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동권 연구활동가

지난해 4월20일은 국제노동기구(ILO) 87·98·29호 협약이 우리나라에서 국내법으로 발효된 날이다. 2021년 4월, 3개 협약 비준서 기탁식에서 당시 고용노동부 장관은 “노동기본권이 충분히 보장되고 자율과 책임에 기반을 둔 건강한 노사관계가 형성될 수 있도록 노사와 함께 지속 노력하겠다”고 발언했다.

한국이 ILO에 가입한 1991년 이후 30년 만에 ILO 결사의 자유 관련 협약 비준을 하면서 우리의 노동법과 노사관계가 일보전진하는 계기가 되리라는 기대가 있었다. 그러나 협약 비준으로부터 2년이 흐른 지금 바라보는 우리의 노동관계는 오히려 30년 전으로 후퇴한 것처럼 느껴진다.

이미 2000년대에 ILO 결사의 자유위원회가 한국의 특수고용·간접고용 노동자의 노동 3권 보장을 권고한 조치들은 지금까지 이행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오히려 정부에 의한 노동 3권 침해 사례가 더 늘고 있다.

2000년대 간접고용 노동자의 노조 결성이 잇따르면서, 하청업체 폐업·계약해지를 통한 노조파괴, 원청 사업장에서의 조합활동 금지, 단체교섭 거부, 손해배상 청구 등과 같은 원청의 부당노동행위가 공식처럼 자행됐다. 결사의 자유위원회는, 원청업체는 하청노동자와 근로계약관계가 없다면서 교섭을 거부하고, 하청업체도 자신이 하청노동자의 노동조건을 실제로 통제할 수 없다면서 교섭을 거부하는 “진퇴양난의 상황”에 간접고용 노동자가 빠져있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한국 정부에게 원청의 부당노동행위에 대해 독립적 조사 및 구제 조치를 시행하고, 간접고용 노동자가 원청을 상대로 노동 3권을 실질적으로 행사할 수 있도록 조치할 것을 권고했다(2008년 결사의 자유위원회 보고서 등).

그러나 ILO 권고 이후 10년이 넘도록 정부는 이를 이행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노조법의 ‘사용자’ 범위를 ILO 권고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개정하기 위한 법안에 반대로 일관하고 있다. 정부가 반대 논거로 내세우는 것은, ‘노동조건을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자’를 상대로 단체교섭을 요구할 수 있도록 하면 원청이 파업이나 법적 분쟁에 휘말릴 경우가 폭증하리란 우려다.

하지만 이는 철저히 사용자 편에서 하는 기우에 불과하다. 원청이 단체교섭을 거부하더라도 자동적으로 처벌받게 되는 것이 아니며, 법적 절차를 통해 부당노동행위가 아님을 수년간 다툴 수 있다. 지금까지 단체교섭 거부 그 자체만으로 사용자가 처벌받은 사례도 없고, 오히려 실질적 사용자가 자신은 사용자가 아니라며 법적 절차를 활용해 장기간 단체교섭을 거부한 사례가 태반이다. 학습지교사가 노조법상 근로자라는 2018년 대법원 판결이 있어도 ㈜대교는 자신이 사용자가 아니라며 버티다가 2022년에야 노조 설립 22년만에 첫 기본협약을 체결했다. CJ대한통운이 택배노조와 단체교섭에 응할 사용자라는 중노위 결정이 2021년에, 행정법원 판결이 올 2월에 나왔지만, CJ대한통운은 지금까지도 소송만 계속하며 교섭을 거부하고 있다. 그렇다고 대교나 CJ대한통운이 처벌을 받았는가?

원청의 교섭 거부로 손해배상 책임과 형사처벌을 받는 것은 오히려 간접고용, 특수고용 노동자들이다. 근로계약관계가 없는 사용자를 상대로 단체교섭을 요구했다고 공갈·협박죄로 처벌받으며, 원청을 상대로 단체행동을 한 것은 불법파업으로 낙인찍혀 노조법뿐만 아니라 업무방해죄, 건조물침입죄 등 형법으로도 처벌받는다. 조합원까지 천문학적 손해배상 책임을 떠안고 가정까지 파괴되는 고통도 따라온다.

오는 4월20일, 노조법 2·3조 운동본부 주최로 ‘ILO 결사의 자유 관련 협약과 단체교섭권의 실질적 보장 국제토론회’가 열린다. ILO 결사의 자유 국장과 ILO 결사의 자유위원회 위원이 연사로 참여한다. 이들은 한국의 단체교섭권 보장 실태에 대한 국제사회의 평가와 국제노동기준에 부합하는 조치를 촉구할 예정이다. ILO 기본협약 비준이 외교적 생색내기가 아니라 우리의 노동관계를 국제노동기준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진전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

노동권 연구활동가 (laboryun@naver.com)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