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이미지투데이, 편집 김혜진 기자

5년차 웹툰작가 A씨. 쉬지 않고 일했지만 그에게 남은 것은 2천만원의 빚뿐이다. 프리랜서라 1금융권 대출이 어려워 2금융권에서 1천300만원을, 지인들에게 700만원을 빌렸다. 그는 하루 평균 12시간을 일하며 한 달에 이틀을 쉰다. 생활비를 충당하기 위해 시간을 쪼개 간단한 디자인 아르바이트를 병행한다. 두 번째 작품을 끝내고 지금은 세 번째 작품을 준비 중이다. 그는 “MG(Minimum Guarantee), 그중에서도 후차감 MG 제도가 참 악랄하다”며 “작가가 자기가 낸 작품 매출의 반도 못 가져가게 하는 제도”라고 했다.

웹툰산업계 표준계약 된 MG계약, 작품이 낼 이익을 고료처럼 선지급

A씨가 말한 MG 제도란 작가가 플랫폼이나 콘텐츠 유통사(CP, Contents Provider)와 최소수익 보장을 약정하고 이를 미리 지급받는 방식이다. 부분유료화 모델을 만들어 성공시킨 웹툰 플랫폼 레진코믹스가 2015년 만들어 연재 작가들에게 강제 도입하며 업계 표준처럼 퍼졌다.

웹툰 플랫폼은 작가에게 원고료를 지급하는 게 아니라, 작품의 미래 수익을 당겨 작가들에게 고료‘처럼’ 원고당 일정 금액을 지급한다. 작가와 직접 계약한 네이버·카카오 같은 플랫폼, 혹은 작가와 계약한 뒤 플랫폼에 콘텐츠를 유통하는 CP는 보통 작품 한 화당 MG를 지급한다.

작품이 매출을 내면 플랫폼이 먼저 수수료를 떼어 가고, 남은 금액을 CP와 작가가 사전에 계약한 비율로 나눈다. 작품이 수익을 거두지 못해도 플랫폼·CP는 작가들에게 지급 금액 반환을 요구하지 않는다.

업계는 MG 제도가 작가에게 연재기회를 주고, 다양성을 확보하는 계약 형태로 본다. 서범강 한국웹툰산업협회장은 “고료 계약만 있으면 잘 팔리는 작품, 비슷한 작품들만 쏟아진다”며 “이는 작가들의 가능성과 다양성을 막고 업계 성장을 제한하는 결과를 가져온다”고 설명했다. 그는 “MG 제도는 누군가를 안 좋게 하려는 제도가 아니다”며 “상호 신뢰하에 작가는 안전하고 지속적인 연재를 위해 MG를 지급받고, CP는 작품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연재를 약속받고 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산업계뿐만 아니라 일부 작가들도 이에 동의한다. ‘쌍천만 영화’로 잘 알려진 영화 <신과함께>의 원작 웹툰을 그린 주호민 만화가는 2020년 2월 한국웹툰작가 부회장직을 사임했다. 웹툰작가들이 문제라고 주장하는 MG 제도가 문제가 없다는 이유였다.

‘윈윈’은 예외적
업계 표준은 수익 배분 안 되는 ‘후차감 MG 계약’

업계 주장은 절반만 진실이다. 작품 순이익에서 작가의 MG를 먼저 지급한 뒤 남은 수익을 플랫폼·CP와 분배하는 이른바 ‘선차감 MG’라면 협회 설명에 부합한다. 작가가 한 달 4회, 1회당 100만원 MG를 받는 계약을 하고 회당 수익이 101만원이 나면, 100만원은 MG로 지급되고 1만원을 5 대 5로 분배하는 방식이 선차감 MG다.

업계 계약 관행은 이와 다르다. <매일노동뉴스>가 만난 웹툰작가들은 한목소리로 ‘후차감 MG’ 계약이 일반화했다고 입을 모았다. 후차감 MG는 플랫폼·CP와 작가가 작품 순수익을 수익분배계약에 따라 우선 나눈 뒤, 작가는 남은 이익에서 MG를 받는 방식이다. 이를테면 작가가 한 달 4회, 1회당 100만원 MG를 받기로 하고 회당 수익이 101만원이 나면, 작가는 MG 100만원만큼을 채운 뒤에야 수익배분을 받게 된다. 적어도 매출이 200만원을 넘겨야 받은 MG를 채우는 것이다. 플랫폼은 작가에게 사비를 털어 MG를 채우라고 요구하지는 않지만 ‘MG도 못 채우는 작가’라는 꼬리표를 달아야 하는 작가 처지에서는 빚이나 마찬가지로 여겼다. 작가가 플랫폼과 직접 계약하지 않고, 그곳에 작품을 유통하는 CP와 계약했다면 수익은 더 쪼개진다. 플랫폼이 매출액의 절반을 가져가고 남은 절반을 CP와 작가가 나눈다. 1회당 100만원 MG를 받고 CP와 계약한 작가는, 회당 400만원 이상을 벌어야 MG를 메꾸고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

후차감 MG는 작가의 소득수준을 크게 악화시킨다. 스토리와 그림을 모두 혼자 담당하며 세 번째 작품을 연재 중인 7년차 웹툰작가 B씨는 두 번째 작품을 후차감 MG로 계약하며 수익이 절반 이상 줄었다. 첫 작품은 선차감 MG로 계약했다. MG를 모두 채우고 남은 수익을 직접 계약한 플랫폼과 50%씩 나눠 가지며 연 4천900만원 수익을 기록했다. 하지만 직접 계약한 플랫폼이 더 큰 플랫폼에 작품을 납품하는 CP가 되고, 후차감 MG로 계약방식을 변경한 두 번째 작품부터 연수익이 3천만원을 넘은 적이 없다. 첫 작품보다 MG를 30만원 이상 올렸음에도 그랬다. 최저로 기록한 연수입은 1천800만원이었다. B씨는 “당시 회사들은 레진코믹스가 도입한 MG 제도를 자신들이 이해한 대로 적용하다가, 레진코믹스 방식이 후차감이라는 사실을 알고 후차감 방식으로 전환했다”고 말했다.

작품이 올리는 매출 데이터는 ‘깜깜이’
플랫폼·CP와 신뢰는 부족

후차감 MG제도가 업계를 지배하자 작가들은 작품의 총매출액 정보를 플랫폼·CP에 요구했다. 열악해진 계약 환경에서 협상력을 올리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이마저도 작가들에게 모두 공개하는 업체는 많지 않다.

A씨는 “정산서는 이번 달에 얼마가 나오는지만 알려줄 뿐”이라며 “내 작품의 유료·무료 페이지뷰가 어느 정도가 나왔는지를 모른다”고 말했다. 그는 “내 작품인데, 어느 정도의 매출을 올리는지 알 수가 없어 메꿔야 할 MG가 어느 정도인지도 명확하지 않다”고 덧붙였다. B씨는 “업계는 정산 기술 개발과 교체의 어려움을 이유로 데이터를 밝히지 않고 있다”며 “웹툰 회사들 중 이를 제대로 하는 곳은 한 곳도 없다”고 잘라 말했다.

서범강 협회장은 “어려운 사정에서도 버티며 노력하시는 분들이 많다”며 “다양한 작품을 시도하려는 곳 모두가 알려진 기업들처럼 탄탄한 자금력을 가진 것이 아니다”고 전했다.

계약으로 창작노동 가치 ‘후려치기’
‘맘대로 계약해지’ 구조 만들어져

이런 업계 계약방식은 작가를 플랫폼에 매어 놓고 창작물과 창작노동을 하는 대가로 MG를 임금처럼 지급하는 구조를 형성한다. 한 작품을 연재하는 데 하루 10시간, 주 6일 이상을 쓰는 작가는 실질적으로 플랫폼·CP에 묶이는데 창작물이 MG의 곱절 이상 수익을 내지 않는 한 MG 이상을 분배받기란 어렵기 때문이다. 문화체육관광부의 2021년 웹툰작가 실태조사에 따르면 작가들은 평균 5.9일, 하루 평균 10.5시간을 일했다. 12~13시간을 일한다는 응답이 23.9%, 14시간 이상도 17%나 됐다. 플랫폼에 매여 창작노동을 하는 것이다.

MG를 못 채워도 돈을 반환할 의무는 없지만 이후 계약조건이 더 나빠진다. 하신아 웹툰작가노조 사무국장은 “MG를 못 채우니 연재 중단을 요구하고, 저작권을 통으로 넘기는 매절 계약을 강요하는 행태가 일어난다”고 주장했다. 실태조사에 따르면 일방적 계약해지를 경험한 작가들은 45.3%가 특별한 이유 없이, 37.7%가 연재 개편이나 중단 혹은 구독률 하락을 이유로 통보를 받았다.

갑작스러운 연재 중단은 생활고로 이어진다. 다음 작품을 만들기 위해 4화까지 원고를 만들어 놓은 상황에서 플랫폼·CP를 찾아가 계약하는 게 일반적이다. MG가 끊기지 않도록 짬을 내 다음 작품을 그리거나, 무수입 기간을 버틸 비용을 계산해 저축해야 다음 작품 준비 시기를 버틴다. 그런데 갑작스러운 연재 중단은 대비할 틈을 주지 않는다. 6년차 웹툰작가 C씨는 “연재 준비기간은 짧게는 6개월이 소비되는데 수익이 없으니 모아 놓은 돈으로 버텨야 한다”며 “저도 한 예술인단체에서 생활비를 빌렸다”고 귀띔했다.

올해 출범 웹툰상생협의체에서도 해결 난망
협상력 높여 해결해야 할 문제

업계는 여전히 후차감 MG를 고집하고 있다. 7년차 웹툰작가 D씨는 “후차감 MG가 나쁘다는 인식이 퍼지자 플랫폼·CP는 선차감 MG 혹은 통상 가장 높은 수익이 나는 작품 완결 후 두 달까지 수익을 플랫폼이 독점한다는 선택지나 저작권을 일부 넘기는 매절계약 조항을 들이민다”고 설명했다.

입장차는 좁혀지지 않는다. 올해 출범한 당사자 협의체에서도 논의는 평행선을 달렸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플랫폼·CP와 창작자 간 불공정 계약 문제가 불거지진 뒤 문체부는 올해 2월 이를 개선하기 위해 당사자와 전문가가 참여한 웹툰상생협의체를 출범했다. 후차감 MG 계약 방식은 의견이 갈려 명확한 결론을 내지 못했다.

다만 상생협의체에서는 네이버와 카카오가 매출 정보를 작가들에게 공유하게 하겠다고 약속했다. 실제로 카카오엔터는 이미 시스템을 마련해 놓은 상태다. 더불어민주당 민생우선실천단 빅테크 갑질대책TF는 지난 12일 오전 서울 마포구 카카오엔터 합정오피스를 찾아 웹툰 정산정보제공 시연 및 플랫폼 창작자 상생간담회를 열었다. 비공개 간담회에서 카카오엔터는 새로 개발한 작가용 정산정보 제공시스템 ‘파트너 포털’을 시연했다.

웹툰작가들은 업계 1·2위인 네이버와 카카오가 데이터를 공개하면서 업계에 변화가 일어날 것을 기대한다. CP도 데이터를 공유해야 한다고 요청할 계획이다. 이를 통해 총매출을 공유하지 않고 불투명한 정산서를 제공하는 회사들을 거르고, 작가들 작품 매출을 파악해 교섭에서 협상력을 확보해 후차감 MG가 만연한 업계 관행을 바꿔 나가겠다는 생각이다.

방향은 선차감 MG 복귀로 보인다. 웹툰상생협의체에 참여하는 범유경 변호사(민변 노동위)는 “후차감 MG는 발생 비용 전부를 작가의 수익 분배분에 전가해 (투자) 위험을 웹툰작가에게 전가한다”고 비판했다. 그는 “기본적으로는 MG 계약 이전 시절처럼, 작가에게 원고료를 지급하고, 완결 이후 발생하는 이익을 플랫폼·CP와 나누는 형태가 맞다”며 “만약 고료 체제로 가기에 재정부담이 커진 상황이라면, 투자금 회수 계약의 일종인 선차감 MG 방식이 맞다”고 강조했다. 하신아 사무국장도 “원고료는 창작노동의 대가라서 받는 게 맞지만 현실적인 부분들이 있어 교섭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업계는 후차감 MG 같은 계약이 일부일 수 있으니 실태조사를 우선해야 한다고 본다. 서범강 협회장은 “일부 케이스만 부각되면서 서로 신뢰하고 상생해야 하는 대상들이 불신만 갖게 된다”며 “(불공정 계약이) 1천건 중 1건인지, 100건 중 10건인지를 정확히 조사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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