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승호 전태일을따르는사이버노동대학 대표

한국의 합계출산율이 0.78명으로 역사상 최저다. 국가 차원에서 대응기구로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가 만들어졌다. 대통령이 위원장을 맡았다. 지난달 28일 위원장인 대통령이 직접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회의를 주재했다. 지난 15년간 280조원의 자금을 투입했지만 왜 실패했는지 밝혀야 한다면서 사회문제와 사회문화적인 요소를 포함한 ‘종합적’인 대책을 주문했다.

좋다. 왜냐면 저출생이 일어나는 원인이 종합적이기 때문이다. 흔히 제시되는 대책의 하나가 성차별 완화 내지 철폐다. 여성에 대한 사회적 차별이 심해 출산과 육아에 대한 시간과 노력이 여성에 전가되니 이런 차별을 철폐해야 한다. 사회에서도 여성차별이 매우 심하다. 여성에게는 좋은 일자리가 주어지지 않거나, 유리천정이 있거나, 출산·육아 후 제자리 복귀가 쉽지 않다.

그런데 결혼과 출산을 원하지 않는 비율은 여성이 더 많지만, 청년 남성도 상당수 결혼과 출산을 원하지 않는다. 따라서 저출생의 원인을 여성 차별에만 물을 수 없다. 무상교육을 비롯한 사회보장제도가 미비하고 복지국가가 되지 못해 자녀를 키우기가 어려운 것도 저출생의 원인으로 지목된다. 저소득층에서 결혼·출산율이 더 낮은 것을 보면 경제적 요소가 큰 원인이라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여성에 대한 심한 차별과 사회보장제도의 미비는 왜 일어날까. 임금노동자 창출을 위해 농촌공동체 해체와 핵가족 제도를 권장하던 자본주의는 다음 단계로 핵가족마저 해체하고 여성을 평생 노동시장으로 끌어낸다. 세계 자본주의의 공통 현상이다. “자본의 축적은 프롤레타리아의 증식이다.” 그러나 한국의 천민자본주의는 농촌으로부터 청년을, 핵가족으로부터 여성을 노동시장에 끌어내면서도 복지국가와 성평등을 실시할 의사도, 능력도 없다. 이 점이 한국 자본주의의 특수성인 천민자본주의다. 한국 자본주의는 소수의 대기업 노동자와 중소영세기업 노동자를 차별하고,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차별하고, 또 여성과 남성을 차별하는 등 중층적 차별로 초과 착취를 실현한다. 독점 지대를 짜내기 위해 대다수 노동자에게 노동력 재생산비를 지불하지 않고 있다. 극심한 착취와 차별은 극심한 경쟁을 만들어서 악순환한다. 이 천민자본주의 체제는 이승만의 ‘매판 자본주의’를 박정희가 혁신한 것이다.

이런 체제적 문제를 그대로 둔 채 종합적 대책을 실시해 봤자 소용이 없다. 천민자본주의 파쇼체제를 그대로 둔 상태에서는 윤석열 대통령이 주문하는 종합적 대책을 실행할 수조차 없다. 독점재벌은 아무리 돈을 써봐야 깨진 독에 물 붓기니 아예 천만명 가량 이주노동자를 들여오자는 파격적 제안을 내놓고 있다. 당면해 가능한 해법은 천민자본주의 변혁이냐, 노동력 수입이냐 중의 하나다.

시야를 넓혀서 보면 낮은 출산율은 자본주의 세계에 공통적인 문제다. 자본주의가 아리스토텔레스 시대처럼 노동자를 오로지 ‘생명 있는 도구’로 대우해 노동자로 태어나면 개천에서 용 나듯이 자본가로 변신하지 않는 한 임금노예 운명에서 벗어날 수 없다. 여러 세대에 걸친 자본주의 삶을 통해 노동대중은 이 진실을 ‘발견’했다. 복지국가가 내세워질 때만 해도 그렇게 되면 노동자도 인간답게 살리라는 꿈을 가졌다. 하지만 복지국가가 돼도 자본가의 자식은 자본가가 되고 노동자의 자식은 임금노예가 된다는 것을 경험으로 확인했다. 자본주의는 전태일 열사가 갈파했듯이 “한 인간이 인간으로서의 인간적인 모든 것을 박탈당하고 박탈하고 있는 무시무시한 시대”다. 이것이 현실이라면 자신이 임금노예로 태어난 것만도 억울한 데 힘들여 자식 낳고 키워서 자본의, 자본가를 위한 도구로 만드는 일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러므로 저출생 문제는 근본적으로는 자본주의 체제를 타파해야 해결할 수 있다.

요즘 마약 문제가 화제다. 군사독재자 전두환의 손자도, 벽산재벌 3세도, 부자 정치인 남경필의 자식도, 유명 배우 유아인도 마약을 복용했다. 청소년의 약물 복용이 급속하게 늘어나고 있다. 청소년이 다이어트를 위해 마약성 식욕억제제를 처방받고, SNS가 마약 장터가 되고, 마약 자경단이 등장했다고도 한다. 이태원 참사도 경찰과 검찰이 마약 단속에만 신경 쓰면서 안전문제를 소홀히 해 일어났다는 설도 있다. 검찰과 경찰이 마약을 단속한다고 해결할 수 있는가. 미국에서 1970년대 초 이래 마약과의 전쟁을 벌였지만 아직도 끝날 기미가 없다. 중남미 나라에서 코카인 재배 농민을 대상으로 마약과의 전쟁을 벌였는데 지난해 극적으로 당선된 게릴라 출신 콜롬비아 구스타보 페트로 대통령은 미국의 마약 소비부터 줄이라고 일침을 가했다.

미국은 왜 마약 최대 소비국이 됐나. 미국이 정의로운 국가라는 허구가 월남전으로 깨지면서 청년들 사이에 히피문화와 마약이 번졌다. 흑인 민권운동에도 바뀌지 않는 혹한 차별이 흑인들 속에 마약을 확산시켰다. 신자유주의 세계화로 아메리칸 드림이 허구로 드러나면서 황홀한 꿈과 참혹한 현실의 간격을 이기지 못한 뭇 사람들이 약물에 빠졌다. 미국식 자본주의, 제국주의를 타파하지 않는 한 미국에서 마약은 근절되지 않는다.

유럽식 자본주의를 하면 근절될까. “진보적인 ‘사회적 유럽’이 ‘마약 쓰나미’에 휩쓸리고 있다”는 인용구는 에릭스 스녹 벨기에 연방 사법경찰국장의 표현이다. 그에 따르면 2021년 유로폴이 압수한 코카인은 240톤으로 10년 전보다 5배로 늘었다. 유럽 마약과 마약중독감시센터(EMCDDA)에 따르면 2021년 유럽의 코카인 사용자는 350만명에 이른다. 20년 전의 4배에 해당한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유럽식 자본주의, 복지국가의 꿈이 산산조각 나고 있다. 한국에서도 본질은 같다.

전태일을따르는사이버노동대학 대표 (seung7427@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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