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소희 기자

“신입교육 한 달간 수시로 시험을 보았고 이후에도 매달 교육과 시험을 통해 (자격을) 검증받아 왔습니다. 분기에 한 번씩 공단에서 평가도 받았고 점수가 미달하면 나머지 공부도 했습니다. 4년9개월간 제가 상담한 고객들이 어림잡아 10만명이 넘습니다. 최저임금을 받으면서도 공공기관 상담사라는 자부심 하나로 국민에게 건강보험 길잡이 역할을 했던 저의 경력은 어디서 보상받아야 하나요.”

국민건강보험공단 서울센터에서 일하는 임성은(35)씨가 떨리는 목소리로 되물었다. 임씨는 2019년 3월12일 센터에 입사했다. 2019년 2월28일 이후 입사자에게 공개경쟁채용을 주장하는 공단의 입장대로라면 그는 단 12일차로 공개채용에 내몰리는 셈이다.

함께 교육받던 12명의 동기 중 남은 상담사는 임씨뿐이다. 입사 과정에서 4주간 기본교육을 받고 최종시험에서 2명이 탈락했다. 방대한 업무량과 잦은 시험에 동기들은 모두 퇴사를 감행했다. 그렇게 4년9개월을 “버텼던” 임씨는 “경력이 물거품처럼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고 토로했다. 임씨가 말을 이어갔다. “우리는 누구의 자리를 탐내는 것이 아닙니다. 2년 전에 했던 사회적 합의, 소속기관 전원 고용 승계라는 약속을 지켜달라는 것뿐입니다.”

건강보험 최일선에서 일한다는 자부심

7일 오전 서울 중구 민주노총. 7명의 국민건강보험공단 상담사들이 자신의 입사 날짜가 적힌 피켓을 들고 일 경험을 증언했다. 입사일은 다양했다. 국민건강보험공단 고객센터는 일이 워낙 힘든 탓에 수시로 채용공고가 올라온다.

지난 2021년 공단은 민간위탁업체 소속인 고객센터 상담사 1천500여명을 ‘소속기관’ 방식으로 정규직화한다고 결정했다. 하지만 2년 동안 전환은 이뤄지지 않았다. 공단은 민간위탁 정책추진방향을 발표한 시점인 2019년 2월27일을 기준으로 2019년 2월28일 이후 입사자에게 공개경쟁채용을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공공운수노조 국민건강보험고객센터지부는 공개채용 해당 인원이 전체 인원의 40%에 해당한다며 구조조정안이라고 반발했고 38일째 파업 중이다.

이민정(31)씨는 2017년 11월21일부터 부산고객센터에서 일해왔다. 이씨는 “건강보험 공공성에 기여한다는 자부심을 갖고 일한다”고 강조했다. “고맙다”는 시민의 말을 들으면 공공기관 상담사라는 자부심에 벅차기도 했다. 얼마 전엔 공단 지사에 보험료 조정을 문의했다가 퇴짜맞은 시민을 오래도록 상담한 끝에 보험료 조정 방안을 찾아주기도 했다. 민간위탁업체 관리자는 “통화시간이 10분을 넘어간다”며 “전화를 끊으라”고 압박했지만 이씨는 포기하지 않았다.

상담사들은 “공공기관 상담사라는 자부심”이 원동력이라고 입을 모았다. 2018년 6월25일 입사한 장용옥(36)씨와 2018년 12월24일 입사한 강신옥(45)씨는 각각 광주와 대전센터에서 일한다. 공단은 지난 코로나19 시기에 백신 접종 예약 상담을 맡기도 했다. 신종플루와 메르스 때도 격리준수 여부를 살피는 등의 업무를 해왔다. 독거노인에게 안부 전화를 건네는 일도 한다. 장용옥씨는 “건강보험 제도와 혜택의 최일선부터 재난 상황까지 대응하는데도 상담사를 공단의 일원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공단의 모습에 허탈한 심정뿐”이라고 토로했다.

“공단 주장대로라면 우리는 무자격 상담사인가”

콜센터 업계에는 ‘건강보험공단 출신이면 어떤 콜센터든 프리패스’라는 우스갯소리가 통용된다. 1천81개의 업무를 담당하는 공단 고객센터 노동자의 전문성과 함께 감정노동을 비롯한 노동강도가 업계 내에서도 ‘톱클래스’로 인정된다는 이야기다.

장기요양 상담을 주로 하는 본부센터 소속 선해인(44)씨는 올해 2월21일 입사한 새내기 상담사다. 국민건강보험고객센터지부에 따르면 210명이 정원인 본부센터의 60%가 2019년 2월 이후 입사자다. 본부센터에서는 청각장애인을 위한 영상 수어 상담 및 영어 중국어 등의 외국어 상담도 이뤄진다. 장기요양 업무는 건강보험 상담업무 중에서도 난이도가 높은 업무로 꼽힌다. 선씨는 “장기요양기관 청구를 관리자 도움 없이 혼자 상담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1년 이상의 시간이 소요된다”며 “1년이 지나도 업무가 어려운 것은 마찬가지라 2~3년이 지나야 어느 정도 안정되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선씨는 공개채용을 통해 본부센터 인원이 대거 탈락할 경우 장기요양 상담 업무가 사실상 멈출 것을 우려했다.

2021년 6월21일 입사한 김윤지(34)씨는 상담사이면서 신규 입사자를 가르치는 ‘파트 리더’를 겸임하고 있다. 김씨는 지난 10월 공단의 한 지사 직원들이 고객센터 체험학습을 온 일화를 회고했다.

김씨는 “체험을 온 공단 직원이 내가 모든 건강보험 업무를 가리지 않고 상담하는 모습에 놀라워했다”며 “40분 정도 상담을 지켜보더니 ‘왜 쉬지 않느냐’고 물어 ‘고객센터는 초 단위로 휴식이 기록돼 하루 1시간밖에 쉴 수 없다’고 답하니 더욱 놀랐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4일 늦게 들어왔다는 이유로 공개경쟁채용 위기에 놓인 송옥황(47)씨는 2019년 3월4일 입사자다. 40대로 접어들며 상담사에 도전한 송씨는 “1년에 16번 보는 시험을 매번 잘 치르려고 하루 500개 문항을 퇴근 전까지 풀었다”며 “공개채용을 주장하는 공단의 입장은 5년여간 일한 상담사의 숙련도와 경력을 무시하는 처사”라고 비판했다. 그는 “공단의 입장대로라면 지난 5년간 고객은 이름 모를 용역업체 소속의 무자격자 상담사에게 상담을 받아온 것”이라고 꼬집었다. 송씨는 “고3인 딸을 두고 파업해 미안한 마음이 크지만 가족의 응원을 받고 있다”며 “부끄럽지 않은 엄마가 되고자 해고없는 소속기관 전환 투쟁을 멈추지 않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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