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은호 변호사(공공운수노조 법률원)

케이팝 아티스트 몬스타엑스의 ‘무단침입’이라는 노래는 “이걸 범죄라 할 수 있나”라는 가사로 시작한다. 이 노래는 ‘네 맘에 내가 무단침입하겠다’는 다소 거친 사랑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공교롭게도 나는 노동자들이 건물 내 퇴거 요청에 불응했다는 이유로 기소된 ‘공동퇴거불응’ 사건을 담당하던 중 이 노래를 듣게 됐다.

해당 사건은 아시아나KO 부당해고에 항의하는 해고 당사자 3명과 연대 노동자 한 명이 서울 중구 서울지방고용노동청 건물 1층에서 퇴거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기소된 건이었다. 아시아나KO의 정리해고가 위법함을 노동위원회와 법원에서 모두 인정받았음에도 여전히 회사가 복직의무를 이행하지 않자, 위 네 사람이 서울노동청장과 면담을 진행해 실효성 있는 해결책을 요청했다. 이후 건물에서 청장의 답변을 기다리며 퇴거 요청에 불응했다는 이유로 기소된 것이다. 당시 기준으로 부당해고 시점부터 1년이 넘어가고 있는데 차일피일 복직을 미루는 아시아나KO, 아무 책임도 지지 않으려는 원청 금호아시아나, 언제 줄지 모르는 답변을 기다리라는 텅 빈 말만 하는 노동청장, 그 사이에서 건물 1층에 앉아 있을 수밖에 없던 노동자들을 변호하며 자꾸만 저 노래 가사가 머리를 맴돌았다.

그 이후 내가 변호하거나 법률원이 수임하게 되는 형사사건들을 볼 때면 종종 이 노래를 들었다. 가끔은 강렬한 비트에 감정을 꾹꾹 누르며 서면을 썼고, 가끔은 “아니 그러니까 이게, 진짜 그 정도의 범죄가 된다는 거지?”하면서 노래를 듣고 있곤 했다. 대부분 공소사실의 시작에는 ‘갈 곳 없는 목소리들이 모인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부당해고 당한 노동자가 길에서 마스크를 쓰고 간격을 넓혀 도열하는 형태로 집회를 진행했지만, ‘코로나로 인해 어떤 형태의 집회이든 금지된 시기에 집회를 했으니 집시법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기소(아시아나KO), 적자가 계속되는 삶 속에서 최소한의 생계를 보장할 수 있는 임금이라도 달라고 파업하자 대체차량을 투입하고는 그 차량들의 출차를 저지했다는 이유로 한 업무방해 기소(하이트진로), 안전운임제 일몰에 맞서 파업투쟁을 하자 ‘화물차주의 담합’이라는 이유로 공정거래위원회 조사를 방해했다며 기소(화물연대본부), 그리고 집회에 참여한 노동자들에게 ‘노동조합의 뒤에 숨어 조직적인 증거인멸, 도주의 우려가 있다’며 숱하게 청구되던 구속영장들. 노동자의 요구를 들어야 하는 회사와 정부가 듣지 않아 갈 곳이 없어진 소리들이 모여 투쟁한 행위가 자꾸만 범죄가 덧씌워져 공소가 제기되거나 유죄판결까지 내려지곤 한 것이다.

위 공소사실들처럼 법률원에서 일하며 접한 노동조합의 형사사건들은 대개 공안범죄였다. 노동자들은 응당 책임을 부담해야 하는 회사나 정부에 책임을 물었다는 이유로, 혹은 인간답게 일하게 해 달라고 요구했다는 이유로 ‘공공의 안녕을 위협’하는 범죄자가 돼야 했다. 책임을 져야 할 사람들이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는데, 그럼 이들은 어디로 가서 어떻게 이야기해야 했을까? 교섭하자고 해도 안 해, 판결대로 복직의무 이행하라고 해도 안 해, 경찰에 가서 조사를 받고 인적사항을 다 진술해도 노조 조합원이거나 간부라는 이유만으로 도망가고 증거를 없앨 ‘전문 시위꾼’이라고 해, 그렇다면 어떤 일을 마주해도 노동자는 눈 뜨고 코 베이며 살아야 한다는 것인지.

행위에 따르는 형사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을 떠나서, 오직 그 행위만을 이유로 노동자들이 범죄자가 돼야 하는 것이 과연 맞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자꾸 든다. 법정에 서서 행위를 인정하며 “반성한다”는 말을 입 밖에 꺼내게 되는 노동자들 옆에서 열려 있는 귀로도 아무것도 듣지 않으려 하는 순간도 있다. ‘그래도 노동운동은 늘 부당한 현실을 조금씩 바꿔 오지 않았나’하는 생각 하나로 버티려 하지만, 문득 분하고 무기력해질 때도 있다.

또 다시 답답함 속에 이어폰을 꽂으면 “이걸 범죄라 할 수 있나”라는 가사에 이어, “이걸 싫다 할 수 있나”라는 가사가 흘러나온다. 그러게. 후퇴하는 노동정책과 심해지는 노조탄압에 맞서 저항하는 이들에게, 시대를 역행하며 노조를 탄압하는 사람들이 그걸 싫다고 할 수 있을까. 법의 지형조차 기울어진 사회 속에서 오늘도 두려움 없이 싸우는 모든 노동자를 응원하며, 변호사라는 직업을 떠나 노동자 동지로서 “그걸 범죄라 할 수 없다”고 말하고 싶은 날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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