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한 모바일 세탁서비스 업체의 공장에서 ‘야간 입고’ 직원이 새벽에 이불을 검수하고 있다. 이 직원은 밤새 200개가 넘는 이불을 분류하고 등록했다. <홍준표 기자>

디지털 플랫폼을 기반으로 이뤄지는 노동력을 토대로 성장한 기업들이 저마다 ‘혁신’을 외치고 있다. 인공지능(AI) 등 신기술을 구축해 비대면으로 고객에게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주장이다. 반면 ‘사람의 노동’은 혁신 뒤에 가려져 있다. ‘플랫폼기업’ 그물망에서 일하는 노동자가 증가하면서 사각지대에 방치돼 있다는 지적이 꾸준히 나온다.

최근에는 플랫폼 창업 바람을 타고 ‘모바일 세탁업체’가 지속해서 생겨나고 있다. 고객의 빨랫감을 비대면으로 세탁해 하루 이틀 사이에 배송한다는 캐치프레이즈를 걸고 업계는 빠른 속도로 성장하는 추세다. 그러나 장시간 노동과 열악한 근무환경이 ‘세탁 스타트업’을 떠받치고 있다는 경고음이 울린다. 실상을 파악하려면 ‘세탁계의 새벽배송’ 신화 이면을 살필 필요가 있다. <매일노동뉴스>는 최대 규모의 모바일 세탁업체에서 이틀간 일하며 세탁 스타트업의 노동환경을 들여다봤다. 또 근로계약과 계약형태의 법률상 문제를 다각도로 분석한다.<편집자>

① 24시간 세탁, 그곳은 ‘빨래지옥’이었다
② “잔업은 일상” 16시간 만에 퇴근
③ 인력업체 직원이 세탁? ‘불법파견’ 정황
④ 과로에 놓인 배송기사, 산재 위험 노출

‘24시간 세탁배송’을 내건 모바일 세탁서비스업체 E사 공장에서 일하는 위탁업체 노동자와 본사 직원이 혼재작업을 하며 직접지시를 받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위탁계약을 체결했지만 실제로는 근로자파견 노동자로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세탁업무는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에서 허용한 근로자파견대상업무에 속하지 않는다. 불법파견 정황이 짙어 보인다.

인력업체 통한 채용, 본사 관리자 ‘지휘’

20일 <매일노동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E사 공장에서 일하는 위탁업체 직원들과 본사 소속 노동자들은 유사한 업무를 수행한다. 기자가 야간근무를 한 E사 군포공장에서는 약 20명의 직원들이 야간에 파트별로 등록·분류·검수 업무를 담당했다.<본지 2022년 10월12일자 2면 “[모바일 세탁서비스업체 취업기 ①] 24시간 세탁, 그곳은 ‘빨래지옥’이었다” 참조>

그런데 E사 소속이 아닌 직원들이 다수 눈에 띄었다. 이들은 각 작업대에서 본사 직원들과 같은 업무를 했다. 인력업체 직원 A씨는 “E사 직원들과 작업을 돌아가면서 한다”며 “사실상 같은 업무를 한다고 보면 된다”고 털어놨다.

실제 SNS에 개설된 군포공장의 업무 대화방을 보면 인력업체 직원들의 근무일정이 올라왔다. E사 관리자의 업무지시도 대화방을 통해 이뤄졌다. 인사팀 직원은 “클리닝 분류 작업시 개털이 많은 옷이 종종 올라오는 것이 확인된다”며 “직원과 도급사 직원들에게 전달 바란다”고 야간 파트장에게 전달했다. “중요한 손님이 방문하니 헤어 캡을 필수로 착용하고 환경정비를 부탁한다”는 내용도 대화방에 등장한다. 사실상 E사의 지휘·감독이 이뤄졌다고 볼 수 있는 부분이다.

E사 위탁업체인 ㅇ사 채용공고도 이를 뒷받침한다. 구인 사이트에는 ‘[군포/야간/단순직/300만원] 세탁물 분류, 등록 직원 모집’ ‘군포 스마트팩토리 대규모 채용’ 등의 ㅇ사 채용공고가 수시로 올라온다. 아르바이트 또는 3개월 계약직(정규직 전환 가능) 등의 조건을 달았다. 업무 내용은 입고 세탁물 단순 분류, 등록 전산업무로 소개했다. ㅇ사는 스스로를 인재파견 회사로 알리고 있다.

▲ E사의 군포공장 SNS 업무대화방에는 인력위탁업체 직원들이 다수 포함돼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본사 관리자가 대화방에 업무를 지시하는 내용.
▲ E사의 군포공장 SNS 업무대화방에는 인력위탁업체 직원들이 다수 포함돼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본사 관리자가 대화방에 업무를 지시하는 내용.

‘세탁업’ 파견 금지, “묵시적 근로관계 가능성”

문제는 E사가 하는 세탁서비스는 ‘근로자파견’이 허용되지 않은 업종이라는 점이다. 파견법 시행령의 [별표1]에 따르면 사무 지원 종사자·고객 관련 사무 종사자·기타 소매업체 판매원·배달 및 검침 관련 종사자의 업무 등은 근로자파견대상 업무에 해당한다. E사 공장의 세탁원·입고원·출고원은 대상업무에 속하지 않는다.

법조계는 E사가 계약한 ㅇ사가 파견업 허가를 받았더라도 파견법 위반일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한다. ‘파견’은 파견법의 적용을 받아 파견된 회사의 사업주에게 지휘·명령을 받지만, ‘도급’의 경우 원청의 지휘·감독에서 자유롭다. E사의 경우 계약상 도급의 외관을 취했더라도 실질적으로 파견에 해당하는 정황들이 나왔기 때문에 ‘불법파견’이라고 볼 수 있다.

김기덕 변호사(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는 “파견 업종에 해당하지 않는다면 인력업체 직원이 근로계약을 체결하고 사용사업주의 사업장에서 일할 경우 문제가 생긴다”고 지적했다. 최종연 변호사(법률사무소 일과사람)는 “인력업체가 채용해서 E사에서 일하도록 하는 채용공고가 다수 보인다”며 “그러나 파견법상 세탁원이 파견허용업종이 아닌 이상 파견법 위반 소지가 있고, 위탁업체의 현장대리인이 있더라도 단순 전달 역할만 수행했다면 근로자파견이 성립한다”고 설명했다.

사측 “부분적 채용, 정규직 전환 권장” 해명

E사는 파견계약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위탁업체 직원’을 일정 시간이 흐른 뒤 직접고용하고 있다는 취지로도 해명했다. 인력업체의 채용과 관련해 E사 관계자는 “아직 초기 스타트업이고 코로나 격리 등으로 인해 자체 채용만으로는 고객 수요의 속도에 맞춰 세탁 및 운영 인력을 채용하는 것이 매우 어렵다”며 “인력수급이 어려운 경우에만 인력위탁운영업체에 채용을 부분적으로 요청하고 있다. 정규직 전환도 적극적으로 제안하고 있고, E사 소속으로 전환된 직원도 다수 있다”고 답변했다. 또 인력파견업체가 아닌 ‘인력위탁업체’를 활용하고 있다고 했다. 인력수급이 어려운 경우에 한정해 위탁업체에 채용을 요청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인력업체 직원의 업무지시는 E사가 아닌 ‘위탁업체 관리자’를 통해 진행된다며 선을 그었다. 회사 관계자는 “위탁업체의 현장 대리인에게 필요한 업무를 전달하면, 위탁업체 직원들에게 필요한 지시와 감독을 한다”며 “본사 소속 직원들은 비즈니스의 핵심인 드라이클리닝이나 워싱을 담당하고 위탁업체 직원들은 입고·출고·검수 등의 업무를 한다”고 설명했다. E사의 지휘·감독이 없었다는 주장이지만, SNS 업무대화방의 지시내용과 기자의 체험을 종합하면 배치되는 해명으로 보인다.

▲ 모바일 세탁서비스 업체의 공장에서 직원이 검수를 마친 이불을 세탁실로 옮기고 있다. <홍준표 기자>
▲ 모바일 세탁서비스 업체의 공장에서 직원이 검수를 마친 이불을 세탁실로 옮기고 있다. <홍준표 기자>

‘3개월 초단기 계약’ 논란, “악순환 반복”

본사 직원의 ‘초단기’ 근로계약도 논란거리다. E사의 근로계약서에 따르면 근로계약기간 및 수습기간은 최초 3개월이다. 면접 당시 면접관은 “3개월의 평가기간을 거쳐 계약 종료가 될 수도 있고 연장될 수도 있다”며 “쭉 같이 일해 보니 ‘아깝다’는 생각이 들면 정직원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규직 전환은) 1~2년이 걸릴 수 있다. 다 기회가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정규직 전환 직원의 얘기는 조금 달랐다. ‘야간 분류’ 직원 B씨는 “3개월이 지나고 정규직이 됐다”면서도 “업무는 달라진 것이 없고, 처우도 똑같다”고 주장했다. 다른 직원 C씨는 대부분 3개월을 채우지 않고 그만둔다고 했다.

E사는 3개월은 수습기간이라고 했다. 신규 입사자의 업무 적응을 돕고, 상호 검증한 다음 업무 숙련도 평가에서 80점 이상을 받으면 정규직 전환이 이뤄진다고 했다. 실제 군포공장은 직원의 90%가 정규직으로 전환됐다고 설명했다. 회사 관계자는 “공장 직원들은 1년4개월 정도 일하고 있고 2년 이상 근무자도 30%”라며 “2019년 3월 첫 서비스를 시작한 것을 볼 때 짧은 기간은 아니다. 군포공장은 본격 가동된 지 4개월 정도 됐다”고 밝혔다. 다만 정규직과 계약직의 급여·처우는 동일하다고 했다.

3개월을 채우지 못하고 퇴사하는 직원들이 많은 것은 분명해 보인다. 야간 입고 직원 C씨는 “잔업과 밤샘 노동이 많다 보니 얼마 가지 못해 그만두는 직원들이 속출하고 있다”며 “그러다 보니 현재는 거의 중장년 직원들만 야간에 일하고 있다. 악순환이 반복된다”고 토로했다.

법조계도 단기계약에 허점이 있다고 지적한다. 조영훈 공인노무사(노무법인 오늘)는 “실무에서 기간제계약은 근로기준법의 해고제한 법리를 잠탈하기 위해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며 “이러한 목적으로 실무에서 무분별하게 사용되면 문제”라고 말했다.

지금도 공장은 새로운 사람으로 채워지고 있다. 박준성 공인노무사(금속노조 법률원)는 “단기계약에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 일하다 보니 금방 못 버티고 나가는 것”이라며 “그러다 보니 노조가 생길 상황도 안 되고, 결국 사람의 부품화가 진행된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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