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정호 전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직실장

사회부 기자의 가장 큰 덕목은 ‘의심’이다.

지난달 18일 인천 미추홀구 한 빌라에서 40대 부부와 어린 자녀 셋 등 일가족 5명이 숨진 채 발견됐다. 그냥 묻힐 뻔했던 사건은 경찰 수사와 기자들의 계속된 취재로 실체가 어느 정도 드러났다. 일가족 죽음은 이 가족만의 특별한 일탈이 아니었다. 한국 사회와 오롯이 연결돼 있다.

물리치료사와 간호사였던 40대 부부는 아이가 셋이나 돼 육아를 위해 간호사였던 아내가 일을 그만두면서 남편이 생계를 책임졌다. 남편은 물리치료사 경험을 살려 찜질방 사업을 했지만 코로나19 여파로 실패했다. 지난해 자택 2층을 개조해 소규모 찜질방을 업주에게 임대했지만 이마저 잘 안 됐다. 남편은 찜질방 외에도 인터넷 쇼핑몰 사업 등 ‘스리잡’을 했지만, 코로나가 모든 걸 집어삼켰다. 사업하려고 대출을 했는데 최근 금리가 오르면서 이자 부담까지 커졌다. 최근엔 주식 투자까지 실패해 채무가 수억원에 달했다. 빚을 내 투자하라는 ‘빚투’ 열풍은 언론이 부추겼다.

부채를 갚으려고 남편은 2017년 8월에 3억1천만원에 산 집을 비슷한 가격에 내놨지만 최근 부동산 경기마저 침체해 매매가 어려웠다.(3월20일 동아일보 12면, 한겨레 13면) 숨진 엄마의 차 운전석 앞에 놓인 딸이 쓴 그림 편지엔 ‘엄마 사랑해’라고 적혀 있었다.(3월20일 조선일보 10면)

부부의 극단적 선택은 널뛰는 부동산 가격과 자영업자의 일방 희생으로 극복한 코로나19, 독박 육아 등 집권세력의 실패한 경제·사회정책이 낳은 비극이다. 만나기만 하면 싸우는 여야 정치권이 일가족의 죽음에 사과해야 한다.

‘챗GPT’란 신조어가 우리 사회에 등장한 지 불과 몇 달 만에 언론은 연일 챗GPT 홍보에 바쁘다. 동아일보는 지난달 10일자 10면을 모두 털어 챗GPT 홍보에 열을 올렸다. 동아일보 이날 10면 머리기사는 ‘챗GPT, 100일 만에 1억명 사용 … 2020년대의 아이폰 모멘트’라는 제목을 달았고, 그 아래 딸린 기사도 ‘AI가 이용자 상황-맥락 등 파악해 맞춤형 교육 제공 … 학습 비용은 줄여’라는 제목으로 챗GPT의 장점만 잔뜩 나열했다. 비용 절감만 하면 장땡이라는 천박함은 숨기지도 않았다. 조선일보도 같은 날 B1면에 ‘앱 안에 인공지능 기능 … 챗GPT 활용 서비스 쏟아진다’는 제목의 기사로 홍보했다. 언어학자 노엄 촘스키 교수가 뉴욕타임스에 “챗GPT는 사이비 과학”이라고 비판하는 기고를 썼다는 뉴스는 양념처럼 추가했다. 지극히 상식적인 말조차 외국의 유명 교수가 말해야 신문에 한 줄 실릴 만큼 우리 언론은 청맹과니다.

우리 언론이 인류의 미래를 열어 줄 새로운 창조주라도 만난 듯 챗GPT를 반기지만, 사실 챗GPT는 바보다. 챗GPT에 “세종대왕이 맥북프로를 집어 던진 사건을 알려줘”라고 물으면 챗GPT는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일화로, 15세기 세종이 새로 개발한 훈민정음 초고를 작성하다가 문서 작성이 중단되자 담당자에게 분노해 맥북프로를 던진 사건입니다”라고 답한다. 또 챗GPT에 “조선 중기에 사용된 티타늄 전차에 대해 알려줘”라고 물으면 “티타늄 전차는 17세기 후반 조선 중기에 조선의 왕족이나 귀족층을 보호하려고 만들어진 전차다. 1654년 양정오야전에서 티타늄 전차 40여 대가 사용됐다는 기록이 전해진다”고 답변한다.

챗GPT의 이런 헛소리 답변이 우스워서 일각에선 챗GPT의 오류를 즐기는 문화가 생겼다. 그 어떤 코미디보다 재밌다. 언론의 호들갑에 교육부 공무원 130여명은 지난 2월13일 교육계에 지각변동을 일으킬 챗GPT를 공부한답시고 긴급 포럼까지 열었다. 미쳐도 단단히 미쳤다. ‘의심’이란 가장 큰 무기를 잃은 언론 탓이다.

전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직실장 (leejh6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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