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서초구 서이초등학교에서 숨진 교사의 49재인 지난 4일 전국에서 모인 교사들이 국회 앞에서 추모 집회를 열고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교사의 교육활동을 반복적으로 부당하게 간섭하는 학부모의 행위는 허용되지 않는다는 대법원 첫 판결이 나왔다. 서울 서이초 교사를 비롯해 교사들의 극단적 선택이 이어지는 가운데 나온 사법부 판단이다. 무분별한 학부모 민원에 제동을 걸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번 판결로 교권보호 관련 입법에 속도가 붙을지도 관심사다. 교육계는 교육당국에 민원 표준안을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교사 재량에 따른 판단, 침해 안 돼”

대법원 2부(주심 이동원 대법관)는 14일 학부모 A씨가 교육당국을 상대로 낸 교권보호위원회 조치처분취소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승소로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광주고법 전주재판부로 돌려보냈다.

교권보호에 관한 새로운 법리가 제시됐다. 대법원은 “적법한 자격을 갖춘 교사가 전문적이고 광범위한 재량이 존재하는 영역인 학생에 대한 교육 과정에서 한 판단과 교육활동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존중돼야 한다”며 “국가·지방자치단체나 학생 또는 보호자 등이 이를 침해하거나 부당하게 간섭해서는 안 된다”고 판시했다.

학부모의 ‘의견제시’에 대한 기준도 밝혔다. 대법원은 “보호자는 보호하는 자녀 또는 아동의 교육에 관해 의견을 제시할 수 있다”면서도 “의견 제시도 교원의 전문성과 교권을 존중하는 방식으로 이뤄져야 하며, 교원의 정당한 교육활동에 대해 반복적으로 부당하게 간섭하는 행위는 허용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지속·반복적인 학부모의 민원은 ‘반복적 부당한 간섭’이라는 것이다.

‘레드카드’ 이름 붙이자 부모 담임교체 요구

이러한 법리는 이번 사건에도 적용됐다. 초등교사 B씨는 2021년 4월 학급 2학년생이 수업 중 물병으로 장난을 치자 칠판 ‘레드카드’ 옆에 학생 이름표를 붙이고 방과 후 10여분간 청소하게 했다. 이를 알게 된 부모 A씨는 즉시 교감과 면담하면서 “A씨가 학생에게 쓰레기를 줍게 한 것이 아동학대”라며 A씨와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담임 교체를 요구했다.

사건 직후 A씨 자녀는 사흘간 결석했다. B씨는 결석 이튿날 ‘완전기억상실’ 증세로 병원에 입원했고, 병가를 내 치료받았다. 하지만 부모의 민원은 계속됐다. 재차 교감과의 면담을 통해 담임교체를 요구했다. A씨는 또다시 13일간 자녀를 학교에 보내지 않았다. 그러면서 B씨 수업에 대한 모니터링도 학교측에 요구했다. B씨가 재차 불안과 우울증으로 병가를 냈는데도 담임교체를 또다시 요구했다.

결국 B씨는 ‘교육활동 침해사안 신고서’를 제출했다. A씨는 B씨를 아동복지법 위반(아동학대)으로 경찰에 고소하며 맞받아쳤다. 학교는 교권보호위원회를 열어 A씨 행동을 교권침해로 판단했다. 이에 불복해 A씨가 낸 소송에서 1심은 “정당한 교육활동을 반복해서 부당하게 간섭하는 행위”라며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반면에 2심은 “레드카드 벌점제는 교사가 훈육에 따르지 않는 아동의 이름을 공개해 창피를 줌으로써 따돌림 가능성을 열어 주고, 강제로 청소노동까지 부과한 것”이라며 1심을 뒤집었다. 아동의 인간적 존엄성에 대한 침해행위가 분명해 정당한 교육활동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는 취지다.

“담임교체 요구는 ‘비상상황’ 한정” 노동계 ‘환영’

그러나 대법원 판단은 달랐다. B씨 행동이 정당하다고 봤다. 대법원은 “A씨의 간섭대상 행위는 ‘레드카드 제도’가 아니라 ‘담임교사로서의 직무수행 전체’다”며 “B씨는 정당한 인사발령에 따라 담임교사로서 직무를 수행하고 있어 A씨가 간섭한 직무수행은 정당한 교육활동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특히 반복적인 ‘담임교체’ 요구는 교사의 온전한 직무수행을 기대할 수 없는 ‘비상 상황’에 한해 보충적으로 허용된다고 강조했다. 대법원은 “학기 중 담임에서 배제되는 것은 교사의 명예를 크게 실추시키고 학생들에게 담임교사 변경으로 인한 혼란이 발생할 수 있다”며 “설령 해당 교사의 교육방법에 문제가 있더라도 교육방법의 변경 등으로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면 먼저 그 방안을 시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설명했다. 나아가 ‘수업모니터링 요구’는 담임교사의 자율성을 심각하게 침해한다고 지적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학부모의 지속적인 담임교체 요구가 반복적인 부당한 간섭에 해당하는 사안이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교원단체는 판결을 환영했다. 교사노조연맹은 입장문을 통해 “레드카드는 ‘경고하는 지도행위’에 해당하므로 아동학대가 아닌 교육활동”이라며 “대법원 판시에 따라 학부모 민원에 의해 학교현장에서 발생하는 담임교체 문제를 바로 잡아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형민 전교조 대변인은 “교사의 교육 방법과 의도의 차이를 무리하게 법적 처벌에 의존하거나 담임교체와 같은 과도한 방식으로 해결하는 과정에서 많은 교사들이 어려움을 겪었다”며 “이번 판결이 교육활동 재량권을 더 넓게 인정해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한국교총은 “교원의 정당한 생활지도는 반드시 법으로 보호받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교육당국을 대리한 최우식 변호사(법무법인 랜드마크)는 “자격을 갖춘 교사의 재량이 ‘광범위’하게 인정되고 의견제시도 교권 존중 내에서 허용된다고 판단한 부분이 가장 의미가 크다”며 “학부모들의 형사고소로 인해 교사들이 적지 않게 고통을 받고 있다. 앞으로 교육현장에서 무분별한 민원이 줄어들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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