춰 아무 데나 엎어졌다. 쭉 뻗은 손끝에 아무 데나 피어 자라는 들꽃이 아스팔트 갈라진 좁은 틈에 뿌리내린 채 흔들거렸다. 해고가 부당했다는데, 여전히 길에 선 이유를 알 수 없어 정년 가까운 사람들은 노동청 앞에서 단식농성을 이어 간다. 원직복직 그 뻔한 말을 하느라 흰옷 입은 해고자들은 사람길도 달리 없는 오르막에 엎어진다. 둥둥 북소리에, 왕왕 스피커 노랫소리에 그 앞 마당 너른 집 개가 멍멍 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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