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공운수노조

국민건강보험공단 고객센터 상담사의 정규직 전환은 ‘사회적 합의에 의한 결정’이다. 공단과 정규직·비정규직 노조, 외부 전문가들이 숙의 끝에 합의안을 도출했다. 그러나 공단은 2년 넘게 요지부동이다. 이은영 공공운수노조 국민건강보험고객센터지부장의 단식이 24일 기준 24일째 이어지자 사회적 대화에 참여했던 전문가들이 나섰다. 이들은 공단을 향해 “사회적 합의를 조속히 이행하라”고 촉구했다.

전 국민건강보험 고객센터 사무논의협의회 전문가 위원들은 이날 오전 서울 모처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이러한 내용이 담긴 의견서를 발표했다. 협의회 위원장인 이병훈 중앙대 명예교수(사회학)을 비롯해 정일영 한길노무법인 대표(노무사)·박표균 전 중앙노동위원회 위원·박석운 한국진보연대 상임대표 등이 의견서에 이름을 올렸다. 해외에 체류 중인 이장원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을 제외하면 모든 전문가 위원의 뜻이 모았다.

정규직도 참여한 사회적 합의
“차선책으로 소속기관 직접고용 결론”

사무논의협의회는 2021년 10월21일 고객센터 상담사들의 공단 소속기관 정규직 전환을 결정했다. 협의회는 공단 이사 2명, 정규직인 국민건강보험공단노조 대표와 비정규직 당사자인 국민건강보험고객센터지부 대표 각 1명, 외부 전문가 5명 등 모두 9명으로 구성됐다.

논의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직접고용을 요구하는 비정규직과 이를 반대하는 정규직이 정면 충돌했다. 세 차례 걸친 국민건강보험고객센터지부의 총파업, 외부 전문가 중심으로 위원 재구성, 정규직·비정규직 노조의 협의회 참여를 촉구하는 공단 이사장 단식까지 우여곡절 끝에 논의가 시작됐다.

공단이 아닌 공단 소속기관 정규직 전환이란 결론이 나온 배경이다. 박석운 대표는 “당시 내부 조직적 갈등이 심각했다”며 “직접고용은 아니지만 그에 준하는 차선책으로 의견이 모아졌다”고 말했다. 이병훈 교수도 “정규직 노조까지 참여해 어렵게 이룬 사회적 합의”라고 덧붙였다. 소속기관은 공단과 직제·인사·보수·회계 등은 분리 운영되지만 공단과 같은 법인이라서 고용안정을 보장받고 처우개선을 꾀할 수 있다. 공단 소속기관으로 일산병원·서울요양원이 있다.

“채용비리 없는 한 채용승계 마땅”

그러나 공단은 2년간 차일피일 미루기만 했다. 사측은 소속기관 설립을 위한 연구용역이 나올 때까지 대화할 수 없다고 버텼고, 지난해 12월 용역 결과가 나오자 공단 이사장 공백을 이유로 대화하려 하지 않았다.

지난달에서야 공단은 첫 제시안을 내놨다. 정부의 민간위탁 정책추진방향 발표 시점인 2019년 2월27일 이후 입사자들은 직업기초능력평가(NCS)를 통해 공개경쟁 채용하겠다는 내용이다. 대상자는 지난 9월 말 기준 700명이다. 이전 입사자들(993명)은 전환채용 대상이다. 국민건강보험고객센터지부는 “사실상 구조조정”이라며 소속기관 설립과 전원 전환채용을 내걸고 이달 1일부터 무기한 파업에 돌입했다.

전문가 위원들은 당시 협의회가 상담사의 “고용안정과 처우 및 근로조건 개선”을 위해 적극 노력할 것을 공단에 권고했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이병훈 교수는 “당시 공단 정규직 노조의 부정적 입장으로 논의 과정이 지난했다”며 “논란을 넘어서기 위해 고용안정과 처우개선이란 일반적 표현이 들어갔지만 그 문구가 합의안에 포함됐다는 건 현재 일하는 사람의 전문성과 경력을 인정하라는 뜻”이라고 지적했다.

사회적 합의 이행이 늦어지는 이유에 대해 전문가 위원들은 공단 이사장의 임기 만료와 정권 교체 등을 꼽았다. 박석운 대표는 “공단 정규직이 아닌데 왜 또 시험을 봐야 하나. 결과적으로 합의를 못 지키겠다는 거 아닌가”라며 “동네 구멍가게도 아니고 공공기관이 사회적 합의를 무시해선 안 된다”고 비판했다.

전문가 위원들은 의견서에서 “채용비리 등 특별한 결격사유가 없는 한 상담사들이 채용승계되는 등 고용안정 조치가 취해져야 마땅하다”며 “내년 3월 현재의 위탁사들과의 위탁계약이 만료되는 상황을 고려할 때 신속한 노사협의회가 실효성 있게 진행돼야 할 필요성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비정규직이라고 부당한 일 당해야 하나”

공단 고객센터 상담사들은 이미 ‘전문 상담사’라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17년 차인 송수진 고객센터지부 서울지회 조합원은 “용역업체가 수시로 시험을 보고 일정 점수를 못 넘기면 나가라고 눈치를 줬다”며 “2019년 입사자면 벌써 4년 차다. 공단의 방치 아래 수시로 바뀌는 건강보험 정책을 스스로 습득해 지금까지 왔다. 경력이 곧 전문성”이라고 목소리 높였다.

2022년 1월 입사한 배선화 지부 서울지회 조합원은 “2천쪽이 넘는 업무책자를 달달 외웠고 매달 용역업체가 본 시험에서도 1등을 했다”며 “내가 왜 또 시험을 봐야 하나. 비정규직이라고 부당한 일을 당해도 되는 건가”라고 따져 물었다.

공공성을 위해 공단 고객센터를 민간이 아닌 공단이 운영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배 조합원은 “용역업체는 콜수를 많이 받기 위해 3분 안에 끊으라고 한다. 실시간 상담사들의 콜수를 체크하고 목표보다 떨어지면 불려 갔다”며 “공공기관 고객센터를 민간이 운영해선 대국민 서비스가 불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