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서울교통공사 역무원이 서울지하철 신당역에서 같은 회사 동료의 스토킹 범죄로 살해당한 현장에서 누군가 외쳤다. “여성이 ‘일하다’ 죽었다”고. ‘신당역 스토킹 살인사건’ 직후 피해자를 추모하는 침묵시위가 이어졌고, 민주노총과 여성노동자들은 “젠더폭력은 산업재해”라는 손팻말을 들고 살인 현장인 지하철역 화장실 앞에 모였다.6년 전 강남역 화장실에서도 여성이 살해당했다. 그때는 일면식도 없는 사람이 ‘여성’이라는 이유로 살인을 했다면, 이번 사건은 업무 중에 발생했다. 사건이 일어난 ‘신당역 화장실’은 피해자의 ‘업무’ 공간에 속
디지털 플랫폼을 기반으로 이뤄지는 노동력을 토대로 성장한 기업들이 저마다 ‘혁신’을 외치고 있다. 인공지능(AI) 등 신기술을 구축해 비대면으로 고객에게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주장이다. 반면 ‘사람의 노동’은 혁신 뒤에 가려져 있다. ‘플랫폼기업’ 그물망에서 일하는 노동자가 증가하면서 사각지대에 방치돼 있다는 지적이 꾸준히 나온다.최근에는 플랫폼 창업 바람을 타고 ‘모바일 세탁업체’가 지속해서 생겨나고 있다. 고객의 빨랫감을 비대면으로 세탁해 하루 이틀 사이에 배송한다는 캐치프레이즈를 걸고 업계는 빠른 속도로 성장하는 추세다. 그러나
올해 1월27일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됐다. 5명 미만 사업장은 적용하지 않고, 50명 미만 사업장이나 공사금액 50억원 미만 건설현장은 법률 공포 후 3년 뒤에나 시행하기 때문에 ‘사각지대’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이뿐 아니다. 언제 다치거나 목숨을 잃을지 모르는 현장에서 일하면서도 산업안전보건법과 산업재해보상보험법(산재보험법) 적용에서 제외되는 노동자들이 부지기수다. 여전히 안전보건법령 테두리 바깥에 있는 노동자들의 얘기를 가 들었다. ‘누구나 안전하게 일할 권리를’ 캠페인의
문 닫힌 남녀공용 화장실을 들어가기 전 인기척을 살핀다. 문을 잠근 뒤 볼일을 보는 중에도 누군가 들어오지 않는지 귀를 쫑긋 세운다. 여성이라면 한 번쯤 느껴 봤음직한 보이지 않는 공포다. 일상적 공포는 일터에서도 이어진다. 방문점검 노동자는 고객 집 문 앞에서, 응급실 간호사는 환자 처치를 위해 커튼을 닫으며 행여 ‘무슨 일’이 있지 않을까 긴장한다. 보이지 않지만 위험은 실재하고, 사고는 일어난다. 공포를 말해도 ‘보이지 않는다’며 눈감은 이들도 사고에서 자유롭지 않다. 노동자가 겪는 성폭력은 구조적 문제가 켜켜이 쌓여 터진 지
대형마트 의무휴업 폐지가 소상공인과 노동자를 비롯한 여론의 반발에 부딪히며 ‘현행 유지’로 결론 나면서 사태가 일단락됐지만 유통업계 종사자들 사이에서는 여전히 뜨거운 감자다. 의무휴업 폐지를 둘러싼 논란은 전통시장 살리기 규제의 실효성 유무, 온라인·오프라인 간 규제 불균형 문제로 귀결됐지만 정작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휴식권 문제는 크게 조명되지 않았다. 노동자들은 같은 건물에서 일하는 노동자가 같이 쉬어야만 온전한 휴식을 취할 수 있고, 남들 쉴 때 쉬어야만 일과 삶의 균형을 보장할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가
올해 1월27일부터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되고 있다. 5명 미만 사업장은 적용하지 않고, 50명 미만 사업장이나 공사금액 50억원 미만 건설현장은 법률 공포 후 3년 뒤에나 시행하기 때문에 ‘사각지대’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이뿐 아니다. 언제 다치거나 목숨을 잃을지 모르는 현장에서 일하면서도 산업안전보건법과 산업재해보상보험법(산재보험법) 적용에서 제외되는 노동자들이 부지기수다. 여전히 안전보건법령 테두리 바깥에 있는 노동자와 현장을 가 찾았다. 안전보건공단과 함께하는 ‘누구나
영상=이인아, 김동주 사람과안전영상제작소 PD18년간 방역노동자로 일한 이학문씨는 뇌가 쪼그라드는 다발성신경계위축증을 앓고 있습니다. 이학문씨를 처음 만난 것은 지난해 12월이었습니다. 그는 술 취한 사람처럼 어눌한 말, 휘청거리던 걸음걸이 때문에 힘들어 했습니다. 7개월 만에 다시 만난 이학문씨는 말도 제대로 잇지 못하고 혼자서는 걸을 수도 없을 정도로 건강이 악화됐습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시시각각 이학문씨의 뇌는 기능을 잃어 가고 있습니다. 그는 자신이 방역소독 업무를 했던 15층 아파트에서 뛰어내리고 싶을 정도로 괴롭다고 말
2017년과 대한항공 청소노동자 5명이 기화식 방역소독을 마친 항공기 청소에 투입됐다가 몇 분 뒤 실신해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은 사건이 있었다. 고용노동부의 보건진단명령 등에 따라 항공기 청소노동자에 대한 직업병 조사가 이뤄졌다. 항공기 살충소독을 위해 사용한 유해물질 피레트린계(pyrethriods) 델타메트린 중독으로 밝혀졌다.말라리아 같은 질병을 예방하기 위해 세계보건기구(WHO)는 항공기에서 사용할 수 있는 유일한 살충소독제로 피레트린계를 권장한다. 그런데 살충소독제가 밀폐된 항공기를 이용하는 사람들의 건강에 영향을 미
▲ 영상=이인아, 김동주 사람과안전영상제작소 PD“지…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한 번도 일을 쉰 적이 없어요.”이학문(53)씨가 음절 하나하나를 힘겹게 발음하면서 간신히 한 문장을 만들어 말을 마쳤다. 그가 가장 하고 싶었던 말.“저는 일… 일을 하고 싶습니다. 아… 그런데 지금도 이명현상이 나서 내가 한 말이 (머릿속에서) 울… 울려요.”이학문씨는 뇌가 쪼그라드는 다계통 위축증을 앓고 있다. 몸의 중심을 잡는 소뇌가 제 기능을 못 하기 때문에 걷는 것은 물론 가만히 서 있는 것조차 어렵다. 근육과 장기들도 말을 듣지 않는다. 식도와
5년차 웹툰작가 A씨. 쉬지 않고 일했지만 그에게 남은 것은 2천만원의 빚뿐이다. 프리랜서라 1금융권 대출이 어려워 2금융권에서 1천300만원을, 지인들에게 700만원을 빌렸다. 그는 하루 평균 12시간을 일하며 한 달에 이틀을 쉰다. 생활비를 충당하기 위해 시간을 쪼개 간단한 디자인 아르바이트를 병행한다. 두 번째 작품을 끝내고 지금은 세 번째 작품을 준비 중이다. 그는 “MG(Minimum Guarantee), 그중에서도 후차감 MG 제도가 참 악랄하다”며 “작가가 자기가 낸 작품 매출의 반도 못 가져가게 하는 제도”라고 했다.
최근 고용노동부가 프로축구단 유소년팀에서 10년 넘게 일한 감독에 대해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해당한다는 취지의 판단을 내렸다. 감독이 제기한 퇴직금 체불 진정을 받아들여 구단 운영사에 퇴직금 지급명령을 내린 것이다. 그런데 운영사측은 시정지시 이행기간인 지난 19일까지 퇴직금을 지급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프로축구 유소년팀 지도자들과 구단 사이 퇴직금을 둘러싼 분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들은 프로팀 지도자들과 달리 훈련·지도 업무 외에도 학생선수 관리나 행정업무까지 떠맡는 경우가 많다. 형식적으로 용역계약을 체결한 개인사업자 신
“롤러대를 잡고 계속 (페인트)칠을 하거든요. 손에 힘이 들어가니까 손이 다 변형된 거예요.”울먹이듯 말을 잇던 김화영(60·가명)씨가 손가락 열 개를 펼쳤다. 23년차 도장노동자인 그의 오른손 중지와 약지 첫 번째 마디는 작은 구슬이 들어 있는 것마냥 울퉁불퉁 튀어 나왔다. 롤러를 쥘 때 주로 힘이 들어가는 부위다. “억수로 아팠다”던 그는 병원을 찾지 않았다. 이유를 묻자 그는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살기도 힘든데 병원 다니면 병원에 돈 다 가져다주고, 어떻게 먹고 사느냐”고 되물었다. 대우조선해양에서만 18년째 일하고 있지만 그
“고충이요? 반응이 없는 것이 가장 큰 고충이죠. 힘이 없으니 할 수 있는 게 뭐 있나요. 바닥에 앉아서 농성할 뿐이지….”지난 5월까지 현대자동차 용인 기흥 대리점에서 자동차 판매 영업을 했던 한재덕(60·가명)씨는 지난 7일 서울 강남구 오토웨이타워 앞 천막농성장에서 밤을 지새웠다. 그의 요구는 간단하다. “일터로 돌아가게 해 달라”는 것이다. 그가 10여년 동안 일했던 현대차 용인 기흥대리점은 현대차와 대리점주 간 계약만료로 올해 5월31일 폐업했다. 금속노조 자동차판매연대지회(지회장 김선영)는 대리점 폐업이 조합원 다수 사업
손해배상·가압류는 일반적인 민사법상 제도인데도 노동자들을 위협하는 장치로 작동하고 있다. 정당한 쟁위행위를 했다는 이유로 노동자 개인에게 천문학적 금액의 손해배상을 청구하고 있다는 비판이 꾸준히 나온다. 헌법 33조와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3조는 단체행동권을 보장하고 있지만, 현실은 법률을 무력화하고 있다. 가 시민단체 ‘손잡고(손배가압류를 잡자! 손에 손을 잡고)’의 공개 자료를 토대로 손배·가압류 소송과 관련한 사법부 판단의 문제점과 손해배상 청구로 인한 노동자 건강권 문제를 분석했다.“조합
손해배상·가압류는 일반적인 민사법상 제도인데도 노동자들을 위협하는 장치로 작동하고 있다. 정당한 쟁위행위를 했다는 이유로 노동자 개인에게 천문학적 금액의 손해배상을 청구하고 있다는 비판이 꾸준히 나온다. 헌법 33조와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3조는 단체행동권을 보장하고 있지만, 현실은 법률을 무력화하고 있다. 가 시민단체 ‘손잡고(손배가압류를 잡자! 손에 손을 잡고)’의 공개 자료를 토대로 손배·가압류 소송과 관련한 사법부 판단의 문제점과 손해배상 청구로 인한 노동자 건강권 문제를 분석했다.“사법
정부는 국회가 만든 법을 집행한다. 그게 행정이다. 일은 자동으로 되는 법이 없어서 사람이 붙어야 한다. 공무원을 두는 까닭이다. 공무, 그러니까 나랏일 하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공무의 끝에서 시민을 직접 상대하는 이들은 공무원이 아닐 때가 많다. 공무를 직업으로 삼아 위험을 마주하는 사람들, 공무직이다. ‘공무원 아니었어?’ 하고 의아해 할 정도의 공적 업무를 하지만 공무원은 아닌, 제대로 대우받지 못하는 공무직들을 만났다.글 싣는 순서① 가축위생방역사② 고속도로 순찰원③ 국가보훈처 의전단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
‘쉬다’는 말은 피로를 풀려고 몸을 편안히 둔다는 의미도 있지만 공기를 들이마시고 내쉬는 행위를 뜻하기도 한다. 호흡과 같은 쉼은 누구에게나 중요하다. 일터에서 쉴 권리는 어떠한가. 20명 미만 작은사업장 노동자라는 이유로, 근로기준법이 적용되지 않는 특수고용직이라는 이유로 여전히 쉴 공간은 주어지지 않는다. 가 쉴 권리의 사각지대에 방치된 이동노동자의 ‘쉼터’를 들여다봤다.지난 23일 서울에 올해 첫 장맛비가 쏟아졌다. 가문 땅에 내리는 비가 반갑지만 그칠 줄 모르고 들이붓
어느 시처럼 시간을 ‘한 허리 베어 내어’ 필요할 때 ‘굽이굽이 펼’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시간은 고정불변의 자연법칙이라 이런 생각은 공상에 불과하다고 치부한다면 속단이다. 노동시간 유연화 정책은 이런 공상을 현실로 바꾸는 매개다. 출퇴근 시간 조정 같은 단순한 방식을 포함해 탄력적·선택적 근로시간제, 집중근로제 같은 제도가 이미 시행 중이다.그럼에도 시간이 없다고 느끼는 이유는 하나다. 시간의 허리를 베어 낼 ‘낫자루’를 노동자가 직접 쥐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시간주권이 없어서다.“노동시간단축 운동은 단순히 일터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