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겨울비가 추적추적. 3천원 하는 비닐우산도 미처 구하지 못한 사람은 그저 땅을 보고 발걸음 총총 보챘다. 머리숱 적은 노신사가 도로 옆 상점 처마 밑을 지켰고 빨강 파랑 우산 챙겨 든 이들만이 여유롭게 인도를 걸었다. 꽝 소리에 놀라 흠칫. 굴착기 삽질에 건물 넘어가는 소리가 내내 요란했다. 철골조 타던 건설노동자는 별일도 아니라는 듯 무심히 게걸음질 바빴다. 철거는 끝나지 않았다. 그 너머 백화점 벽엔 꿈 같은 할인 행사 알림천이 붙었다. 사은 선물도 준다고 했다. 24일까지다. 세일은 끝나지 않았다. 길 따라 곳곳에 현수막이 붙었다. 빼뚤빼뚤 쓴 손글씨가 비장했다. 밀어붙이기식 재개발에 반대한다고 말했다.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새로 생긴 공터 주차장엔 메르세데스 벤츠며 아우디·렉서스 따위 고급 차가 많았다. 남일당 건물 터다. 불에 타 죽은 누군가의 영정 그림이 공사장 펜스에 흐릿하게 남았다. 학생 몇몇이 그 앞을 찾아 용산참사를 곱씹었다. 옥살이하고 있는 철거민 얘기를 잠시 나눴다. 꼭 3년, 살려고 올라 죽어 내려온 이들 삼년상은 치른 셈이다. 진상규명은 멀었다. 철거는 계속된다. 용산참사는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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