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손해배상·가압류는 일반적인 민사법상 제도인데도 노동자들을 위협하는 장치로 작동하고 있다. 정당한 쟁위행위를 했다는 이유로 노동자 개인에게 천문학적 금액의 손해배상을 청구하고 있다는 비판이 꾸준히 나온다. 헌법 33조와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3조는 단체행동권을 보장하고 있지만, 현실은 법률을 무력화하고 있다. <매일노동뉴스>가 시민단체 ‘손잡고(손배가압류를 잡자! 손에 손을 잡고)’의 공개 자료를 토대로 손배·가압류 소송과 관련한 사법부 판단의 문제점과 손해배상 청구로 인한 노동자 건강권 문제를 분석했다.<편집자>

“조합원이 넘어져 있는데 대여섯 명이 와서 때리고 발로 차고, 엎어져 있는 사람을 또 때리고. 마치 광주처럼. 저렇게 해도 되는 건지, 저렇게 해도 사람이 안 죽나 할 정도로 어마어마한 폭력이 조합원들한테 가해지고 있었거든요. 그런 모습들이 너무 큰 충격이었어요.”

국가로부터 손해배상을 청구받은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간부 A씨는 2009년 정리해고 반대 파업 당시 상황을 떠올리며 몸서리를 쳤다. 그해 8월 사측이 투입한 용역 직원과 경찰이 조합원을 무자비하게 폭행하는 장면을 직접 목격했다.

쌍용차 해고자들은 2016년부터 2년간 단계적으로 복직했지만, 폭행으로 인한 후유증은 깊었다. 옥쇄파업 당시 경찰특공대 진압에 하반신이 마비된 최아무개씨는 상태가 심각하다. 상처를 입은 채 구속됐다가 풀려났지만, 지난 5월 심정지가 왔다. 17일간 중환자실 치료를 받고 현재 요양병원에서 치료 중이다.

손해배상으로 건강 위협, 치료는 ‘방치’

손배·가압류 제도는 노동권뿐만 아니라 ‘건강권’까지 해치는 것으로 조사됐다. 박주영 제주도공공보건의료지원단 책임연구원(보건학 박사)은 지난달 30일 시민단체 ‘손잡고(손배가압류를 잡자! 손에 손을 잡고)’와 공공상생연대기금이 연 ‘헌법, 노조법과 손해배상·가압류’ 토론회에서 이 같은 내용을 공개했다.

손배·가압류 피해 노동자 건강에 대한 연구는 거의 없는 상태다. 박 책임연구원은 손배·가압류 소송을 당한 노동자 12명을 심층 인터뷰했다. 2018년 고려대 연구팀과 함께 실시한 공동실태조사에서 나아가 ‘생애사적 경험’까지 반복해 수집했다. 개인·가족·직장·사법체계 부분에서 미치는 건강 상태를 구체적으로 분석했다.

연구 결과를 보면 상당수 노동자는 사실상 ‘방치’된 상태였다. 쟁의행위 과정에서 발생한 폭력으로 트라우마를 겪지만,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했다. 금속노조 유성기업지회 조합원 B씨는 “회사와 싸우는 현장에서 단 한 번도 벗어나 본 적 없다. 트라우마로 남았다”며 “회사랑 싸우는 꿈을 꾸다가 아내를 때려 아내가 일어나 운 적도 있다”고 토로했다. 차가 사람을 치는 상황까지 목격해 그 기억을 꺼내면 한 달 이상 후유증이 남는다고 했다.

주변에 고민을 털어놓은 적도 없었다. B씨는 “폭행과 관련해서는 한 번도 말하지 않았다”며 “10년이라는 세월이 지났는데, 그 얘기를 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기도 하다”고 말했다. 병원에 갔지만, 수면제나 신경안정제 처방만 이뤄져 치료기관에 대한 불신도 깊었다. 금속노조 아사히글라스비정규직지회 조합원 C씨도 “모두 어려우니까 위로받을 수 없다”며 “골치 아프고 돈 없고 서로 피차일반”이라고 고개를 저었다.

아사히글라스가 금속노조 아사히글라스비정규직지회의 불법파견 비판 시위를 두고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시민단체 손잡고(손배가압류를 잡자! 손에 손을 잡고)>
▲ 아사히글라스가 금속노조 아사히글라스비정규직지회의 불법파견 비판 시위를 두고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시민단체 손잡고(손배가압류를 잡자! 손에 손을 잡고)>

건강관리 불가능, 가족에 ‘죄책감’

이렇다 보니 건강 상태는 계속 악화했다. C씨는 “7년째 건강검진을 하지 않았다. 회사에 다니지 않아 잦은 음주로 몸이 안 좋아질 수밖에 없었다”며 “불안정한 생활이 언제 끝날지 불안했다”고 털어놓았다.

스트레스 해소 방법은 찾지 못했다. B씨는 “스트레스가 있으면 그냥 삭인다. 취미생활도 끊었다”며 “돈도 시간도 없는데 스트레스를 풀기 힘들다”고 말했다. 박 책임연구원은 “참여자들 대부분이 자거나 혼자 푸는 방식으로 스트레스를 해결했다”며 “특히 집행부 역할을 하면서 동료들과 문제점을 공유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고 분석했다.

무엇보다 가족을 향한 죄책감이 컸다. 노동자들은 가족을 돌보지 못한 부분에 미안한 감정을 가졌다. 특히 손해배상 청구 과정에서 배우자에게 경제생활을 의존할 경우 죄책감이 배가되는 것으로 드러났다.

C씨는 “노조 일이 훨씬 더 중요해 자녀에게 안정감을 주지 못했다”며 “책임지지 못한 부분 때문에 굉장히 미안하다”고 말했다. 고통은 자녀들이 고스란히 받았다. 그는 “투쟁이 장기화되면 비정규직의 열악한 삶의 조건이 자녀들에게 전가된다”며 “자녀들이 똑같이 스트레스와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다”고 했다.

손해배상 ‘중압감’에 동료 배신 ‘비극’

눈여겨봐야 할 부분은 손배·가압류로 인한 ‘중압감’이다. 인터뷰 참여자들은 손해배상 규모와 이에 따라 받을 영향을 두려워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C씨는 “일단 손해배상을 받았다는 자체가 굉장히 중압감으로 오는 것 같다”며 “주위에서 이렇게까지 피해를 보면서 (쟁의행위를) 해야 하냐고 말하는 것이 자기를 힘들게 한다”고 전했다.

금속노조 일진다이아몬드지회 조합원 D씨도 “낙오자로 낙인찍힐 수 있는 민사소송으로 돈을 내야 한다면 노조활동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친구도 있다”고 말했다.

함께 활동했던 동료의 ‘배신’은 가장 큰 비극이라고 입을 모았다. 동료가 회사노조로 갔을 때 자신의 노조가 취약해지기 때문이다. B씨는 “어용노조 조합원을 보면 죽을 것 같이 분노가 일어난다”며 “트라우마로 남아 옛날처럼 웃으면서 대하지 못한다”고 답했다. 유성기업 영동지회 조합원 E씨도 “노조를 만들어 지키고 강화해 왔는데 한순간에 빼앗기는 게 참담했다”고 회상했다. 이러한 인식으로 노조활동에 더욱 열성을 쏟는다고 했다.

박 책임연구원은 “손배·가압류가 초래하는 두려움을 인정하면서도 노조활동을 통해 불안함을 불식시키려 애쓰는 것으로 보인다”고 해석했다.

‘작업중지권’ 위축까지, ‘노동권’ 우선해야

손배·가압류에 대한 우려로 안전을 요구하는 ‘작업중지권’마저 마음대로 행사하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실제 현대자동차는 2014년 울산공장에서 발생한 안전사고로 노동자들이 5시간가량 생산라인을 중단하자 손해를 배상하라고 소송을 냈다. 법원은 쟁의행위 목적은 정당하나 수단과 방법이 적절치 않았다며 노동자들에게 2억5천여만원을 배상하라고 명령했다.

당시 작업중지권을 행사한 현대자동차지부 조합원 F씨는 “장비가 넘어지면서 사람이 깔릴 뻔했는데 다행히 피했다”며 “회사는 사람이 다치지 않았기 때문에 안전사고가 아니라고 임의로 해석했고, 고용노동부는 어느 편도 들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헌법상 노동권은 존재하지만, 국가와 사법기관의 편향으로 손배·가압류는 ‘무기’로 작동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E씨는 “사람 다 죽여 놓고 나중에 미안하다고 하는 셈”이라며 “사업주에게 노동 3권에 대응할 수 있는 손배·가압류라는 무기를 줘 놓고 노동자들이 대등하게 행동할 수 있느냐. 말이 안 된다”고 꼬집었다.

결국 손배·가압류 문제를 풀 열쇠는 ‘사법부’에 쥐어졌다. 박 책임연구원은 법률적 문제 발생시 법원이 ‘노동권’을 우선 고려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또 노조에 대한 ‘직장내 폭력’이 구조적으로 용인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노조활동에 참여한다는 이유로 차별하거나 배제하는 등 노조에 적대적인 조직문화가 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