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올해 1월27일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됐다. 5명 미만 사업장은 적용하지 않고, 50명 미만 사업장이나 공사금액 50억원 미만 건설현장은 법률 공포 후 3년 뒤에나 시행하기 때문에 ‘사각지대’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이뿐 아니다. 언제 다치거나 목숨을 잃을지 모르는 현장에서 일하면서도 산업안전보건법과 산업재해보상보험법(산재보험법) 적용에서 제외되는 노동자들이 부지기수다. 여전히 안전보건법령 테두리 바깥에 있는 노동자들의 얘기를 <매일노동뉴스>가 들었다. ‘누구나 안전하게 일할 권리를’ 캠페인의 일환으로 안전보건공단과 공동기획했다.<편집자>

‘위험의 이주화’ 현상은 통계로 입증된다. 지난 3월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이주노동자 사망만인율은 우리나라 전체 노동자 사망만인율의 2배 이상을 기록했다. 노동자 100명당 발생하는 사고 재해자 비율인 사고 재해율 역시 산재보험에 가입한 전체 노동자가 0.49%인데 비해 이주노동자 집단은 0.87%로 높게 나타났다. 이주노동자의 죽음은 날마다 늘어 간다. 우리나라 전체 업무상 사고 사망자수는 지난 10년간 꾸준히 감소한 데 반해 이주노동자 사고 사망자수와 비율은 2010년 78명(7%)에서 2019년 104명(12.2%)으로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늘어만 가는 이주노동자들의 죽음을 막을 방법은 없을까.

<매일노동뉴스>가 지난 18일 오후 서울 마포구 청년문화공간JU동교동에서 이주노동자 산재 상담 경험이 풍부한 활동가와 외국인노동자지원센터 관계자를 만나 이주노동자 산재 현황과 대책을 들었다. 좌담회에는 신훈 매일노동뉴스 기자 사회로 우다야 라이(55) 이주노조 위원장, 원옥금(47) 이주민센터 동행 대표, 류지호(47) 의정부외국인노동자지원센터 상담통역팀장이 참여했다.

“위험한 곳에서 일하는데 산재 문턱은 높아”
“사업주 날인 필요한 어업노동자 특히 취약”

사회 : 이주노동자의 업무상 사망과 산재 발생률이 높은 이유는 무엇일까.

류지호 : 산재 발생이 높을 수밖에 없는 제조업·건설업 등 고위험 업종에 이주노동자가 집중돼 일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업장 규모 면에서도 30명 미만 사업장에서 일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영세 사업장에서는 안전수칙이 지켜지거나 제대로 된 안전도구가 지급되는 것을 기대하기 어렵다. 5명 미만 사업장은 내국인 관리자 없이 이주노동자끼리만 일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 곳에서 산업안전교육이 진행되기를 기대하기는 어렵지 않나. 같은 사업장에 내국인과 이주노동자가 있으면 위험한 일을 이주노동자에게 시킨다. 이주노동자가 산업안전에 더 취약한 이유다.

우다야 라이 : 사업주의 안전불감증 문제도 크다. 영세 사업장은 기계나 설비에 투자하지 않아 사고가 나는 경우도 있다. 이윤을 남기는 것뿐만 아니라 사람의 생명이 중요하다는 것도 고려했으면 좋겠는데 사업주들은 그러지 못한다. 정부의 허술한 법과 제도도 문제가 있다고 본다. 5명 미만 사업장에는 중대재해처벌법도 적용되지 않는다.

원옥금 : 이주노동자 산재는 모두 기록되지 않는다고 본다. 오늘도 산재를 한 건 접했는데 건설현장 노동자다. 15일간 쉼 없이 일한 뒤 자다가 어젯밤에 갑자기 죽었다. 오늘 가족한테 연락을 받았는데 부검을 안 하겠다고 했다. 부검을 하면 산재를 신청할 수 있는데 아무리 설득해도 안 된다고 하더라. 이주노동자는 자다가 갑자기 죽는 경우가 많다. 이런 부분들은 통계에 잡히지 않는다. 사실상 산재나 다름없는데도 그렇다.

류지호 : 사고가 아니라 질병 산재에 대해서는 이주노동자의 인식이 낮다. 이주노동자 산재에서 돌연사는 주목할 만한 부분이다. 산재로 접근하지 못하는 게 아쉽다.

사회 : 이주노동자가 산재를 신청하면서 겪는 어려움은 어떤 것들이 있나.

원옥금 : 미등록 이주노동자는 특히 산재를 신청하기 어렵다. 미등록 이주노동자도 산재를 신청해서 승인되면 비자를 받을 수 있는데 이런 사실을 모르는 경우도 많다. 미등록 이주노동자를 채용하는 게 발각되면 출입국사무소에 사업주가 벌금을 내야 하기 때문에 사용자들이 직접 산재 신청에 나서지도 않는다. 미등록 신분이라 직접 산재를 신청하기도 어렵고 한국말로 소통도 어려운데, 사용자가 방치하는 것이다.

류지호 : 사용자가 노동자를 협박한다. ‘산재를 신청하면 정부에 불법으로 일하는 사실이 발각돼 강제출국 당한다’고 이야기한다더라. 이런 이유들로 미등록 이주노동자는 중증 장애인이 되거나 사망한 경우, 이주인권단체에 연락이 닿는 경우가 아니면 산재를 신청하는 사례를 찾아보기가 어렵다.

우다야 라이 : 산재보험법 시행령에 따라 농·어업의 5명 미만 사업장에는 산재보험이 적용되지 않는다. 최근 정부가 5명 미만 사업장도 농어업인안전보험에 가입해야만 고용허가를 할 수 있도록 외국인근로자의 고용 등에 관한 법률(외국인고용법) 시행령을 개정하긴 했지만 산재보험보다 보장수준이 낮다는 한계가 있다. 이주노동자 입국 전에 본국에서 받는 취업교육도 문제다. 권리구제보다는 취업에 초점이 맞춰져 교육을 하기 때문이다.

원옥금 : 고용허가제로 들어온 어업노동자는 특히 산재에 취약하다. 얼마 전 충남 서산에서 사망한 노동자의 산재신청 사건을 맡았는데, 사업주가 산재신청에 동의하지 않아 힘들었던 적이 있다. 어업노동자는 산재신청을 할 때 사업주 동의가 필요하다. 제조업이나 건설업은 사업주 동의가 필요하지 않지만 어업은 산재신청을 할 때 수산업협동조합중앙회에 신청을 하면서 어선 소유자의 날인을 요구한다. 어업노동자가 산재 문제에서 정말 열악하다.

사회 : 정부의 이주노동자 대상 산업안전교육 실태는 어떠한가.

류지호 : 고용허가제로 입국한 이주노동자는 입국 전 취업교육과 입국 후 취업교육이 있어 교육 기회가 있다. 그런데 취업교육은 사실 되게 미흡하다. 한국어 교육이나 한국어 문화교육이 대부분인 데다 산업안전교육은 동영상을 틀어 주고 집체교육을 하는 식이다. 장시간 비행기를 타고 와 지친 노동자에게 교육이 귀에 들어올 리 없다. 교육장에 앉은 노동자 모두가 하는 일도 다르고 업종이 달라 교육이 내실 있게 진행되기 어렵다.

우다야 라이 : 권리구제에 대한 교육보다는 노동자의 의무를 가르치는 데 집중돼 있다. 어떤 경우에 산재신청을 할 수 있고, 휴업급여를 받을 수 있고, 입원할 수 있다는 구체적인 내용들은 교육이 부족하다.

▲ 정기훈 기자
▲ 정기훈 기자

“이주노동자 숙소문제, 규제뿐 아니라 투자도 병행해야”

사회 : 산업안전 문제에서 숙소 안전 문제도 빼놓을 수 없다. 재작년 난방이 되지 않는 숙소에서 한파 속에 사망한 속헹씨의 사건도 지난 4월 산재로 인정받게 됐다. 이후 정부가 여러 개선책을 내놨는데 어떻게 평가하나.

우다야 라이 : 지난해 정부는 ‘비닐하우스 안 가설건축물’을 숙소로 인정해 주지 않고 고용허가를 불허하겠다는 방침을 내놨다. 현장에서는 벌써 이걸 피해가는 사업주 사례가 나오고 있다. 이주노조에 하루에 한두 건 정도 불법 기숙사에 관한 상담이 들어온다. 정부에 좋은 숙소를 제공하고 있다고 자료를 제출하고 실제로는 나쁜 기숙사에 재운다는 것이다.

류지호 : 정부가 규제만 한다고 될 일이 아니다. 농업은 국가 안보와 관련된 산업이니 정부나 지방자치단체 지원도 필요한데 대안이 없는 상황에서 규제만 만들면 이런 사태가 발생한다. 농장에 가 보면 소작농도 많고, 주변에 제대로 된 주거시설이 없어 숙소를 제공하지 못하는 사례도 있다.

원옥금 : 기숙사 제공이 의무가 아니다 보니 사업주가 기숙사를 아예 포기하는 일도 생겼다. 이주노동자더러 알아서 집을 구하라고 하는 것이다. 결국 사업주에게 애원해야 하고, 계약서와 다른 기숙사에 들어가는 일도 생긴다. 지역마다 기숙사를 만든다든지 정부와 지자체에서 예산을 투자할 필요가 있다.

사회 : 이주노동자가 사업자 등록이 되지 않은 농축산업이나 어업 사업장에서 일하는 경우 전액 보험료를 부담한다는 문제도 있다.

류지호 : 읍·면에 거주하는 농어촌지역 거주자라면 건강보험료를 22% 경감해 준다. 주소지가 읍·면이면 자동으로 경감된다. 농업인이나 어업인인 경우 정부가 28% 추가 감면 정책을 내놨는데 이건 사업자가 신청해야 하는 문제라 이주노동자들이 잘 모른다. 속헹씨도 지역 건강보험에 가입돼 있었는데 지역 건강보험이 제공하는 건강검진을 받고 건강상태를 알았다면 사망하는 일까지 벌어지지 않았을 수도 있다. 이주노동자가 부담하는 보험료가 적지 않은데 국민건강보험공단도 찾아가는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는다. 이주노동자들은 여러 한계로 검진받는 데 어려움을 느낀다.

우다야 라이 : 제조업에 종사하는 이주노동자들도 화학물질 위험에 크게 노출돼 있다. 국내에서 2년 정도 일할 때 문제를 느끼지 못하다 본국에 가서 사망하는 경우도 있다.

류지호 : 한국인 노동자는 자기 사업장에서 사용하는 화학물질 정보를 알기 쉬운데 이주노동자는 공장에서 사용하는 화학물질이 인체에 치명적인지 아닌지, 정보가 부족해 더 위험에 노출되기 쉽다.

정기훈 기자
▲ 정기훈 기자

“사업장 이동의 자유 보장되면 산재·기숙사 문제 해결”

사회 : 이주노동자에게 사업장 이동의 자유가 생기면 산업안전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원옥금 : 사업장 이동 제한은 근로기준법이 금지하는 강제근로나 다름없다. 사업장 이동의 자유를 허용하는 고시가 점점 확대되고 있지만, 사업주들은 고시를 악용한다. 사업장에서 일하다 산재가 발생해 사업장을 옮기려고 하면 돈을 지불하라고 하거나 사업장 변경에 동의해 주지 않는다.

우다야 라이 : 고용허가제가 아니라 사업장 이동의 자유를 전면 허용하는 노동허가제가 필요하다. 사업주들은 노동자들이 오자마자 가 버리면 어떡하냐고 묻곤 하는데, 노동환경이 개선되면 그런 문제가 발생할 일도 없다. 사업장 변경을 허용해 주면 노동조건이나 숙소가 열악한 사업장을 기피하고 이로 인해 발생했던 문제들이 해결된다.

류지호 : 지난해 고용노동부에서 사업장 이동의 자유와 관련한 연구용역을 한국노동연구원에 맡긴 결과가 발표됐다. 결과보고서의 결론은 1년까지 고용허가를 받고 그 다음부터는 자유롭게 사업장을 변경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었다. 고용허가제로 들어오는 인원은 전체 외국인 노동자 중에서 큰 비율은 아닐 수 있지만 그로 인해 발생하는 사회적 문제는 매우 크다. 사업장 이동을 전면 허용한다면 사용자도 근무환경과 산업안전에 더욱 신경 쓰고 여러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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