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올해 1월27일부터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되고 있다. 5명 미만 사업장은 적용하지 않고, 50명 미만 사업장이나 공사금액 50억원 미만 건설현장은 법률 공포 후 3년 뒤에나 시행하기 때문에 ‘사각지대’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이뿐 아니다. 언제 다치거나 목숨을 잃을지 모르는 현장에서 일하면서도 산업안전보건법과 산업재해보상보험법(산재보험법) 적용에서 제외되는 노동자들이 부지기수다. 여전히 안전보건법령 테두리 바깥에 있는 노동자와 현장을 <매일노동뉴스>가 찾았다. 안전보건공단과 함께하는 ‘누구나 안전하게 일할 권리를’ 캠페인의 일환으로 공동기획했다.<편집자>

“정운이 엄마는 지금도 매일 (전남 여수시 예다원 추모공원에 마련된 홍정운군 묘소에) 가요. 저는 출근하면서 매일 사고 현장에 가고요. 얼굴이라도 한번 보려고 가는 거예요. 날이 갈수록 생각이 더 많이 나요. 정운이가 셋째인데 돈에 관해서 어렸을 때부터 신경을 많이 썼어요. 형이나 누나보다도 아빠 힘을 덜어 주려고 요트사업을 해 보겠다는 의지가 있었어요. 실습을 나갔다는 자체가 학교 수업의 연장인데 정부나 교육청에 책임이 있는 거 아닌가요? (같은 사고를 막으려면) 실습제도는 폐지해야 돼요.”

전화기 너머 홍정운군 아버지 홍성기(54)씨의 목소리가 높았다. 홍정운군은 지난해 10월 여수시 요트업체에서 현장실습으로 잠수작업을 하다 숨졌다. 당시 정부가 재발방지를 위해 여러 대책을 내놓았지만 1년 가까이 지난 지금 학생과 교사, 전문가들은 “크게 달라진 게 없다”고 입을 모은다. 2017년 제주 이민호군 사망사고 이후 근로중심에서 학습중심으로 제도를 개선했는데도 여전히 현장실습생은 ‘값싼 노동력’으로 취급되며 학생도 노동자도 아닌 취약한 위치에 놓여 있다. 올해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으로 산재사고 감축을 기대하는 목소리도 커졌지만 현장실습생은 ‘노동자’가 아니어서 적용 대상이 될지 미지수다. 산업안전보건법의 경우 특례 조항을 통해 해당 법령을 적용받지만 5명 미만 사업장에는 구멍이 뚫려 있다. 19일 <매일노동뉴스>는 홍정운군 사고 이후 무엇이 얼마나 달라졌는지 살펴보고 현장실습의 구조적 문제를 짚어봤다.

10대 과제에 교사도 학생도 “달라진 것 없다”
국회서 잠자는 학생 안전·권익 보호 법안들

지난해 12월 정부는 관계부처 합동으로 마련한 ‘안전·권익 확보를 위한 직업계고 현장실습 추가 개선방안’을 발표하며 10대 중점과제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학생들이 현장실습을 가는 기업은 교육부나 시·도 교육청이 승인한 선도기업과 각 학교 현장실습운영위원회가 선정한 참여기업으로 나뉘는데, 두 곳 모두 공인노무사가 동행해 현장실사를 거치도록 제도를 개편했다. 기존에는 선도기업만 노무사가 동행한 현장실사를 거쳐야 했고, 참여기업의 경우 교사만 참여했다. 또한 기업의 인건비 부담분을 70%에서 40%로 줄이고, 정부·교육청의 지원을 확대했다. 현장실습운영위원회에 학생 참여를 보장하고, 부당대우 신고센터를 통해 권익구제·시정조치를 지원하기로 했다.

시·도 교육청 차원에서 제도개선 움직임도 있었다. 서울시교육청은 지난 4월 조례 개정을 통해 현장실습생이 산업재해나 신체적·정신적 위험에 노출될 경우 실습을 거부하거나 중지할 수 있다는 내용을 신설했다. 산업안전보건법상 작업중지권을 준용한 것이다. 울산시교육청도 지난 2월 제정한 현장실습 운영 관련 조례에서 같은 내용의 ‘작업거부권’을 명시했다. 지난 7월 취임한 김광수 제주도교육감은 공약에 현장실습을 폐지하는 내용을 담기도 했다.

이러한 변화를 학교 현장에서는 얼마나 체감하고 있을까. 9월부터 학생들이 현장실습을 나가기 시작하는 만큼 아직 평가를 하기에는 이르지만 현재까지 “크게 달라진 게 없다”는 게 공통된 증언이다. 전남 광주 한 직업계고에 재직 중인 정보형 교사는 “올해 ‘직업계고 현장실습 운영 매뉴얼’이 배포됐는데 (지난해와) 큰 차이가 없다”며 “홍정운군이 갔던 1인 업체까지는 아니더라도 여전히 영세 사업장에 실습을 나가야 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정씨는 “현장실습을 보내고 나서 중앙 차원에서의 모니터링은 실질적으로 거의 운영이 안 되고 일선 교사들도 (업무 과중으로) 전화로 확인하는 정도”라고 덧붙였다. 현장실습 기업 방문, 학생 면담 등을 하는 ‘학교전담 노무사’로 활동하는 박혜영 공인노무사(노무법인 참터 영동지사)는 “현장 실사 강화로 체크할 게 많아졌고, 산업안전교육을 이수시키는 등 안전 문제에 (전보다) 집중하고는 있지만 실효성이 있을지는 의문”이라며 “규모가 작은 사업장일수록 사장 개인 성향에 따라 노동조건이 천차만별인데 결국 그 문제를 학생들이 고스란히 겪게 되고, 학교가 이를 선별하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부당대우 신고센터 운영이나 작업중지권 보장도 실효성이 크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최서현 특성화고노조 위원장은 “신고센터에 신고를 해도 복교조치와 학부모와 학교에 부당대우 사실을 알리는 수준에 그칠 공산이 크다”며 “학생 신분이고 연령에 따른 위계가 작동하기 때문에 부당한 지시나 요구를 거부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라고 꼬집었다. 실제로 지난해 11월 현장실습을 나갔다가 직장내 괴롭힘을 당했다는 A(19)씨는 “신고센터 관련 정보를 아예 접하지 못했다”며 “업무적 실수를 했을 때 상사가 물건을 던지거나 비하하는 말을 할 때도 일이 미숙한 내 탓이라고만 생각했다”고 말했다.

정부는 지난해 10대 과제를 발표하면서 “법령 정비를 통한 안전확보 개선 근거를 마련하겠다”고 했지만 관련 개정안은 국회에 계류 중이다. 당시 정부 보도자료에 직접 언급된 직업교육훈련촉진법(직업교육훈련법) 개정안은 4개다. 이탄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개정안(1개)은 △현장실습산업체 선정시 산재발생 사실 확인(8조5항 및 6항 신설), 같은 당 서동용 의원이 발의한 개정안(3개)은 △현장실습 전담노무사 지정·운영의 법적 근거 마련(7조의3 신설) △노동인권 사전교육 의무화(9조의5) △부당대우 금지 조항 신설(9조의6) 및 위반시 1천만원 과태료 부과 내용을 담았다. 21대 국회에서 통과된 직업교육훈련법 개정안은 중앙취업지원센터 설치·운영 근거를 마련한 개정안(서동용 의원안)이 전부다.

▲ 특성화고노조
▲ 특성화고노조

사고 날 때마다 ‘뒷북’ 대책
취업률 핑계로 ‘도돌이표’

현장실습생 산재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여러 대책이 쏟아졌지만 이후에도 비슷한 사고는 반복됐다. 사고가 나면 제도를 강화하고, 시간이 조금 지나면 다시 취업률 제고를 목적으로 제도 완화가 단계적으로 이뤄지고, 또다시 사고가 발생하는 악순환이 계속된 것이다.

2005년 여수에서 현장실습생이 엘리베이터 점검을 하다 추락해 사망한 뒤 정부는 이듬해 ‘실업계고교 현장실습 운영 정상화 방안’을 통해 시기와 대상을 제한했다. 3학년 2학기 수업을 3분의 2 이상 이수하고, 졸업 후 해당 산업체에 취업이 보장된 경우에 한해 현장실습을 시행하도록 했다. 그런데 이는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자 바로 폐기됐다. 이명박 정부는 특성화고에 취업률 목표치를 제시하며 취업률에 따라 지원금을 차등 지급하고 목표에 도달하지 못하면 학교를 통폐합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박근혜 정부는 2013년 ‘특성화고 현장실습 내실화 방안’을 통해 3학년 1학기에도 현장실습을 나갈 수 있도록 했고, 2014년 ‘산학일체형 도제학교’를 신설해 2학년부터 학교와 산업현장을 오가며 직업훈련을 받도록 했다.

2017년 제주 이민호군 사고 이후 문재인 정부는 ‘학습중심 현장실습 안정적 정착방안’을 통해 시·도 교육청이 인정한 선도기업에 한해 학기 중 취업(수업일수 3분의 2 경과 이후)이 가능하도록 했다. 선도기업으로 인정되지 않은 경우 학기가 끝난 뒤 취업이 가능하도록 했다. 시·도 교육청 평가에서 양적 취업률 평가지표도 전면 폐지했다.

그런데 이러한 정책은 1년 만에 업체 선정절차를 간소화하는 등 기준을 완화하면서 ‘근로중심’에서 ‘학습중심’으로 전환한 의미가 퇴색됐다. 교육부는 2019년 ‘직업계고 현장실습 보완방안’을 통해 선도기업으로 선정되지 않은 ‘참여기업’도 현장실습생을 받을 수 있게 했다. 현장실습 참여 절차가 복잡해 기업의 참여가 위축되고 학생들의 조기 취업 기회도 축소된다는 이유에서였다. 학습중심의 현장실습 정책이 학교와 기업 현장에 안착하기도 전에 정책 기조를 되돌린 셈이다. 홍정운군이 일했던 곳도 참여기업이었다.

현장실습의 뿌리는 ‘노동’과 분리하기 어렵다. 직업계고 학생들이 현장실습을 의무적으로 나가게 된 건 1973년 박정희 정부가 ‘산업역군’ 육성을 목적으로 산업교육진흥법을 개정하면서부터다. 박공식 노무사(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는 “현장실습이 이어져 온 맥락 자체가 값싼 노동력을 조기에 공급하려는 목적이었기 때문에 실습에서 노동을 떼려야 뗄 수 없다”며 “학교는 빨리 취직을 시켜서 취업률을 올리고, 기업은 저렴한 인력을 공급받는 고리가 유지되는 한 현장실습의 구조적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5명 미만 사업장 유해·위험작업 추가교육 ‘예외’
중대재해처벌법 ‘종사자’ 범위에 포함 안 될 듯

현장실습생 안전사고 문제는 노동자도 학생도 아닌 취약한 지위와 무관치 않다. 교육부가 2017년 현장실습을 학습중심으로 개편하면서 현장실습생을 학생으로 정의했지만 현장에서는 여전히 저렴한 노동력으로 인식되고 있다. 일반 직원과 다를 바 없이 일하는데도 노동자로서 법적 보호는 받지 못하는 탓에 위험에 노출되기 쉬운 것이다.

현장실습생은 근로기준법을 적용받지 않는다. 다만 직업교육훈련법 24조에 따라 근기법상 휴가나 갱내 근로 금지 같은 일부 보호조치만 적용받을 뿐이다.

산업안전보건법에서는 특례조항(166조의2)을 통해 현장실습생을 근로자로 간주한다. 사업주는 산재나 건강장해 예방을 위한 안전·보건조치를 취해야 하고, 유해·위험작업으로 상당한 숙련도가 요구되는 작업의 경우 이에 필요한 자격·면허 없이 그 작업을 하게 해서는 안 된다. 관련 자격증이 없는 홍정운군에게 따개비 제거를 위해 잠수작업을 지시한 것은 법 위반이다. 산재보험법도 현장실습생 특례조항이 있어 실습을 하다 재해를 입으면 ‘업무상 재해’로 인정받을 수 있다.

그런데 상시근로자 5명 미만 사업장의 경우 산업안전보건법 일부 조항을 적용받지 않는다. 시행령에 따라 유해·위험작업으로 변경시 추가교육을 하지 않아도 되고, 안전보건진단이나 안전보건 개선계획 수립 명령에서 자유롭다. ‘안전·권익 확보를 위한 직업계고 현장실습 추가 개선방안’에 따르면 2020년 현장실습처 가운데 5명 미만 사업장은 14.9%나 됐다. 2018년부터 2020년까지 발생한 현장실습생 산재 총 17건 가운데 30명 미만 사업장에서 발생한 건수가 10건으로 59%를 차지했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적용 여부부터 쟁점이 되고 있다. 산업안전보건법처럼 특례조항이 없는 데다 법에 명시된 종사자는 근기법상 근로자나, 사업의 수행을 위해 대가를 목적으로 노무를 제공하는 자로 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1월 대검찰청이 배포한 ‘중대재해처벌법 벌칙해설서’에는 “원칙적으로 중대재해처벌법에는 산업안전보건법과 같은 현장실습생 특례규정이 없으므로 현장실습생을 근기법상 근로자로 보기 어렵고, 실습계약상 노무의 대가를 분명하게 약정하는 등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현장실습 그 자체나 근로경험을 노무의 대가로 단정하기도 어렵다”고 명시돼 있다.

노동계에서도 적용 가능성이 높지 않다고 보고 있다. 최명선 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실장은 “산업안전보건법처럼 특례조항으로 근로자로 간주하는 조항이 없기 때문에 현행법으로는 적용 안 할 가능성이 굉장히 높다”며 “현장실습생을 보호하려면 법 개정을 통해 명확하게 정리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강은미 정의당 의원은 지난 1월 종사자 범위에 사업체 또는 기관에서 현장실습을 받는 교육훈련생을 추가하는 내용을 담은 중대재해처벌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현장실습생 사망사고의 경우 법 적용 범위에 포함되지 않아 사업주와 경영책임자의 책임을 묻기 어렵기 때문이다.

다시금 커지는 폐지 요구
“기간 축소하고 기업 요건 강화해야”

현장실습생이 법·제도적 사각지대에 위치해 있는 만큼 현장실습을 학습으로 볼 것인지, 노동으로 볼 것인지 재정립해야 한다는 요구가 제기된다.

특성화고노조와 특성화고등학생권리연합회는 반복되는 사고를 막기 위해서는 현장실습생에 대한 노동자성을 인정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실습현장에서 노동을 하는데도 근기법 적용 대상이 아니어서 최저임금을 보장받지 못하고, 임금체불이나 직장내 괴롭힘이 발생해도 학생 신분으로는 권리구제가 어렵다는 지적이다. 이들은 유해·위험 작업 관련 직종이나 산업안전 고위험 직종에서 5명 미만 사업장 현장실습을 금지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학생들 입장에서는 경제적 이유 등으로 빠른 취업을 원하기 때문에 현장실습을 유지하되 위험한 환경에 내몰리지 않도록 제도개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전교조나 특성화고 현장실습 피해자 가족모임은 현장실습 제도 폐지를 촉구하고 있다. 교육과정의 일환으로 운영돼야 할 현장실습제도가 이미 저렴한 노동력 제공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는 만큼 직업교육 정상화를 위해서라도 폐지가 불가피하다는 지적이다. 전교조는 지난해 정부 대책 발표 이후 ‘전국 동시 취업기간 설정을 통한 직업계고 교육 정상화 방안’을 제안하기도 했다. 11월까지는 취업활동 없이 학생들의 수업권을 보장하고 12월부터 ‘취업준비기간’으로 정해 1~2월에 채용 및 입사 전 교육을 받고 졸업과 동시에 취업을 하자는 내용이다.

안재영 한국직업능력연구원 연구위원은 지난 3월 ‘직업교육연구’에 게재한 ‘직업계고 현장실습의 학습으로의 전환과 개선 방안에 대한 논의’에서 현장실습을 ‘학습’으로 정의하며 ‘근로자 신분이어야 현장실습생을 보호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근로관계법에 현장실습생에 준용하는 특례조항을 마련한다면 학생 신분이라도 근로자에 준하는 수준으로 현장실습생의 안전과 권익을 보호할 수 있다”고 밝혔다. 안재영 연구위원은 ‘현장실습=일 경험을 하는 학습프로그램’이라는 인식의 전환을 위해서라도 △채용전환 시기를 졸업 이후로 할 것 △현장실습 기간을 최대 1개월로 줄일 것 △안전사고 발생 위험이 높은 업종은 상시근로자 수 50명 이상으로 제한할 것 등을 제시했다.

▲ 특성화고노조
▲ 특성화고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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