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지난달 30일에 판결이 선고된 사건은 쟁점이 무엇인가요.’ 순간 나는 무엇인지 생각나지 않았다. 분명히 내가 원고 노동자들을 대리해서 승소 판결을 받아냈던 것인데 기자의 질문에 ‘쟁점이 무엇인가’ 멈칫했다. 당연히 이기는 사건이라고 여겨 그랬는지 별일이네 했다. 그래서 사건기록을 펼쳐 판결문을 찾았다. 임금피크제 적용 노동자들이 지급받는 상여금은 통상임금에 해당한다며 추가 연차휴가수당 등 법정수당을 청구한 사건이었다. 처음 상담했을 때부터 재판과정까지 생생하게 떠올랐다.

2. 이들은 회사 규정에 따라 1월, 2월, 5월, 7월, 9월, 11월의 첫 영업일에 상여금을 각 100%씩 연간 600%를 받았다. 그런데 정년을 몇 년 앞두고 임금피크제를 적용하더니 사측은 임금피크제 적용 노동자들에게 이러한 상여금까지 포함, 기존 임금수준의 65%를 기본급여로 정해서 매년 지급했다.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졸지에 자신의 임금을 35%씩이나 삭감당했으니 억울할 수밖에. 대법원에서 임금피크제 무효 판결이 나왔다는 언론보도를 접하자, 임금피크제가 위법·무효라고 주장하면서 삭감당한 임금 지급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현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변론 중에 있다. 그런데 이와 별개로 임금피크제가 적용돼 지급받은 임금조차도 사측이 법적 기준에 미달한 통상임금 기준으로 연차휴가수당 등 법정수당을 지급했던 것이다. 그래서 별도로 청구소송을 제기해 이번에 판결을 받았다. 사측이 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하지 않은 이유는 간단하다. 상여금 지급기준에 관한 회사 규정에서는 ‘상여금은 지급일 현재 재직 중에 있는 자에 한해 지급한다’고 규정돼 있다는 것이다. 이른바 이 회사 상여금은 재직조건의 임금이라서 고정성이 결여돼 통상임금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회사 노동자들에게 이러한 상여금을 제외한 통상임금 기준으로 각종 법정수당을 지급했다. 급기야는 임금피크제 적용 노동자들에게도 기존에 지급받은 임금수준의 65%씩 임금피크제를 적용해 지급하였다.

3. 처음 이 사건을 상담하면서 내 머리에 과거 한국지엠 사건이 겹쳐졌다. 2000년 전후해 이 나라에서는 호봉제에서 연봉제로 임금제도의 변경을 추진했는데, 당시 노동조합이 조직되지 않은 사무관리직 중심으로 대거 연봉제가 도입됐다. 한국지엠의 사무관리직도 그랬다. 연봉제라지만 기존 기본급을 기본연봉으로, 상여금을 업적연봉으로 하는 식이었다. 어쨌건 연봉제이니 연간 임금총액을 정해 이를 매월 나눠서 급여로 지급하는 방식으로 운영됐다. 여기서 문제가 생겼다. 2006년 당시에는 이 나라에서는 감히 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해당한다고 주장하지 않을 때였다. 당연히 법원에서 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해당한다는 판결도 하나 나와 있지 않았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아무도 아니라고 해도, 상여금을 포함해 연간 임금총액을 정해서 이를 매월 나눠 월 급여로 지급하는 연봉제라면 그렇게 지급하는 월 급여에 포함됐다는 상여금은 이제는 이전과는 달리 봐야 하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판결해야 했다. 바로 이런 생각을 했기에 당시 나는 한국지엠 사무노위에 업적연봉을 통상임금이라는 주장으로 임금소송을 제기하자고 제안했었다. 이것이 이 나라에서 상여금의 통상임금 해당성에 관한 노동자들 소송이 본격화되는 계기였다. 이렇게 사무관리직이 소송을 제기하자 2011년 초 노동조합이 주도해서 생산직 노동자들이 사용자 한국지엠을 상대로 집단적으로 통상임금소송을 제기했고, 이러한 소식을 접하고 2011년 10월 기아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이 주도해서 통상임금소송을 제기했다. 이후 현대차, 현대제철 등 많은 사업장에서 통상임금소송이 제기됐다. 2013년에는 갑을오토텍사건에서 대법원 전원합의체 재판부가 9월 초 공개변론을 열어 12월 중순 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해당할 수 있다는 판결을 선고하기에 이르렀다. 이렇게 돌아보면, 처음 시작할 때는 예상하지 못했던 방향으로 일이 나아가기도 한다. 당초 연봉제라서 과거 상여금이었던 업적연봉을 통상임금에 해당한다고 주장해 소송한 것이었지만, 연봉제가 아닌 호봉제의 상여금까지 주장해서 소송해서 급기야 통상임금으로 인정받게 됐다. 어쨌거나 이렇게 한국지엠사건, 즉 업적연봉의 통상임금 해당성에 관한 사건이 내 머리에서 겹칠 만큼, 이번 사건에서 임금피크제 임금에 포함된 기존 상여금 부분이 통상임금에 해당한다는 데에는 나는 처음부터 자신이 이길 자신이 있었다. 이미 한국지엠 사건에서 수도 없이 했던 주장이고, 법원 판결을 받아냈던 것과 너무도 유사한 사건이었으니 말이다. 과거가 무슨 법적 책임을 면할 변명일 수는 없는 것이니 말이다. 아무리 과거에는 아니라고 해도, 이제는 통상임금 판단기준에 해당한다면 통상임금이라고 법적으로 판단돼야 하니 말이다. 연봉제가 도입되기 전에 통상임금에 해당하지 않는 상여금이라고 아무리 주장해도, 임금피크제가 적용되기 전에 지급받았던 상여금은 통상임금에 해당하지 않는 것이라고 아무리 변명해도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4. 사실 회사 상여금은 재직조건이라서 통상임금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사측 주장 자체도 맞지 않다. 일반 노동자들에게 지급하는 상여금이 지급일 현재 재직 중인 자에 한해 지급하도록 규정돼 있다며 사측은 재직자조건의 상여금이니 고정성이 결여돼 통상임금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이 회사, 즉 중소기업은행에서는 해당 지급월의 첫 영업일에 100%씩을 지급하는 것으로 연간 600%의 상여금을 지급하도록 규정해서 지급한다. 여기서 첫 영업일에 지급하는 것이니 일정 기간까지 근무하는 것도 아니고 첫 영업일에 재직하고 있기만 하면 지급한다는 것이다. 영업일 중 첫 영업일에 재직하기만 하면 지급한다는 것이니, 예를 들어 1일부터 31일까지 중 1일 하루만 출근하면 노동자는 상여금 100%를 지급받는 것이다. 이런 상여금은 재직자조건이 있는 다른 사업장들의 상여금과 그 성격이 같다고 볼 수 없다. 겉보기에는 재직자조건의 상여금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재직자조건과 무관하게 지급하는 상여금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이 회사 노동자들이 집단적으로 제기한 통상임금소송이 1심에서 승소했다가 2심에서 뒤집어져 현재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나아가 재직자조건이라도 상여금은 통상임금에 해당한다고 봐야 한다. 갑을오토텍 사건에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로 재직자조건 임금에 관해서 고정성이 결여돼 통상임금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고, 이에 따라 재직자조건의 상여금은 통상임금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각급 법원에서 판결하고 있다. 그래도 나는 재직자조건이라도 통상임금에 해당한다고 주장한다.

통상임금이란 무엇인가. 별거 아니다. 임금 중 소정근로에 대하여 지급하는 것이 통상임금이다. 임금은 사용자가 근로자에게 근로의 대가로 지급하는 금품인데, 이러한 임금 중에서 근로자가 소정근로를 제공하기만 하면 사용자가 지급하는 것이면 모두 통상임금에 해당한다고 보면 된다. 어떠한 금품이 임금에 해당하는지는 머리 아프게 궁리해야겠지만, 통상임금에 해당하는지는 그럴 필요가 없다. 이미 머리 아프게 궁리해서 근로의 대가에 해당하는 금품이라며 임금에 해당한다고 정해진 것 중 소정근로만 해도 사용자가 지급하는 것인지를 살펴 판단하면 된다. 너무도 간단한 것을 두고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등 우리 법원 판례는 정기성, 일률성, 고정성이라는 개념적 징표를 가지고 판단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여기서 재직자조건이 고정성이 결여돼 통상임금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 현재 세아베스틸, 한국유리 등 여러 사업장의 재직자조건 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해당하는지 여부에 관해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이들 사건에서 부디 소정근로의 대가 임금으로서 통상임금의 의의를 명확히 밝혀주기를 바라고 있다.

5. 통상임금으로 보더라도, 임금피크제는 노동자의 권리를 심각하게 침해한다. 비록 이번 사건에서는 회사가 통상임금에 포함해 주지 않았던 상여금이 통상임금으로 인정돼 임금피크제 적용 노동자들이 연차휴가수당 등 법정수당을 더 받게 됐다. 하지만, 임금피크제로 삭감된 임금 수준에 비할 바가 되지 못한다. 그만큼 오늘 이 나라 노동자 임금 권리에서 임금피크제는 심각하다. 아무리 변명해도 정년을 앞둔 나이 많은 노동자들의 임금을 삭감하는 제도인 것은 명백하다. 그럼에도 오늘 이 나라에서는 고령의 노동자에 대한 차별로서 위법, 무효라고 법원은 선언하기를 주저하고 있다. 대법원에서 임금피크제가 무효라는 판결이 선고된 뒤에도 여전히 각급 법원에서 임금피크제는 무효가 아니라는 판결이 잇달아 나오고, 그 판결 이유를 보면, 과반수노조의 동의로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것이니 무효가 아니고, 법적 정년 60세로 정년은 연장하는 것인데도 정년을 연장해주는 것이라고 위법하지 않다는 식으로 판박이다. 연령차별을 금지해 고령자의 고용 등 권리를 보장한다는 법률(고용상 연령차별 금지 및 고령자 고용촉진에 관한 법률)까지 제정해 시행하고 있는 나라에서 오늘 이렇게 간단히 임금피크제가 위법·무효가 아니라는 판결이 나온다는 게 나는 심각하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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