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아노사관계(AIR) 컨설턴트

“수적으로 소수인 자본가들(masters)이 단체를 만드는 것은 누워 떡 먹기다. 법이나 정부 당국은 노동자단체를 금지한다. 하지만 자본가단체를 금하는 법이나 정부는 없다. (중략) 자본가들은 단체를 만들지 않는다고 보통 생각하지만, 이는 무식한 상상이다. 노동의 임금을 가라앉히기(sink) 위해 자본가들은 언제 어디서나 소리 내지 않고, 끊임 없이 일관되게 자신들의 단체를 만들고 있다.”

얼핏 보면 칼 마르크스(1818~1883)의 <자본론>에 나오는 말 같지만, 실은 아담 스미스(1723~1790)의 <국부론>에 나오는 말이다. <국부론>을 번역한 김수행 교수는 역자 서문에서 “스미스가 지적하는 ‘보이지 않는 손’(an invisible hand)은 <국부론>에서 단 한 번 상권(비봉출판사 번역본) 552쪽에서 언급될 뿐”이라고 말한다.

조선에서 정조가 국왕이 된 1776년 <국부론> 초판이 나왔고, 3판(1784년)에서 상당한 부분이 추가됐다. 스미스 생전에 5판(1798년)까지 나왔다. 잉글랜드에서 산업혁명이 시작된 게 1760년 무렵이고, 미국 독립전쟁이 발발한 해가 1776년이다. 조선에서 27세 정약용이 관직에 진출한 1789년 프랑스혁명이 발발했다. 그 이듬해인 1790년 스미스가 죽었다.

김수행 교수는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은유가 “우리에게 제시하는 사회철학은, 사회적 이익을 증진시키는 한도 안에서 개인에게 사적 이익을 추구하게 하는 것이 옳다”라는 뜻이라고 주장한다. “개인이 자기의 이익을 추구할 때 ‘보이지 않는 손’에 이끌려 사회의 이익도 증진된다”는 스미스의 주장을 돌려 말하면, 사회의 이익을 증진하지 않는 개인의 사익은 ‘보이지 않는 손’의 법칙에 위배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스미스의 생각은 ‘자연적 자유’(natural liberty)를 통해 “개인이 자신의 상태를 개선하려고 자연스럽게 노력하는 것”을 지지하는 동시에 “사회 전체의 안정을 위협하는 개인의 자연적 자유의 행사는 제한돼야 한다”로 집약할 수 있다.

그 연장선에서 김 교수는 “독점자의 사적 이익은 사회의 이익을 증진시키지 않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손’은 작동하지 않으며” 따라서 “독점자가 자기의 이익을 추구하는 자연적 자유는 제한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재의 부르주아 경제학은 독점자본이나 다국적자본이 사회 전체의 이익을 엄청나게 훼손하고 있는데도 모든 것을 시장에 맡겨야 한다고 강변하고 있는데, 이것은 분명히 스미스를 모독하는 행위”라는 것이다.

요즘 <국부론>을 자주 들춰 본다. 그때마다 이 책이 자본가를 위한 게 아니라 노동자를 위한 거라 생각하게 된다. 모두 5편으로 이뤄진 <국부론>에서 가장 재미난 부분은 임금과 이윤과 지대의 원천인 노동 문제를 분석한 1편이다.

산업혁명 태동기에 활약했던 스미스가 보기에 새롭게 창출되던 “국부”(the wealth of nation)의 원천은 ‘노동의 생산력’이었다. 그리고 노동의 생산력은 “노동의 분단”(the division of labour), 즉 분업(分業) 덕분에 최대로 개선됐다. 그래서인지 스미스는 <국부론>의 첫 장을 “노동의 분단” 즉 분업으로 시작한다.

“미개한 사회에서 한 사람이 하던 일을 진보한 사회에서 몇 사람이 나눠 하는” 분업은 노동자 각자의 숙련도를 높이고, 시간을 절약하며, 기계의 발명과 결합하면서 한 사람이 많은 사람의 일을 할 수 있게 해 준다. 그리고 분업은 다시 기계를 통해 “결합노동”(joint labour)으로 변형되면서 각종 생산물을 증가시켜 국부를 키운다.

스미스는 “각 사람의 천부적 재능의 차이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작다”면서 “상이한 직업에 종사하는 성인들이 발휘하는 매우 상이한 재능은 많은 경우 분업의 원인이 아니라 분업의 결과”라고 주장했다. “철학자와 평범한 짐꾼의 차이는 천성(nature)보다는 습관, 풍습, 교육 같은 후천적 요인에서 유래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누구는 양질의 노동을 하고 누구는 저질의 노동을 한다면, 이는 개인 탓이라기보다 사회 탓이 된다.

노동의 분단, 즉 분업이 확립되면서 모든 사람은 노동 생산물을 교환하며 생활하게 됐다. 그리고 물물교환의 어려움은 하나의 상품을 화폐, 즉 돈을 선정하게 만들었다. 처음엔 가축과 소금과 조개 같은 물건이 돈이 됐다. 이후 금과 은 같은 금속이 돈이 됐다. 금속의 순도와 중량을 표시하는 각인이 도입되면서 돈은 상업의 매개수단이 됐고, 주화제도가 확산되면서 물건이 교환되는 가치를 측정할 수 있게 됐다.

이렇게 화폐의 기원과 이용의 역사를 설명한 스미스는 “가치”(value)가 물건의 효용을 표시하는 “사용가치”(value in use)와, 그 물건을 소유함으로써 가지게 되어 다른 물건을 구매할 수 있는 능력인 “교환가치”(value in exchange)라는 두 가지 특성을 가진다고 분석했다. 그리고 모든 상품의 교환가치를 측정하는 척도로 “노동”을 내세웠다.

“노동은 모든 물건을 구매하기 위해 지불되는 최초의 가격, 또는 최초의 구매화폐”이며 “세상의 모든 재부를 구매하는 데 최초로 사용된 것은 금이나 은이 아니라 노동”이다. 그리고 “노동은 유일하게 보편적이고 유일하게 정확한 가치의 척도이며, 모든 시기와 장소에서 상이한 상품들의 가치를 비교할 수 있는 유일한 표준”이 된다.

모든 가치는 노동으로 측정할 수 있다는 스미스의 생각은 재화와 용역의 모든 가치는 노동에서 비롯한다는 노동가치설(labour theory of value, LTV)로 발전했다. 노동자가 가져가는 임금, 자본가가 가져가는 이윤, 지주가 가져가는 지대의 원천에 노동이 있다는 노동가치설의 길을 열어 제친 아담 스미스는 정치경제학자이자 도덕철학자로서 산업혁명 이후 노동문제(Labour Questions)를 본격적으로 제기한 최초의 사상가이기도 했다.

 

아시아노사관계(AIR) 컨설턴트 (webmaster@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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