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근버스를 타러 가던 중에 사업장 내 공사장에서 낙상사고가 있었다. 통증이 심해 병원에 갔더니 인대가 완전히 파열돼 봉합해야 했다. 즉시 수술을 하고 목발 신세를 지는 수밖에 없었다. 근로복지공단에서 이 사고를 업무상 재해로 판정한 덕분에 요양급여와 휴업급여를 받으면서 이게 소위 4대 보험의 힘이구나 실감했다.그간 변호사로서 마주한 사건들은 업무상 재해에 대해 배상을 청구하는 것이 대부분이었고 내 지식도 거기에 국한돼 있었다. 그러나 인대파열로 당사자성을 취득한 덕에 산업재해보상보험법과 씨름했고, 휴업급여 산정 기준이 얼마나 복잡한
“수적으로 소수인 자본가들(masters)이 단체를 만드는 것은 누워 떡 먹기다. 법이나 정부 당국은 노동자단체를 금지한다. 하지만 자본가단체를 금하는 법이나 정부는 없다. (중략) 자본가들은 단체를 만들지 않는다고 보통 생각하지만, 이는 무식한 상상이다. 노동의 임금을 가라앉히기(sink) 위해 자본가들은 언제 어디서나 소리 내지 않고, 끊임 없이 일관되게 자신들의 단체를 만들고 있다.”얼핏 보면 칼 마르크스(1818~1883)의 에 나오는 말 같지만, 실은 아담 스미스(1723~1790)의 에 나오는 말이다.
전국적 노동자조직의 출현1920년대 초까지 노동자들이 전국적 유대를 갖기 위한 구체적 노력이 없었다. 1920년 3월16일 조선노동공제회가 발기하면서 전국적인 노동자단체를 구성하려는 시도가 나타났다. 1922년 10월 결성된 조선노동연맹회가 그 뜻을 이어가려 했다. 하지만 조선노동연맹회는 “사회주의 지식인 노동자들만으로 조직된 우리나라 최초의 사회주의적 강령을 가진 노동단체”였다. 사회주의적 사상을 가진 소수파로 창립돼, 그로 인해 조직이 해체되는 등 혼란에 빠져 있다가 1924년 4월에 이르러 조선노농총동맹을 결성했다. 드디어 조
사회부 기자의 가장 큰 덕목은 ‘의심’이다.지난달 18일 인천 미추홀구 한 빌라에서 40대 부부와 어린 자녀 셋 등 일가족 5명이 숨진 채 발견됐다. 그냥 묻힐 뻔했던 사건은 경찰 수사와 기자들의 계속된 취재로 실체가 어느 정도 드러났다. 일가족 죽음은 이 가족만의 특별한 일탈이 아니었다. 한국 사회와 오롯이 연결돼 있다.물리치료사와 간호사였던 40대 부부는 아이가 셋이나 돼 육아를 위해 간호사였던 아내가 일을 그만두면서 남편이 생계를 책임졌다. 남편은 물리치료사 경험을 살려 찜질방 사업을 했지만 코로나19 여파로 실패했다. 지난해
임금과 취업상태, 소득과 자산에 대한 통계가 있듯이 사회구성원들의 인식과 가치관에 대한 사회조사도 국가의 공식통계로 발표되고 국가 간에 비교된다. 그중에는 노동조합과 노사관계에 관한 국민인식조사도 포함된다.최근 많이 회자된 통계 중에 ‘46%’라는 숫자가 있었다. 한국리서치가 지난해 10월 발표한 노조에 관한 여론조사 결과였다. 노조가 노동자 권리 보호에 기여한다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국민이 66%에 달했다. 하지만 “노조에 소속된 자신들의 이익만 챙기고 있다”고 생각하는 국민이 46%로 적지 않았다. 이와 함께 한국노동연구원의 2
경기 김포시의 어느 공기업에서 일하는 노동자 A씨는 최근 황당한 일을 겪었다. 그는 김포시에 거주하는 장애인을 위한 이동 차량을 운행하는데 상급 관리자가 차량 내 블랙박스를 조수석에서 운전자 방향으로 설치하겠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차량용 블랙박스는 차량 운행 과정에서 사고 발생 때 사고의 인과관계를 파악하고 차량 내 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목적이다. 블랙박스를 운전자 방향으로 설치하려는 상급자의 의도는 운전노동자를 감시하기 위한 목적이 명백해 보였다.부천시청에서 청소 차량을 운행하는 노동자들은 운행경로를 이탈하거나, 일의 시작 시간이
지난해 4월20일은 국제노동기구(ILO) 87·98·29호 협약이 우리나라에서 국내법으로 발효된 날이다. 2021년 4월, 3개 협약 비준서 기탁식에서 당시 고용노동부 장관은 “노동기본권이 충분히 보장되고 자율과 책임에 기반을 둔 건강한 노사관계가 형성될 수 있도록 노사와 함께 지속 노력하겠다”고 발언했다.한국이 ILO에 가입한 1991년 이후 30년 만에 ILO 결사의 자유 관련 협약 비준을 하면서 우리의 노동법과 노사관계가 일보전진하는 계기가 되리라는 기대가 있었다. 그러나 협약 비준으로부터 2년이 흐른 지금 바라보는 우리의 노
케이팝 아티스트 몬스타엑스의 ‘무단침입’이라는 노래는 “이걸 범죄라 할 수 있나”라는 가사로 시작한다. 이 노래는 ‘네 맘에 내가 무단침입하겠다’는 다소 거친 사랑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공교롭게도 나는 노동자들이 건물 내 퇴거 요청에 불응했다는 이유로 기소된 ‘공동퇴거불응’ 사건을 담당하던 중 이 노래를 듣게 됐다.해당 사건은 아시아나KO 부당해고에 항의하는 해고 당사자 3명과 연대 노동자 한 명이 서울 중구 서울지방고용노동청 건물 1층에서 퇴거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기소된 건이었다. 아시아나KO의 정리해고가 위법함을 노동위원회와
휴가를 내고 수일을 깊고 높은 산 속에 틀어박혀 있었다. 산에 오르고 내리는 길, 이르게 피어난 봄꽃들이 산자락을 수 놓았다. 돌아온 일상, 거리의 풍경도 달라져 있었다. 푸른 잔디가 돋아나 있고, 불어오는 바람에 꽃비가 내려온다. 4월5일은 식목일. 하늘이 차츰 맑아진다는 청명. 지구가 이렇게 아픈데. 계절마다 절기마다 피어나는 꽃들이, 푸른 잎으로 몸을 감싸는 나무들이, 달라지는 바람 내음과 볕, 낮과 밤의 길이가 고맙고도 서글프게 느껴진다. 사람 하나 살 것 같지 않은 스산한 신도시의 거리에 흩뿌리는 꽃잎들 아래에서 어떤 낭만
주말에 아이를 데리고 직업체험 테마파크에 다녀오며 노동과 여가에 대한 이런저런 생각을 했다. 이 글은 그 첫 번째 이야기다.우리는 여가도 일처럼 한다. 장시간 근로가 만연하고 법적으로 정해진 연차휴가조차 소진하지 못하는 노동환경에서, 일터에서 지친 몸을 달래기도 벅차다 보니 여행이나 나들이는 그야말로 특별한 시간이다. 모처럼 낸 시간이니 기회비용을 생각해 최대 효율을 내야 하는 또 하나의 과업같다. 가능한 많은 정보를 사전에 파악해 시행착오를 줄이고 시간·비용 대비 최대 효율을 얻을 수 있도록 계획하는 게 자연스러운 문화가 됐다.많
노동자가 노동위원회에 제기한 부당해고 구제신청이 인정될 경우 사용자는 노동위원회의 구제명령을 이행해야 한다. 부당해고 사건의 구제명령은 일반적으로 원직복직과 임금상당액 지급이다. 해고 당시 종사하던 직무에 그대로 복귀할 수 있도록 하고, 해고로 받지 못한 그간의 임금도 받도록 함으로써 노동자의 삶을 해고 이전으로 돌려놓는 데에 목적이 있다.그러나 세상일엔 예상치 못한 변수가 있는 법. 노동자가 복직할 원직이 사라져 버린 경우가 있다. 해고 다툼을 하는 사이 원래 일하던 부문이 사라졌거나, 더 이상 사용자가 해당 사업을 운영하지 않는
1. ‘지난달 30일에 판결이 선고된 사건은 쟁점이 무엇인가요.’ 순간 나는 무엇인지 생각나지 않았다. 분명히 내가 원고 노동자들을 대리해서 승소 판결을 받아냈던 것인데 기자의 질문에 ‘쟁점이 무엇인가’ 멈칫했다. 당연히 이기는 사건이라고 여겨 그랬는지 별일이네 했다. 그래서 사건기록을 펼쳐 판결문을 찾았다. 임금피크제 적용 노동자들이 지급받는 상여금은 통상임금에 해당한다며 추가 연차휴가수당 등 법정수당을 청구한 사건이었다. 처음 상담했을 때부터 재판과정까지 생생하게 떠올랐다.2. 이들은 회사 규정에 따라 1월, 2월, 5월, 7월
나는 순수하지 않다식물과 동물과 인간은 모두 박테리아의 결합으로 생겨난 뜻밖의 결과물이다. 한 종류의 박테리아가 다른 종류의 박테리아 내부에 거주하면서 더 복잡한 세포를 형성하는 과정을 통해서 생물이 탄생했다. 이를 밝혀 낸 마굴리스는 “우리는 걸어 다니는 공동체”라고 했다. (팀 잭슨, ) 부드럽게 말하면 인간은 다양한 박테리아가 섞여 만들어졌고, 격하게 말하면 인간은 박테리아의 잡탕이다.인간은 자신의 뿌리를 잊었거나 혹은 다양한 것의 공동체인 자신의 근본을 숨기려는 듯 순수를 추구한다. 다양한
한국의 합계출산율이 0.78명으로 역사상 최저다. 국가 차원에서 대응기구로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가 만들어졌다. 대통령이 위원장을 맡았다. 지난달 28일 위원장인 대통령이 직접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회의를 주재했다. 지난 15년간 280조원의 자금을 투입했지만 왜 실패했는지 밝혀야 한다면서 사회문제와 사회문화적인 요소를 포함한 ‘종합적’인 대책을 주문했다.좋다. 왜냐면 저출생이 일어나는 원인이 종합적이기 때문이다. 흔히 제시되는 대책의 하나가 성차별 완화 내지 철폐다. 여성에 대한 사회적 차별이 심해 출산과 육아에 대한 시간과 노력이 여
주 52시간(연장근로 12시간 포함) 상한제는 2018년 2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고 수준인 우리나라의 장시간 근로를 줄여 국민의 건강권을 회복하고 일과 삶의 균형을 이루기 위해, 오랜 기간 사회적 논의를 거쳐 국회에서 여야 합의로 도입했다. 이후 2018년 7월부터 기업 규모에 따라 단계적으로 시행돼 2021년 7월부터 5명 이상의 사업장까지 확대했다.최근 고용노동부가 노동시간 개편안을 발표했다. 이참에 원칙적으로 주 40시간만 노동하고, 노동자가 동의할 때만 주 12시간 연장근로가 가능한 주 52시간 상한제와 관련해 노
지난 3월28일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회의가 7년 만에 대통령 주재로 개최되었다. 2022년 합계출생율이 0.78명으로 2030년이면 인구가 5천만명 밑으로 떨어질 것이라는 위기의식 가운데 열린 회의인 만큼 주목을 받았다. 지난 시기의 인구정책에 대한 비판적 평가와 향후 대책에 대한 정부의 발표에 관심이 높을 수밖에 없었다. 윤 대통령은 이날회의에서 지난 시기 인구정책이 실효성이 없었다고 이야기하며 정부 정책의 5가지 개선지점을 발표했다. 인구소멸의 위기에 비하면 대책은 전혀 비상하지 않았다. 심지어 여당에서 ‘30세 미만 남성 청년
“중대재해 감축.” 윤석열 정부 국정과제 중 하나다.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을 완화할 것이라는 논란 속에서 로벤스 보고서와 독일의 업종별 협회·노동조합이 자율적으로 정한 재해예방규칙에 기반한 안전시스템 개선안을 내놓았다.엄벌에 처하는 방식의 산재예방은 산재은폐 문제나, 대기업 사업장과 중소기업 사업장의 노동안전 환경 격차가 상당하기에 한계가 있다. 대안으로 위험성평가를 통한 자율안전규제를 제시했다.업종별 노사가 주체가 된 자율안전규제는 산업군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 관련 전문가, 사업주가 함께 산재를 줄이기
나이지리아 어린 4남매의 화재 사망 소식이 지난 28일자 모든 중앙 일간지에 실렸다. 한겨레는 10면에 ‘화재 뒤 이사온 빌라서 또 불, 나이지리아 어린 4남매 숨져’라는 제목으로, 한국일보는 2면에 ‘나이지리아 4남매를 앗아간 한밤 빌라 화재’란 제목으로, 조선일보는 10면에 ‘두살 막내는 구했는데… 나이지리아 4남매 참변’이란 제목으로, 경향신문은 8면에, 동아일보는 14면에 각각 다뤘다.지난 27일 새벽 3시 30분께 7식구가 살던 경기 안산시 단원구 선부동의 12평 남짓 다가구주택에서 불이 났다. 부부는 2살 막내를 데리고
3월 22일, 조정훈 시대전환 의원이 이주 가사노동자에게 최저임금을 적용하지 않는 법안을 발의했다. 법안을 발의한 조 의원은 “이 법이 실현되면 싱가포르처럼 월 100만원 수준의 외국인 가사도우미 사용이 가능해진다”고 밝혔다. 이 법안이 이주노동자에 대한 차별이며, 가사노동에 대한 폄훼를 담고 있는 점은 많이 비판했으니 같은 비판을 덧붙이고 싶지는 않다. 다만 국회에서 이런 법안이 발의되고 논의된다는 것이 우리 사회가 차별과 배제를 쉽게 용인하는 사회임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참담하다. 조정훈 의원의 법안에 담긴 차별과 배제의 논리는
이번에 정부가 주 최대 69시간 근로제(주 6일 근무 ㅁ기준)를 도입하려다가 반발에 부딪혔다고 한다. 정부는 안타까워 죽겠다는 표정이다. 고용노동부는 이 제도에 대한 오해 때문에 노동자들이 반발한다고 보는 것 같다. 69시간은 최대 근로시간이고(이것도 엄밀히 말하면 맞는 말은 아니지만), 휴식권이 실질적으로 보장되고 포괄임금제를 손보면 오히려 근로자들에게 유리한 제도라는 사실을 노동자들이 잘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거기에 하나를 덧붙인다. 요즘 젊은 세대는 권리의식이 높아 이 제도를 잘 활용할 수 있으므로 걱정하는 일들은 일어나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