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정부가 사용자 개념과 쟁의행위 범위를 확대하고 파업 면책범위를 일부 조정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개정안을 “법치주의 근간을 흔드는 입법”이라며 강도 높게 비난했다. 대통령 거부권 행사를 위한 포석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법치주의 근간 흔든다?
“사용자 개념, 대법원 판례 그대로 옮겨”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20일 오전 서울정부청사에서 기자브리핑을 열어 “정부는 노사관계 법제도 전반과 현장에 큰 혼란을 가져오는 노조법 개정안을 국회가 재고할 것 강력히 촉구한다”고 밝혔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이날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비상경제장관회의에서 “노조법 개정안은 헌법과 민법 원칙을 위배하고 노사갈등을 확산시킬 우려가 크기 때문에 근본적인 재논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21일 열리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지난 15일 환노위 고용노동법안소위를 통과한 노조법 개정안을 야당 주도로 처리할 것으로 보이자 정부가 전방위적으로 막아서는 모양새다. 대통령실에서는 법안이 국회 문턱을 넘기도 전에 ‘고위관계자’ 이름으로 “노조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해도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방침”이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정부는 개정안이 “법치주의 근간을 흔드는 입법”이라는 입장이다. 이정식 장관은 “개정안은 ‘실질적·구체적 지배·결정’이라는 추상적 표현으로 근로계약 관계가 없는 원청사업주에게 노조법상 모든 의무를 부여하고 있다”며 “원청은 자신의 교섭 상대방 범위를 예측할 수 없어 법적 안정성이 저해된다”고 주장했다. 사용자가 단체교섭에 나오지 않으면 형사처벌을 받게 돼 죄형법정주의 원칙에도 위반된다고 강조했다.

정부의 이런 주장은 재계의 입장과도 일치한다. 경제 6단체는 이날 공동성명을 내고 “개정안은 사용자와 노동자 개념을 무분별하게 확대해 근로계약 당사자가 아닌 기업까지 쟁의대상으로 끌어들여 기업경쟁력과 국가경쟁력을 심각하게 저하시킬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 장관이 법치주의 근간을 흔든다고 비판한 ‘실질적·구체적 지배·결정’이라는 개정안 문구는 2010년 현대중공업 원청을 하청노동자의 사용자로 판결한 대법원의 판례를 그대로 옮긴 것이다. 원·하청, 플랫폼노동처럼 다면적·중층적 노사관계가 보편화했지만 근로계약 체결 당사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간접고용 노동자의 노동조건을 사실상 결정하면서 사용자 책임은 지지 않았던 원청을 단체교섭 당사자로 확대하는 의미가 있다. 이 장관이 지적한 ‘사용자 판단 기준 부재’는 법을 개정하면서 구체적으로 만들어갈 부분으로, 법 개정 반대 이유가 될 수는 없다.

대우조선 사내하청 교훈 모른 척
글로벌 스탠더드 아니다?

이정식 장관은 “개정안이 기존 대기업·정규직 노조 파업 확대와 불법행위 손배 예외로 더욱 보호받아 다수 미조직 노동자에 비용이 전가돼 격차가 커질 것”이라며 “그 영향은 고스란히 기업 손실과 투자 위축으로 나타날 것”이라고 말했다. 재계의 주장과 토씨까지 비슷하다.

지난해 6~7월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들이 임금인상 등을 요구하며 파업하면서 하청노동자 노동조건에 실질적 권한을 쥔 원청의 책임 논란이 불거졌다. 하청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을 개선하고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개선하려면 하청노동자들의 노조할 권리를 보장해야 하고, 궁극적으로는 원청의 사용자성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사회적으로 설득력을 얻었다. 노동부의 주장은 이런 배경을 애써 외면한 결과다.

이 장관은 “글로벌 스탠더드는 무엇인지, 약자를 어떻게 효과적으로 보호할 것인지 고민을 담아 노동관계법 전반의 제도개선을 추진하겠다”고 덧붙였다. 노조법 개정안이 ‘글로벌 스탠더드’가 아니라는 취지다.

과연 그럴까. 플랫폼노동희망찾기에 따르면 유럽연합의회에서 이달 초 의결한 ‘플랫폼노동 관련 입법지침’은 디지털·플랫폼을 통해 노무를 제공하는 모든 이들을 ‘노동자’로 추정하고, 이의를 제기하는 사용자에 입증책임을 부여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미국 정부도 지난해 11월 발표한 ‘독립계약자 분류에 대한 새로운 규칙’에서 노동자 개념을 확대해 프리랜서나 자영업자로 오분류하지 않도록 했다.

‘노조법 2·3조 개정 운동본부’도 당초 2조1호를 이런 내용으로 개정해 근로자 개념의 확대를 요구했지만 환노위 고용노동법안소위에서는 아예 다뤄지지 않았다. 화물연대가 “특수고용 노동자 보호를 강화하는 내용이 빠진 개정안”이라며 “유감스럽다”고 밝힌 이유다. 노동계는 오히려 “유럽이나 미국 등 국제사회는 노동자와 사용자 개념을 확대하는데 오히려 한국만 역주행 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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