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류민 충청남도노동권익센터 정책기획팀장
▲ 류민 충청남도노동권익센터 정책기획팀장

휴가를 내고 수일을 깊고 높은 산 속에 틀어박혀 있었다. 산에 오르고 내리는 길, 이르게 피어난 봄꽃들이 산자락을 수 놓았다. 돌아온 일상, 거리의 풍경도 달라져 있었다. 푸른 잔디가 돋아나 있고, 불어오는 바람에 꽃비가 내려온다. 4월5일은 식목일. 하늘이 차츰 맑아진다는 청명. 지구가 이렇게 아픈데. 계절마다 절기마다 피어나는 꽃들이, 푸른 잎으로 몸을 감싸는 나무들이, 달라지는 바람 내음과 볕, 낮과 밤의 길이가 고맙고도 서글프게 느껴진다. 사람 하나 살 것 같지 않은 스산한 신도시의 거리에 흩뿌리는 꽃잎들 아래에서 어떤 낭만보다는 분명한 경고를 감각한다. ‘절멸’이냐 ‘전환’이냐. 아니 ‘절멸’인가 ‘혁명’인가라는 우리 앞의 오랜 질문을.

타오르는 지구. 이르게 피어난 봄꽃은 전 지구적 이상고온의 결과다. 부산에서는 관측 이래 가장 이르게, 서울에서는 관측을 시작한 1922년 이후 두 번째로 빠르게 벚꽂이 피어났다. 전국적으로 평년보다 최대 16일 앞서 벚꽃들이 개화했다. 지난 주말에는 충남·충북·전남·서울 등 전국에서 서른 건이 넘는 산불이 났다. 남부지역은 50년 만의 최악의 가뭄으로 신음하고 있다. 폭염과 혹한, 홍수와 가뭄, 산불, 미세먼지, 감염병, 전 세계를 뒤덮은 기후재난은 이르게 피어난 봄꽃의 낭만이 아닌, 평범한 사람들의 일과 삶의 세계를 부수는 참혹한 비극의 일상화다.

지난달 20일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 58차 총회에서 발표된 ‘제6차 종합보고서’는 2040년이 되기 전에 지구의 표면 온도가 산업화 이전과 비교해 1.5도 올라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폭염과 가뭄, 기후 관련 질병 등과 같은 재난이 더욱 복합적으로 빈번하게 세계 곳곳에서 일어날 것임을 경고했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9년 대비 43% 감축해야 하고, 현재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투자액의 세 배에서 여섯 배 이상의 사회적 투자가 필요하다고 짚었다. 바로 다음 날인 같은달 21일, 윤석열 정부는 ‘제1차 국가 탄소중립 녹색성장 기본계획(안)’을 발표했다. ‘2030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2018년 대비 40% 감축)를 유지하면서, 산업 부문의 감축 목표를 14.5%에서 11.4%로 3.1%포인트나 줄였다. 줄어든 산업 부문의 감축량은 국제 감축과 탄소 포집·활용·저장(CCUS) 기술 등 실효성이 불확실한 부문을 통해 감축하겠다는 안이다. 연도별 감축계획을 살펴보면, 윤석열 정부의 임기 내에는 조금씩 줄이다가 2029년 이후에 약 100만톤을 급격하게 감축하겠다는 계획이다. 정부는 계획 수립 사흘 전에야 공청회를 개최하고, 공청회 하루 전에야 기본계획(안)을 발표해 국가 중장기 계획에 대한 시민사회와의 민주적 토론 절차도 폐기해 버렸다. 시민사회는 이번 정부의 계획안에 대해 ‘산업계 민원 해결 보고서’(그린피스), ‘기후위기 대응 포기 선언’(환경운동연합)이라 평가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의 탄소중립계획은 ‘가장 책임이 없는’ 이들의 ‘가장 큰 피해’를 방기하고, ‘공동의, 그러나 차별적인 책임’이라는 국제기후협약의 원칙들은 무시하며 ‘기후악당’들의 책임을 덜어 주고 있다.

‘서로 싸우는 형제들’(자본가와 국가권력)의 또 다른 ‘이윤 경쟁’을 위한 윤석열 정부의 전환 정책에 맞서, 평범한 이들의 일과 삶보다 이윤만을 앞세웠던 자본주의적 모순에 뿌리내린 기후재난에 맞서, 다른 세계를, 다른 일과 삶을 민주적으로 기획하려는 노동자와 시민들의 목소리가 다가오는 14일 세종에서 울려 퍼진다. “함께 살기 위해 멈춰!” 4·14 기후정의파업이다.

‘서로 싸우는 형제들’의 ‘이윤 경쟁’에 더는 지구의 생태와 우리 삶의 문제들을 맡겨 둘 수 없다는 전 세계 시민들의 운동이 2000년대 초반부터 새롭게 성장해 왔다. 2007년 인도네시아 발리에서는 ‘지금 기후정의를!’(Climate. Justice Now!)이라는 이름으로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국제적인 사회운동 연대체가 출발했다. 2010년 볼리비아 코차밤바에서는 기후변화와 대지의 권리에 대한 세계 민중회의(Peoples’ World Conference on Climate Change and Mother Earth Rights)가 열렸고, 자본주의의 구조적 모순에 저항하는 ‘기후정의’(Climate Justice)운동의 지향을 담은 민중협정을 채택했다.

1990년대 후반의 대안 세계화 운동에 참여했던 다양한 주체들의 경험들이 맞닿은 이 기후정의 운동은 기후변화의 근본적 원인에 저항하는 전 세계 시민들의 민주적인 토론과 저항을 운동의 원칙으로 삼고 반전 운동 이후에 가장 활력적인 국제적 연대를 만들어 가고 있다.

코차밤바 민중협정이 명시했던 오늘날 기후정의 운동의 요구는 분명하다. “기후변화가 아니라 체제의 변화”(System Change, Not Climate Change)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운동은 지금의 기후위기가 세계적 차원으로 조직된 자본주의의 모순에 근거하며, 이를 해소하지 않는다면 더는 지속가능한 삶과 사회적 관계를 이어 갈 수 없을 것이라는 전망을 공유한다.

4월14일, 세종으로 모이자. 우리의 일을 하루 멈추고, 다른 일과 삶을, 다른 내:일을 함께 열어 가자!

충청남도노동권익센터 정책기획팀장 (recherche@cnnodong.net)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