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가보훈처노조

정부는 국회가 만든 법을 집행한다. 그게 행정이다. 일은 자동으로 되는 법이 없어서 사람이 붙어야 한다. 공무원을 두는 까닭이다. 공무, 그러니까 나랏일 하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공무의 끝에서 시민을 직접 상대하는 이들은 공무원이 아닐 때가 많다. 공무를 직업으로 삼아 위험을 마주하는 사람들, 공무직이다. ‘공무원 아니었어?’ 하고 의아해 할 정도의 공적 업무를 하지만 공무원은 아닌, 제대로 대우받지 못하는 공무직들을 만났다.<편집자>

글 싣는 순서
① 가축위생방역사
② 고속도로 순찰원
③ 국가보훈처 의전단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영령(영현)을 기리는 일이니 당연히 나랏일이다. 국방부 ‘영현소대’와 같은 복식을 하고 있으니 군인인 줄로만 알았다. 아니었다. 국립대전현충원과 전국 6개 호국원에서 순국선열의 넋을 모시는 일을 하는 이는 공무직이다. 그나마도 공무직이 된 것은 2018년 1월1일부터다. 그전에는 용역노동자였다. 순국선열의 마지막을 배웅한다며 그럴싸한 제복과 행사를 마련해 놓고 정작 떠받드는 노동자는 비정규직을 고용한다는 사실이 쓰게 다가왔다.

“계속 처우개선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전혀 나아지는 게 없어요. 의전단원들의 직업적 자부심은 이미 바닥을 치고 있어요. 이대로 가면 보훈사업 유지도 힘들 겁니다.”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에 답답함이 묻어났다. 김인석(39·가명)씨는 혹시 회사에 찍힐 수도 있으니 일하는 곳마저 익명에 부쳐 달라 했다.

유골 영현함에 담아 안장하는 일종의 국장

김씨는 지방 호국원 소속 의전단원이다. 의전단은 호국원에서 진행하는 국가유공자를 위한 묘지 안장·이장과 각종 의전행사를 도맡는 직군이다. 6개 호국원에 각기 다른 용역회사 소속으로 있다가 문재인 정부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정책으로 무기계약직인 공무직으로 전환했다.

유튜브에서 이들이 하는 일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현충탑 참배시 참배객 안내와 도열, 헌화, 진혼곡 연주 같은 일도 하고 오와 열을 맞춘 근무교대식 같은 퍼포먼스도 이들의 몫이다. 국가유공자의 영현을 영현함에 옮기는 작업과 영현함 호위, 유가족 안내 같은 일을 격식에 맡게 진행한다. 군대식 의전처럼 행사를 하다 보니 의전단원은 사실상 남자만, 그것도 20~30대 남자만 뽑는다. 연중무휴라서 월 2~4회 주말근무도 한다.

행사는 안장식과 이장식으로 나뉘는데 코로나19 확산 이전에는 합동 안장식을 하루에 여러 차례 했다고 한다. 국가유공자의 유골을 화장한 유분을 영현함에 옮겨 담고 그것을 다시 묘지에 안치하는 게 이들의 역할이다. 유가족은 고인이 생전에 나라를 위해 세운 공만큼 대우를 받길 원한다. 그래서 의전단원은 행사 전 과정에서 유공자 영현과 유가족에게 예우를 표시한다. 군대처럼 제복을 입고 거수경례를 하고 구령도 붙인다. 일종의 국장을 치르는 셈이다.

분골 작업 중 뼛가루 흡입
유가족 보는 눈에 ‘엄(격)근(엄)진(지)’

안장이나 이장식을 한 번 할 때마다 약 50분 정도가 소요된다. 김씨는 “행사가 거의 없거나 반대로 많이 몰리는 때를 제외하면 하루 4회 이상은 꾸준히 행사를 한다”며 “행사가 이어지다 보면 점심시간에 쉬지 못하고 식사도 제때 못하는 일이 많다”고 했다.

특히 국가유공자의 유골을 영현함으로 옮기는 이관이 어렵다고 한다. 국가유공자가 사망하면 우선 묘를 써 매장했다가 손 없는 날에 맞춰 호국원으로 이장하는 일이 많다. 이때 유골을 영현함에 옮겨 담는 작업을 이관이라고 한다. 원칙적으로 호국원에 안치하려면 화장 마친 상태여야 하지만 이장의 경우는 그렇지 않을 때가 많다.

“일정 기간 매장했다가 다시 유골을 꺼내어 오는 일이 많아요. 인골이 그대로죠.”

화장하지 않은 인골은 의전단이 직접 분골해야 한다. 망치로 뼈를 조각 낸다는 얘기다. 아무리 유공자라 해도 관에서 방금 꺼낸 유골을 손수 망치를 휘둘러 부수는 일은 상당한 스트레스를 동반한다. 게다가 이미 부패가 진행돼 악취를 동반하는 경우도 있다. 김씨는 “분골을 하는 일이 많아 정신과를 다니면서 약을 먹는 사람도 있고 우울증과 수면장애를 앓는 일이 많다”며 “분골을 하면서 뼛가루를 흡입하는 일도 있는데 유가족이 보고 있기 때문에 얼굴을 찌푸릴 수도 없다”고 전했다. 분골작업은 의전단원이 퇴사하는 대표적인 두 가지 사유 가운데 하나라고 한다.

▲ 국가보훈처노조
▲ 국가보훈처노조

1년 전 보고서 “처우개선” 지적에도
“공무직 전환 외 나아진 것 없어”

또 다른 문제는 출퇴근이다. 호국원도 묘지다 보니 시가지와 상당한 거리가 있다. 대중교통이 거의 없다. 하루에 80킬로미터 정도를 왕복해야 하는 곳도 있다. 출퇴근 셔틀도 없어서 의전단원 대부분이 자가용으로 출퇴근한다. 산길을 내리 달리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런 출퇴근 관련 유류비 지원은 없다고 한다. 김씨는 “월급도 빠듯한데 차량 유지비도 별도로 들어 경제적 어려움이 크다”며 “퇴근 이후 부업을 하는 동료도 있다”고 귀띔했다.

열악한 처우 문제를 국가보훈처도 모르지 않는다. 국립대전현충원이 10여년 전인 2009년 펴낸 국립대전현충원 의전체계 연구를 보면 지금도 이어지는 문제점을 고스란히 지적하고 있다. 이를테면 “의전단원이 안정적으로 장기간 복무할 수 있는 근무환경 조성이 필요(하다)”거나 “(의전단원이) 비정규직으로 채용되고 있어 행사 수행에 헌신성이 부족하며 이직 가능성도 높다”고 적고 있다. 또 “근무연수별 연봉 조정 등 의전단원의 신분 및 대가 지급에 대한 적절한 논의가 있어야 할 것”이라고 제안했다. 그렇지만 비정규직이 공무직으로 바뀐 것을 제외하면 제대로 개선됐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올해 기준 신입 직원의 실수령 월급은 190만원(기본급) 수준이다. 식비를 더해도 200만원 남짓한 돈을 받는 셈이니 최저임금과 별반 차이가 없다.

“국가보훈처는 항상 최고의 예우, 최고의 서비스, 적극 행정을 강조합니다. 국가를 위해 헌신한 국가유공자를 가장 가까이서 모시며 마지막 순간까지 최고의 예우를 다하겠다는 자부심도 있습니다. 그런데 전체 호국원의 누적 퇴사율은 70%나 됩니다. 일부 지역은 시간차를 두고 직원이 모두 떠나는 바람에 전부 새 직원으로 교체된 경우도 있어요. 내가 있는 곳만 해도 17명 정원인데 4년간 12명이 그만뒀습니다. 퇴사와 채용이 반복할 때마다 기존 인원의 애사심과 일할 의욕도 꺾입니다. 어디 가서 직장이 호국원이라는 말을 못해요.”

의전단 월급 ‘기본급·식비’가 전부, 수당은 ‘지급제외’
가족수당·교통비 경영평가 성과급 모두 ‘남 일’
노조 “국가 필요한 곳에서 차별, 해소가 국가 책무”

국가보훈처 의전단원이 속한 국가보훈처노조(위원장 한진미)는 호국보훈의 달인 6월 두 차례 파업을 했다. 현충일을 낀 5~6일 부분파업을 한 노조는 22~24일 3일간 전면파업을 했다. 지난해 10월부터 2022년 임금교섭을 시작해 9개월차에 접어들었지만 결실을 맺지 못하고 있다.

노조에 따르면 의전단원 월급은 신입 기본급 기준 184만원이다. 근속이 올라도 기본급 인상은 거의 이뤄지지 않는다. 그나마도 공무직으로 전환하면서 근속도 다 깎였다. 여기에 식비를 제외한 각종 수당은 거의 지급이 제외된다. 가족수당은 물론이고 교통비, 공공기관 경영평가 성과급, 호봉수당 등은 받지 못한다. 사실상 최저임금에 식비 14만원만 더해 받는 셈이다. 노조는 이번 교섭에서 기본급 기준 임금인상률 7%포인트를 제안했지만 사용자쪽은 정부에서 정한 1.9%를 고수하고 있는 상황이다.

교통비는 노조의 핵심 요구 중 하나다. 노조는 당초 국가보훈처 소속 재가돌봄노동자인 보훈섬김이를 주축으로 설립됐다. 이들은 국가보훈처가 담당하는 국가유공자 방문돌봄서비스를 전담하는 노동자다. 재가돌봄업무 특성상 업무시간 내 이동거리가 길어 부득이하게 자가용을 탄다. 그런데 국가보훈처는 이들에게 대중교통 요금의 일부에 해당하는 교통지원비만 지급하고 있다. 30킬로미터 미만을 기준으로 6천600원이다. 오랫동안 4천500원이었던 것을 지난해 교섭을 통해 2천100원 올렸다. 그나마도 의전단원은 아예 지원이 없다. 업무 중 이동이 아니라 출퇴근에 따른 이동이라는 이유다. 노조의 자체조사에 따르면 의전단원이 한 달에 지출하는 유류비는 28만원이다. 월급의 7분의 1을 유류비로 쓰는 격이다.

노조는 이런 차별을 해소하지 않으면 재차 파업하겠다고 밝혔다. 한진미 위원장은 “3일간 경고파업 이후에도 국가보훈처는 대화 움직임이 없다”며 “이번 기회에 처우개선과 차별해소 문제를 확실히 짚고 해결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공무직에 대한 전반적인 차별해소 대책을 제도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 위원장은 “국가에 채용돼 국가가 가장 필요한 곳에서 일하는 사람을 대상으로 한 차별이 만연하다”며 “공무직이라는 말만 걸어 놓고 차별해소와 처우개선이라는 희망고문만 하는 상황”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이들이 정당한 보수를 받고 인정받으며 일할 수 있도록 국가가 책무를 다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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