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해배상·가압류는 일반적인 민사법상 제도인데도 노동자들을 위협하는 장치로 작동하고 있다. 정당한 쟁위행위를 했다는 이유로 노동자 개인에게 천문학적 금액의 손해배상을 청구하고 있다는 비판이 꾸준히 나온다. 헌법 33조와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3조는 단체행동권을 보장하고 있지만, 현실은 법률을 무력화하고 있다. <매일노동뉴스>가 시민단체 ‘손잡고(손배가압류를 잡자! 손에 손을 잡고)’의 공개 자료를 토대로 손배·가압류 소송과 관련한 사법부 판단의 문제점과 손해배상 청구로 인한 노동자 건강권 문제를 분석했다.<편집자>

▲시민단체 ‘손잡고(손배가압류를 잡자! 손에 손을 잡고)’와 공공상생연대기금이 30일 오전 국회도서관 소회의실에서 ‘헌법, 노조법과 손해배상가압류’ 토론회를 진행하고 있다. <홍준표 기자>
▲시민단체 ‘손잡고(손배가압류를 잡자! 손에 손을 잡고)’와 공공상생연대기금이 30일 오전 국회도서관 소회의실에서 ‘헌법, 노조법과 손해배상가압류’ 토론회를 진행하고 있다. <홍준표 기자>

“사법부가 노동권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다고 생각이 들어요. 전체 맥락에서 법이 충돌하는 현상이 벌어지는데 어디까지 허용하고 불법이라고 보느냐. 이런 부분을 판사들이 잘 모르는 거죠. 그러다 보니 계속해서 손배·가압류 문제들은 계속 살아나고, 노조할 권리나 단체행동권 관련 제약은 더 심해지고 있어요.”

손배·가압류 소송을 당한 금속노조 아사히글라스비정규직지회 조합원 A씨가 법원에 불신을 드러내며 한 말이다. 사법부가 노동법에 대해 몰이해와 무관심으로 일관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33년간 197건 소송기록 분석
1심까지 26개월, 대부분 ‘개인’ 대상

손배·가압류 제도가 ‘노조파괴’ 수단으로 활용되고 노동 3권을 침해한다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됐지만, 현실은 바뀌지 않았다. 법률 개정은 이뤄지지 않았고, 사법부는 기업 편향적 판결을 내리고 있다. 적법한 쟁의행위를 한 노동자들조차 숨통이 끊긴다고 절규하는 이유다.

지금도 노동자들의 생존권 위협 사례는 쉽게 찾을 수 있다. 8일 만에 일단락된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 파업을 이유로 하이트진로는 화물차주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한다는 방침을 밝혔다. 강동문화재단도 파업했다는 이유로 올해 1월 노조에 3억원대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노동자들 피해는 통계로 고스란히 드러난다. 손잡고와 공공상생연대기금이 30일 국회도서관에서 연 ‘헌법, 노조법과 손해배상·가압류’ 토론회에서는 지난해 4월부터 올해 5월까지 수집한 소송기록 197건(손해배상 185건, 가압류 신청 12건)이 공개됐다. 이마저도 전체 기록은 아니라 실제 청구된 금액은 더 클 것으로 예상된다.

손해배상 금액은 천문학적 수준이다. 1989년부터 올해 5월까지 조사된 손해배상액만 ‘3천160억2천865만원’이다. 소송을 당한 노동자들이 ‘피고’가 되는 기간이 길수록 배상금액도 늘었다. 소송 접수 후 1심 판결까지 평균 26개월이 걸렸고, 최대 7년 이상 걸리는 경우도 있었다. 소송이 길어질수록 원금에 이자가 붙는다.

더군다나 ‘개인’을 겨냥한 손해배상 청구가 대부분이다. 손잡고가 수집한 197건의 사건기록 중 94.9%(187건)는 노동자 개인을 대상으로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노조 단독으로 청구 대상을 삼은 사건은 단 10건에 불과했다. 기업이 아닌 국가가 소송을 제기한 사례도 14건으로 조사됐다.

편집 : 김효정 기자
편집 : 김효정 기자
편집 : 김효정 기자
편집 : 김효정 기자

1심 사용자 일부 승소 47%
법조계 “쟁의행위 정당성 협소하게 판단”

그렇다면 사법부 판단은 어땠을까. 사용자가 1심에서 일부승소한 사건은 197건 중 93건으로, 47%였다. 노동자가 소를 취하한 경우(24건)까지 합하면 법원이 사실상 기업 편을 들어준 것이다.

법조계는 사법부가 ‘쟁의행위 정당성’을 지나치게 협소하게 판단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하태승 변호사(민주노총 법률원)는 이날 토론회에서 소송 원인이 된 쟁의행위 발생 유형을 분석하고 문제점을 지적했다.

소송기록을 분석하면 쟁의행위 발생 원인은 △단체교섭·단체협약 체결(82건) △불법파견(36건) △노조파괴·부당노동행위(26건) △해고·정리해고(43건) △근로기준법 위반(8건) △기타(41건) 등으로 다양했다. 하지만 일반적인 파업 배경인 ‘교섭상 분쟁’을 제외한 ‘정리해고’와 ‘불법파견’ 관련 쟁의행위의 경우 경영권에 편중돼 해석한 것으로 드러났다.

하 변호사는 “법원의 판례 법리가 지나치게 노동자에게 불리하고, 정당한 단체행동권을 제약하는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정리해고와 관련해 판결이 경영권에 편중됐다고 강조했다. 2009년 쌍용자동차 정리해고와 관련해 금속노조 쌍용차지부와 조합원 139명에게 50억원이 청구된 사례와 철도노조를 상대로 제기된 97억원 손해배상 소송을 대표적인 사례로 들었다.

‘정리해고’는 노동자의 고의·과실이 개입할 여지가 없는데도 법원은 ‘경영권’을 내세웠다. 하 변호사는 “법원은 정리해고를 ‘고도의 경영상의 결단’에 관한 사항으로 보고 이에 대한 쟁의행위는 원칙적으로 불법행위라고 판단해 왔다”며 “이러한 이유로 소송 과정에서 노동자에게 희망이 존재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단체행동권과 경영권이 조화를 이루는 해석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불법파견’과 관련한 쟁의행위 역시 사법부가 정당성을 인정한 사례는 드물었다. 현대자동차·기아자동차·동양시멘트 등 많은 기업의 불법파견 판결에도 법원은 이와 관련한 파업에 대해 노동자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하지만 CJ대한통운과 현대제철 사례와 같이 ‘원청의 실질적 지배’를 인정해 법원이 전향적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하 변호사는 주장했다.

소송기록 이면에 드러난 손해배상의 모습은 잔인했다. ‘노조파괴’ 수단으로 사용하고, 공포감을 유발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유성기업 사건이다. 2011년 유성기업은 ‘창조컨설팅’의 자문을 받아 노조파괴 전략을 짰고, 금속노조 유성기업지회 조합원을 상대로 40억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갑을오토텍과 보쉬전장 사례도 마찬가지다.

희망퇴직·노조탈퇴 ‘조건부 소 취하’
“노동자 공포감 유발 수단 악용”

조건을 달고 소송 취하를 종용하는 사례도 상당수 확인됐다. 수집된 소송기록 중 35건이 ‘조건부 소취하’가 이뤄졌는데, 희망퇴직(11건)·근로자지위확인 소송 포기(17건)·노조탈퇴(5건) 등 조건을 걸고 소송이 취하됐다. 하 변호사는 “쟁의행위에 대한 손해배상 소송은 단순히 재산상의 피해를 도모하기 위한 수단이 아닌 노조에 대한 탄압과 공포감 유발을 위한 수단으로 남용된 사실을 알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노동자들의 피해는 심각했다. 올해 2월 불법파견 비판 농성을 했다는 이유로 1심에서 징역 1년6월을 선고받은 김수억 전 금속노조 기아차비정규직 지회장은 “법원은 2018년 8월 기아차 화성공장에서 쟁의행위를 한 비정규 노동자들 7명에 대해 지난 6월 1억7천만원이 넘는 손해배상을 선고했다”며 “회사는 개인에게 개별적으로 손해배상을 청구해 노동자의 가정과 삶을 송두리째 파괴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홍종인 전 금속노조 유성기업지회장도 이날 “임금체불과 부당해고 등 관련 소송은 모두 노조가 이겼는데도 손해배상 소송만은 노조와 개인에게 책임을 지웠다”며 “2011년 이후 10년은 손해배상과 고소·고발, 징계로 기억된다”고 토로했다. 대전고법은 2015년 12월 유성기업이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노동자 13명에게 10억1천15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 김수억 전 금속노조 기아차비정규직 지회장이 30일 오전 국회도서관 소회의실에서 진행된 ‘헌법, 노조법과 손해배상가압류’ 토론회에서 손해배상 청구에 대한 피해 사례를 발표하고 있다. <홍준표 기자>
▲ 김수억 전 금속노조 기아차비정규직 지회장이 30일 오전 국회도서관 소회의실에서 진행된 ‘헌법, 노조법과 손해배상가압류’ 토론회에서 손해배상 청구에 대한 피해 사례를 발표하고 있다. <홍준표 기자>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