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대형마트 의무휴업 폐지가 소상공인과 노동자를 비롯한 여론의 반발에 부딪히며 ‘현행 유지’로 결론 나면서 사태가 일단락됐지만 유통업계 종사자들 사이에서는 여전히 뜨거운 감자다. 의무휴업 폐지를 둘러싼 논란은 전통시장 살리기 규제의 실효성 유무, 온라인·오프라인 간 규제 불균형 문제로 귀결됐지만 정작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휴식권 문제는 크게 조명되지 않았다. 노동자들은 같은 건물에서 일하는 노동자가 같이 쉬어야만 온전한 휴식을 취할 수 있고, 남들 쉴 때 쉬어야만 일과 삶의 균형을 보장할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매일노동뉴스>가 지난달 28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서비스연맹 회의실에서 유통산업발전법상 의무휴업을 적용받는 대형마트 노동자, 의무휴업 적용 대상에 포함되지 않은 백화점·면세점 판매노동자, 복합쇼핑몰 등에 입점한 자영업자를 만나 의무휴업과 노동자의 휴식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좌담회에는 정민정(45) 마트산업노조 위원장, 김소연(46) 백화점면세점판매서비스노조 위원장, 김복철(59) 재벌복합쇼핑몰입점저지전국비대위 공동대표(한국패션리폼중앙회장)가 참석했다.

“국민들이 원한다? 앞뒤 안 맞는 주장”

- 윤석열 정부는 국민제안 온라인 투표를 통해 대형마트 의무휴업 폐지를 추진했다가 어뷰징(중복전송 같은 부정행위) 사태로 무산되자 규제심판회의 안건으로 올렸다. 결국 여론의 반발로 한 발짝 물러났는데 일련의 과정을 어떻게 지켜봤나.

정민정 : 국민제안에 이어 규제심판회의에 올린다고 했을 때 의무휴업 폐지가 이렇게까지 추진돼야 할 국가적 과제인지 의문이 들었다. 유통 재벌기업의 청탁을 ‘국민의 뜻’으로 포장하고 싶었던 것 같은데 첫 번째는 어뷰징으로 결과를 신뢰하기 어렵게 됐고, 두 번째는 토론에 참여한 전체 87.5%가 폐지를 반대했다. 결국 윤석열 정부가 명분 만들기에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

김소연 : 규제심판회의에서 대다수가 제도를 유지해야 한다는 의견을 표한 만큼 ‘많은 국민이 원한다’고 하기에는 앞뒤가 맞지 않다. 기업의 민원을 들어주는 목적 외에는 이 제도를 건드릴 이유가 없다. 더 확대해야 하는데 오히려 축소하려는 시도는 지금 시대 상황과 너무 맞지 않다.

김복철 : 수선·리폼전문업체는 대형마트에 입점한 경우 의무휴업을 적용받지만 복합쇼핑몰 등은 적용을 받지 않아 평일에 쉬거나 사실상 못 쉴 때가 많아서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기 어렵다. 정부는 (시대적 흐름에) 거꾸로 가고 있는 거다.

대형마트 의무휴업은 2012년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으로 도입됐다. 골목상권 보호와 노동자의 건강권을 위해 월 1~2회 의무휴업을 하고 0시부터 오전 8시까지 영업시간을 제한하기로 했다. 이듬해인 2013년 개정된 법률에서 의무휴업일을 ‘매월 이틀’로, 영업시간 제한을 ‘오전 0시부터 오전 10시까지’로 확대했다.

마트 의무휴업 도입 이후 “일요일 찾았다”
의무휴업 ‘없는’ 백화점·복합쇼핑몰 “친구 결혼식도 못 가”

- 대형마트에 의무휴업이 도입된 이후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은 무엇인가.

정민정 : 일요일을 찾았다. 일반 회사원은 특별한 때 일요일에 나와서 휴일근무를 하지만 마트노동자에게는 그게 일상이었다. 일요일을 찾게 되면서 남들과 똑같은 평범한 삶을 산다는 것에 대한 기쁨, 만족감이 커졌다. 결혼식이나 가족 행사는 일요일인 경우가 많다. 가족·공동체에 속해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됐다. 자녀와도 함께 보낼 수 있는 시간이 늘어났다. 포기해야 하는 것들이 적어지니까 내가 이 일을 더 오래 해도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더 커졌다. 노조 차원에서는 야유회 같은 전 조합원이 참여하는 행사를 할 수 있게 됐다.

김소연 : 백화점에는 정기휴점제가 있었다. 1998년에 입사했는데 이전에는 모든 백화점이 월요일마다 주 1회 쉬고, 오후 7시나 7시30분까지 영업했다. 그런데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더 일해야 한다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정기휴점제가 축소됐고 현재는 월 1회로 바뀌었다. 지금은 주중엔 오후 8시, 주말엔 오후 8시30분까지 영업한다. 정기휴점제가 있던 때는 백화점에 다녀도 저녁이 있는 삶이 가능했다.

- 주말근무로 인해 가장 힘든 점은 무엇인가.

김소연 : 종교활동을 하는 경우 일요일에 쉴 수가 없으니 결국 퇴사를 한 친구가 있다. 주말이 없으니 가족행사에서 배제되고 친구나 지인 행사도 거의 가지 못한다. 백화점에는 20대 노동자도 많은데 친구 결혼식에 가 본 적이 없다고 한다. 사실상 사회생활을 하기 어려운 문제가 발생한다.

김복철 : 가족과 영화관에 같이 가 본 적이 없다. 저녁이 있는 삶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친구들과 약속도 하기 어렵고 직원들과 마음 놓고 회식하기도 어렵다. 사장이니 문을 닫고 싶을 때 닫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다. 복합쇼핑몰에 맞춰 문을 열지 않는 것을 임대인에게 불이익을 주는 행위로 보고, 계약 위반이라고 한다.

정민정 : 대형마트는 유통산업발전법이 개정되기 전 24시간 연중무휴였다. 안전점검을 할 수 있는 시간이 부족해 카트나 무빙워크 관련 사고가 많았다. 노동자들은 위험한 환경에서 일해야 하고, 고객들도 안전하지 못하다. 사람도 쉬고 건물도 쉬어야 고객과 노동자 모두 안전해질 수 있다.

“유통 사업장 반드시 일요일에 열어야 할 이유 있을까”

- 주말에 쉬지 못하는 것은 유통업계 종사자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니다.

정민정 : 어차피 주 5일제이고 평일에 돌아가면서 쉬는데 왜 자꾸만 못 쉰다고 하냐고 하는데, 단순히 노동시간과 강도를 줄이는 것에서 나아가 전체 사회의 사이클에 맞는 휴식이 보장되는 게 중요하다. 일요일 휴무를 강조하는 이유는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을 수 있는 날이기 때문이다. 그래야 삶과 일의 균형을 맞출 수 있다.

김소연 : 병원이나 철도처럼 필수노동자만큼 희생이 필요한 직군이라고 보기 힘들고 유통 사업장을 반드시 일요일에 열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정민정 : 주말에 일하는 노동자들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이에 맞는 정당한 보상이 필요하다. 마트노동자는 일요일에 일해도 휴일근무에 따른 추가수당이 없고 평일과 똑같이 받는다. 일요일에 근무했을 때 휴일수당을 주면서 영업을 유지할 수 있을지 오히려 기업에 되묻고 싶다.

- 고객 입장에서는 일요일에 영업을 하는 것을 선호하지 않을까.

김복철: 고객들은 일정 계도기간만 지나면 따라올 것이다. 어떤 정책을 시행하더라도 마찬가지다. 일정 계도기간이 지나면 소비자들은 쇼핑몰이 ‘일요일에 쉬니까 미리 가서 사야 되겠다’는 인지를 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매출 감소 폭도 크지 않을 것이다.

정민정 : 2008년 서비스연맹에서 ‘서서 일하는 여성 서비스 노동자에게 의자를’ 이라는 캠페인을 했다. 법에는 업종에 관계없이 서서 일하면 의자를 줘야 한다고 명시돼 있었다. 그런데 사용자는 ‘게을러 보이고 불친절해 보여서 고객들이 싫어한다’는 핑계를 댔다. 노조는 매주 캠페인을 하고 고객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다. 결과적으로 압도적인 찬성을 받았다. 2009년 1월 고용노동부 장관이 이마트 계산대에 앉아서 일하는 시범을 보이면서 의자를 놓게 됐다. 의무휴업으로 일요일에 월 2회 휴무를 한 지 10년이 지났다. 이미 고객들은 잘 적응하고 있다. 고객의 수준을 따라가지 못하는 것은 정부와 사용자다.

김소연 : 고객의 편의를 주장하는 것은 기업의 프레임이다. 고객도 시민이고 노동자도 시민이고, 사실은 다 연결된 가족 구성원이고 사회 공동체다. 누군가의 편의가 다른 누군가의 희생을 담보로 하고 있다는 점을 시민들도 모르지 않는다.

“같은 업무여도 일하는 공간 따라 의무휴업 적용 달라져”

- 의무휴업을 하지 않더라도 인력충원을 하면 일요일에 돌아가면서 쉴 수 있는 기회가 생기지 않을까.

김소연 : 만약에 그걸 실현하려면 정말 많은 인력이 충원돼야 한다. 백화점·면세점은 코로나19 이후 인원이 많이 감소했다. (포스트 코로나 이후에도) 이 인원이 유지되고 있는 데다 채용 자체도 잘 안 된다. 워낙 개인 생활은 보장이 안 되고 급여는 낮기 때문에 뽑고 나서 교육시키면 한 달 만에 절반이 나가는 식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인력충원을 통한 휴무 적용은 이상적인 이야기다.

정민정: 홈플러스의 경우를 보면 ‘당당치킨’이 대박 났다. 업무량이 늘어나서 인력을 더 충원해야 하는데 그러지 않고 있다. 조리 파트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당당치킨만 튀기는 게 아니라 기존에 맡은 메뉴도 조리해야 한다. 당당치킨으로 휴무일에 집에서 쉬는 노동자에게까지 나와서 일하라고 하는 게 지금의 상황이다.

- 사측은 쿠팡과 마켓컬리 같은 온라인 유통업체는 영업제한을 받지 않는다며 차별적 규제라고 주장한다.

정민정 : 쓱닷컴 물류센터에서 1천명가량 노동자가 일한다면 직영은 100명이 채 안 된다. ‘피커’는 네오 물류센터에서 일하는지, 이마트 매장에서 일하는지에 따라 의무휴업 적용이 달라진다. 같은 일을 하는데도 말이다. 똑같은 일을 하는 유통노동자들 모두에게 건강권·휴식권 보장을 위한 의무휴업 확대가 차별을 해소하는 길이 아닐까. 마트 의무휴업일에 온라인 영업을 허용하는 내용의 관련법안이 국회에 발의돼 있다. 마트 문은 닫고 그 안에서 온라인 배송을 하도록 허용하면 마트노동자들도 출근해야 하고 배송노동자들도 출근해야 한다. 마트 점포 자체는 한 달에 두 번 문을 닫지만 온라인 배송은 24시간 계속 굴러가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 정기훈 기자
▲ 정기훈 기자

“노동자도 쉬고 건물도 쉬는 ‘함께 쉬는 날’ 필요해”

- 의무휴업 확대가 필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김복철 : 연중무휴로 인해 부작용이 너무 많다. 직원이 2명 있는데 수요일·목요일 돌아가면서 쉬고 사장인 저는 매일 일을 나간다. 주말에는 화장실 갈 시간도 없다. 다 같이 쉴 때 쉬어야 가족들끼리 사진 한 장이라도 추억을 남길 수 있을 것이다.

김소연: 함께 쉬는 휴일이 중요하다. 휴무일에도 일을 얼마나 하는지 조사해 보니 적게는 40분에서 많게는 5시간까지 일을 하고 있다. 본인 휴무일에도 매장이 열려 있는 상황에서는 본사 담당자들도 업무지시를 하고 고객 컴플레인도 처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쉬는 날조차 제대로 쉬지 못하니 정신적 스트레스에 시달리게 되고 우울증이나 공황장애로도 연결된다고 생각한다.

김승섭 고려대 보건과학대학 교수 연구팀은 2018년 1월부터 10개월 가까이 백화점·면세점 화장품 매장에서 일하는 노동자 2천806명을 설문조사한 결과를 내놓았는데, 지난 1년간 우울증과 공황장애를 진단 또는 치료받은 경우가 각각 6.1%, 2.4%로 나타났다. 이는 비슷한 연령대 여성의 3.5배, 12배 수준이었다.

정민정 : 명절만 되면 의무휴업일을 일요일에서 비교적 고객이 적은 명절 당일로 변경을 추진한다. 이번 추석에도 체인스토어협회에서 각 지자체에 공문을 보냈고 일부 지역에서 변경을 했다. 이렇게 쉽게 의무휴업일을 변경하고 있는 만큼 현장에서는 아예 평일로 바꿔 버리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이 존재한다. 이케아나 하이마트 노동자들은 의무휴업 확대 적용을 기대하고 있었는데 최근 의무휴업 폐지 논란을 거치면서 기대감이 사라졌다고 한다. 사실상 마트나 다름없는 이케아·하이마트 등까지 의무휴업이 확대돼야 한다.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정민정: 일요일이 일요일다웠으면 좋겠다. 모든 노동자에게 가족과 친구들, 사회적으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시간이고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시간이었으면 한다. 마트노동자마저 밀리면 긴 세월 동안 투쟁한 백화점·면세점 노동자들에게 의무휴업은 더 멀어지게 된다. 마트를 넘어 모든 유통노동자들이 일요일을 찾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김소연 : 일과 삶의 균형이 남들 하는 만큼은 돼야 한다. 또한 유통산업 발전을 위해서도 좋은 일자리가 돼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노동자의 건강권 보장이 우선적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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