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혜진(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

이 글을 쓰고 있는데, 단식 35일째인 건강보험공단 고객센터 지부장이 결국 쓰러졌다는 소식이 들린다. 부디 지부장의 건강이 많이 상하지 않았기를 바랄 뿐이다. 35일 동안 곡기를 끊은 채 싸우는 사람의 마음이 어떤 것인지 감히 짐작하기 어렵다. 그렇지만 그 마음의 절실함을 조금은 알 수 있다. 헤드셋을 놓고 파업하는 것 외에는 자신의 주장을 관철할 힘이 없는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목소리가 건강보험공단에 더 잘 들리게 하고자 농성을 하고 곡기를 끊었다. 이 노동자들의 요구는 ‘단 한 명도 포기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건강보험공단은 노동자들에게 700명을 버리라고 한다. 2021년 건강보험공단은 ‘소속기관’을 만들어서 상담사들을 전환하기로 합의한 바 있다. 그런데 2년 동안 시간을 끌다가 2019년 2월28일 이후에 입사한 노동자들은 경쟁채용에 응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 대상은 무려 700명으로 전체 건강보험공단 고객센터 노동자들의 40%에 달한다. 함께 일하고 함께 싸웠던 노동자들을 갈라서 60%만 소속기관으로 전환하고, 나머지는 정리하고 경쟁채용 시험에 응하라는 건강보험공단의 주장을 노조가 어떻게 수용할 수 있겠는가.

기업과 정부는 노동자를 경쟁과 위계로 지배한다. 그 회사에 필수적인 업무를 하는데도 노동자들을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나누어서 비정규직의 권리를 빼앗는다. 건강보험공단도 마찬가지였다. 고객센터 노동자들은 정규직들처럼 공적 기관인 건강보험공단의 업무를 수행했다. 건강보험 자격관리, 보험료 부과, 4대 보험 징수, 보험급여, 의료급여, 건강검진, 제 증명서 발급, 금연상담 등 1천여개가 넘는 상담업무를 진행했다. 그런데도 공단은 이 노동자들을 직접 고용하지 않고 용역업체를 통해 일을 시켜왔다. 건강보험의 업무를 하면서도 단지 고용형태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임금과 노동조건을 떨어뜨린 것이다.

그런데 공공기관의 위계와 경쟁은 공공성을 침해한다. 그동안 고객센터는 콜수에 따라 인센티브를 부여했다. 그러다 보니 대충대충 빨리빨리 상담하는 노동자들은 능력있는 상담사가 되고 가입자 하나하나 충분한 상담을 제공하는 노동자들은 능력이 없는 상담사로 취급받았다. 매우 어렵게 공부하고 많은 양의 상담을 해야 하는데도 임금과 노동조건이 낮다 보니 퇴사하는 노동자들이 많아서 안정적인 상담도 어려웠다. 고객센터에 가장 빠르게 변화된 정보가 제공돼야 하지만 용역이라는 이유로 정보가 늦게 전달되기도 했다. 이런 현실은 충분히 상담받을 가입자들의 권리를 침해했다. 경쟁과 위계는 공공성과 공존하기 어렵다는 것을 건강보험공단 고객센터가 보여줬다.

고객센터 노동자들은 이런 현실을 바꾸기 위해서 투쟁했다. 그 결과 2021년 ‘소속기관 전환 합의’가 이루어졌다. 그런데 이제 와서 ‘입사연도’를 기준으로 또다시 노동자들을 가르겠다고 한다. 현재 상담사로 일하는 노동자들의 ‘능력’을 검증하겠다는 것은 아닐 테니 ‘소속기관’에서 일할 ‘자격’이 있는지를 검증하겠다는 것일 테다. 그런데 안정적인 일자리는 자격이 있는 노동자에게 부여되는 특권이 아니라 노동자의 보편적인 권리이다. 그동안 불안정하고 나쁜 일자리에서도 최선을 다해 자신의 역할을 해냈고, 자신의 투쟁으로 소속기관을 쟁취한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무슨 자격을 검증하겠다는 것인가. 오로지 노동자들을 갈라놓겠다는 건강보험공단의 오기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이에 반해서 노동자들은 ‘단 한 명도 포기할 수 없다’고 말한다. 경쟁과 위계, 갈라치기는 공공성을 훼손하며 건강보험 가입자 권리도 침해한다. 반면 입사연도로 노동자들을 갈라놓는 것에 동의하지 않고 동료를 지키겠다고 결심하며 파업을 하고 곡기를 끊는 노동자들의 의지는 공공성을 지키고 노동자들의 삶도 지킨다. 노동자들을 갈라놓는 데에만 익숙하고 그렇게 노동자들을 통제하려는 이들은 ‘함께 살자’고 하는 이 노동자들의 마음을 결코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건강보험공단이 공공성을 가져야 한다고 믿는 우리는, 그리고 노동자들이 함께 싸워 모두의 권리를 보장할 수 있다고 믿는 우리는 이 단식과 파업을 가슴 깊이 이해하고 지지할 수밖에 없다.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work21@jin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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