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천둥소리 크더니 아침부터 비가 요란스럽게 내렸다. 웬 비가 이렇게 자주 오냐며 출근길 사람들이 구시렁댔다. 벌써부터 장맛비 걱정이다. 바람까지 불어 제법 썰렁했다. 옷장 깊은 곳에 넣어 둔 도톰한 소재 옷을 다시 꺼내어 입고 나온 참이다. 가만 서면 춥고 움직이면 곧 덥다. 종잡을 수 없는 게 요즘 날씨다. 행진 나선 해고자들은 출발지점에서 부지런히 비옷부터 챙겨 입었는데 안으로는 노조 조끼, 밖으로는 구호 새긴 몸자보까지 껴입었으니 곧 더울 것을 잘 안다. 가만히 있으면 잊힐 것을 또한 잘 알아 언젠가 한 달여를 굶고, 바닥을 기어 행진하고, 천막에 오래 살면서 그 사정을 얼마간 세상에 알렸던 사람들은 먹구름 짙은 날 다시 길을 걷는다. 우리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누군가 말했다. 또 한 명의 해고자 정년이 가깝다고 외쳤다. 마음 바쁜 김계월 지부장이 훌쩍 앞서서 걷는다. 복직이행의 ‘복’자 팻말은 지나는 차들 잘 보라고 옆으로 둘렀다. 서울 한강 마포대교를 건너는데, 먹구름 어느새 옅어지고 날이 갠다. 김포공항을 출발해 청와대로, 금호아시아나 본사 앞으로 향해 가는 50리 행진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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