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설. 기록적인 한파가 뒤따랐다. 55년 만이라고. 북극 기온이 올라 제트기류가 약해졌고 그 때문에 냉기를 가두지 못했다나. 각설. 펑펑 쏟아지는 눈을 보고 사람들 이제 저 까마득한 남극이며 북극의 눈물을 떠올린다니 환경 다큐멘터리에 빚진바 크다. 젖 먹이느라 바짝 마른 북극곰 어미는 사냥감 찾아 다 녹아 질퍽이는 얼음판을 필사적으로 기었고 극한의 땅에서
술 중에 '갑'이 낮술이라고 청년은 말했다. 옆자리 정치인이 맞장구쳤다. 건배, 이른 시각 호프집이 붐볐다. 자칭 '청년잉여'들이 홀짝홀짝 저마다 잔을 비웠다. 하지만 귀를 쫑긋, 눈은 번쩍 세워 뜬 채 자릴 지켰다. 말 중에 '갑'이라는 취중진담을 기다렸다. 각설, 위원장은 청년대책을 물었다. 청년의무고용할당제며 실업수당, 청년 인지적 관점까지
겨울비가 추적추적. 3천원 하는 비닐우산도 미처 구하지 못한 사람은 그저 땅을 보고 발걸음 총총 보챘다. 머리숱 적은 노신사가 도로 옆 상점 처마 밑을 지켰고 빨강 파랑 우산 챙겨 든 이들만이 여유롭게 인도를 걸었다. 꽝 소리에 놀라 흠칫. 굴착기 삽질에 건물 넘어가는 소리가 내내 요란했다. 철골조 타던 건설노동자는 별일도 아니라는 듯 무심히 게걸음질 바빴
가만 꼭 잡았다. 손 내밀어 응원했고 손 붙들어 화답했다. 조몰락 조몰락 오래도 잡고 섰다. 얼었던 손이 녹았고 굳었던 표정이 밝아졌다. 눈 맞추어 같이 웃었다. 눈 맞으며 함께 외쳤다. 대학에서 청소하던 노동자들이 먼 길 부러 찾았다. 찬 바닥에 철퍼덕, 옆 지기를 자청했다. 억울함을 나눴다. 용기백배, 덕성여대 식당에서 일하다 해고된 윤혜숙(57&mid
평택시 칠괴동 자동차 공장 정문 앞에 사는 멍멍이는 많이도 컸다. 1년 전, 멋도 모르고 뛰며 뒹굴던 새끼 유일이는 부쩍 자라 의젓하다. 다리도 길어 훤칠하다. 짧은 다리 어미 키를 훌쩍 넘겼다. 하지만 식탐 버릇 여전해 지난밤 고구마 굽던 난로 곁을 맴돌며 연신 킁킁댔다. 콧물 줄줄 흘리며 싸다녔다. 노조 조끼 입은 아저씨 곁에 착 붙은 이유가 뻔했다.
바람은 드셌고 시야는 흐렸다. 눈발 사납게 날려 뺨을 때리고 손발 차갑게 얼어 무감했다. 싸매고 입고 둘러 가려 봐도 거기 빈틈. 기어코 바람 들어 할퀴면 생채기인 양 아렸다. 돌풍에 휘청, 황급히 손 뻗어 잡은 나뭇가지가 투둑 툭 힘없이 부러졌다. 제 입은 눈옷을 다 떨궜다. 등 짐은 무거웠고 갈 길은 멀었다. 마냥 높았다. 가 닿을 듯한 저기 봉우리가
북적이던 일본대사관 앞. 정몽준 전 한나라당 대표가 무대에 올랐다. 술렁이던 사람들, 이내 터져 나온 야유. 시민들은 유력 정치인의 이름 석 자 대신 "내려가"를 연호했다. "자격 없다"고 소리쳤다. 노력하겠다는 약속 남겨도 믿는 이가 적었다. 사람들은 그이를 철새라고 했다. '딴나라당'이라고도 말했다. 정봉주 전 의
1천회, 매주 수요일이면 어김없던 시위가 14일 서울 종로구 중학동 일본대사관 앞에서 이어졌다. 20여년째다. 참가자도 취재진도 많아 발 디딜 곳 없었다. 사람들 노래를 부르고 시를 읽고 구호를 외쳤다. "사과하라" 그 한마디, 구호는 짧았다. 저마다 준비한 선전물을 오래 들고 벌섰다. 할머니는 울었다. 트위터 이용자들이 모금해 마련한
야속했지만 그저 바라볼 뿐. 정문 철창은 굳게 닫혔다. 두어 마디 욕 섞어 소리도 쳐 봤지만 공장으로 돌아가는 그 걸음 붙들진 못했다. 언젠가 형님이었고 아우였고 친구였지만 처지는 갈렸다. 이해가 달랐다. 빨간 머리띠 묶고 사람들 집회를 열었고 천막을 쳤다. 공장으로 돌아가자고 외쳤다. 작업복 입은 사람들 그 너머 집회를 가졌고, 공장을 지키자고 외쳤다.
지잉 척 쿵 지잉 척 쿵. 흐트러짐 없는 그 박자에 빈틈이 짧았다. 엇박자는 없었다. 기계는 돌았고 사람 손이 따라 바빴다. 정교한 금형 맞붙으면 거기 빈틈이 없었다. 쿵 소리 한 번에 쇳조각이 하나씩 찍혀 나왔다. 자동차 부품 3만여개 중 하나다. 사람 손이 날랬고 기계가 따라 지잉 척 쿵 바삐 돌았다. 라이트커튼과 두 손 조작 버튼 같은 안전장치도 많았
한나라당이 22일 오후 국회 본회의를 열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을 전격적으로 날치기 처리했다. 야당이 무효투쟁을 선언하면서 정국이 급속하게 얼어붙고 있다.한나라당은 이날 오후 야당 의원들의 강력한 저지 속에 한미FTA 비준안을 표결에 부쳤다. 이어 재적의원 295명 중 170명이 참석한 가운데 찬성 151명, 반대 7명, 기권 12명으로 비
민주노총이 진보적 정권교체와 노동관계법 전면 재개정을 위해 내년 6월 19대 국회 개원시기에 맞춰 총파업을 벌인다.민주노총은 13일 오후 서울광장에서 ‘한미FTA 저지·전태일 열사 정신계승 2011 전국노동자대회’를 개최해 이같이 선포했다. 조합원 4만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열린 이날 대회에서 민주노총은 "1%의 재
전기 랜턴을 손에 들고 직각으로 떨어지는 가파른 계단을 내려오며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35미터 높이 골리앗 크레인 85호기 조종실을 비우고, 청소를 하고, 짐을 싸고, 손을 씻고, 얼굴에 화장품을 바르며 누굴 떠올렸을까. 김진숙이 살아서 돌아왔다.309일 만의 귀환10일 오후 3시17분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안. 하얀색 야구모자를 거꾸로 쓴 김진숙 민
여의도는 섬이다. 물길 이제는 흔적만 남았고 다리가 여럿 촘촘해 육지처럼 오가지만 이름따라 거기 섬이다. 한 무리의 긴 행렬, 그 곳 둥근 지붕 건물을 향했지만 가 닿을 순 없어 그저 휘휘 돌았다. 여럿이 가면 거기 길이라고, 수풀을 헤치고 언덕을 올라 사람들 지도엔 없던 길을 새겼다. 막히면 휘 둘러 지나는 게 물길을 닮았다. 차림새도 나이도 생김새도 달
지난 28일 한미FTA저지 2차 범국민대회 참가자들이 국회에 진입해 시위를 벌이다 경찰에 연행된 뒤 호송버스 안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집회 참가자 2천500여명은 국회 진입을 시도하며 경찰과 충돌했다. 경찰은 물대포 등을 동원해 진압에 나섰고 이 과정에서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과 김영훈 민주노총 위원장 등 60여명이 연행됐다. 이날 한미FTA 비준안 본
희비는 갈렸다. 환호성이 터졌고 무거운 침묵이 돌았다. 꽃다발 든 손 줄줄이 부여잡고 두 팔을 번쩍 들었다. 플래시 번쩍 그 밤이 대낮처럼 밝았다. 어두운 표정 감추질 못하고 누군가는 쓸쓸히 돌아섰다. '끝판대장' 마무리 투수 공 끝에도 그 밤 희비는 갈렸다. "잘된 거지, 이제 좋은 일만 있겠지", 서울 마포구 공덕동 중앙노동위원회
바스락 낙엽 밟는 소리에 가을이 한창. 도톰히 쌓여 폭신해 도심 작은 숲 자리엔 방석이 필요없다. 한진중공업 해고자 정상채씨가 거기 앉아 해거름 볕 조명 삼아 서류를 뒤적인다. 읽고 또 읽는다. 부당해고 구제신청 관련 자료다. 서울 마포구 공덕동 중앙노동위원회 건물 앞에서다. 경찰이 지켜 선 이유다. 그 옆 해고자 여럿이 침낭에 내복까지 한 짐 꾸려 노숙
꼭 3개월 만이다. 30여년을 꾸준히 찾았다. "나 하던 데가 좋다"고 할머니는 말했다. 버선에 고무신 차림이었다. 티눈 때문에 아프다고 하니 손녀가 사 왔단다. 자식 손주 자랑이 그때부터 길었다. 여든여덟, 할머니는 곱게 늙었다. 꼭 39년이라고. 21살 때 안순자씨는 서울 마포에 미용실을 열었다. 당돌하고 꿈 많던 아가씨는 오랜 단골
술 한잔 걸쳐서만은 아니지만, 꼭 신명이 나서는 아니지만. 상여 앞세워 사람들 아리랑 타령을 어야 디야. 몸에 익은 세박자 춤사위가 절로 얼쑤. 좋구나! 잠시지만 놀고 보세 노다나 가세. 근심 걱정 놓아 두고 잠시지만 앗싸 좋다. 잠시 휘청 엇갈려도 아스팔트 꾹꾹 밟아 지신밟기 열심이니 잡귀야 물렀거라, 운수는 대통이라. 풍물패 마침 들어 당산 가듯 향한
천막농성장 울 밑엔 봉숭아가 지천이다. 빨간 꽃잎 똑똑 따다 절구질을 콩닥콩닥. 아차차 푸른 잎도 잊지 않고 얼버무려 조물조물. 백반이 필수라는데 소금도 괜찮다니 솔솔 뿌려 준비 완료. 비닐 조각, 실 토막 부족할까 넉넉히 챙겨 두고 언니 동생 둘러앉아 이 손 저 손 쪼물딱 쪼물딱. 벗겨질까 조심조심, 세 시간여 기다림이 마냥 길었다. 봉숭아 물 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