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고용노동법안소위가 열린 15일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국회 앞에서 노조법2·3조 개정안 통과를 촉구하는 결의대회를 하고 있다. <정기훈 기자>

사용자 범위를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사용자로 확대하고 권리분쟁까지 쟁의행위 범위를 넓힌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첫발을 뗐다. 권리분쟁은 이미 확정한 권리에 대한 해석·적용·준수 등을 둘러싼 분쟁이다. 이번 개정안은 2010년 대법원이 원청인 현대중공업을 하청노동자의 사용자로 인정한 지 13년 만에 나왔다.

15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고용노동법안소위원회를 통과한 노조법 개정안은 사용자 정의를 확대해 간접고용 노동자의 단체교섭권과 단체행동권을 보장하고 쟁의행위 탄압 목적의 손해배상과 가압류를 금지하는 것이 핵심이다.

2010년 대법원 판결 문구 그대로 담은 2조 사용자 정의

개정안은 노조법 2조2호의 사용자 정의에 “근로계약 체결의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근로자의 근로조건에 대해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자도 사용자로 본다”는 문구가 신설됐다. 근로계약 관계에 있지 않아도 ‘실질적 지배력설’에 따라 원청의 사용자성을 인정한 2010년 대법원의 현대중공업 사건 판결문이 그대로 원용됐다.

98년 외환위기 이후 기업의 기능적 분업과 계약관계의 다변화로 다양한 형태의 간접고용이 활용되고 있는데 현재는 직접 근로계약 당사자만 사용자로 인정해 다면적·중층적 노사관계에 법적 ‘공백’ 상태에 있다. 이번 개정안은 그 공백을 메우는 첫 시도로 대우조선 하청노동자나 특수고용직인 택배노동자가 원청 사용자를 상대로 단체교섭을 요구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의미가 있다. 법원은 “근로계약 당사자인 사용자에만 단체교섭 의무를 부담할 경우 헌법이 보장하는 노동 3권이 온전히 보호받지 못하게 된다”며 판례를 통해 노조법상 사용자 범위를 넓게 인정해 왔다. 국가인권위원회도 지난해 12월28일 “원·하청 관계에서 하청노동자의 실질적 사용자가 누구인지 법적 분쟁이 노동사건 상당수를 차지하고 장기화하며 심각한 대립을 유발하는 등 사회적 비용이 발생하고 있다”며 노조법상 사용자 정의규정 확대를 국회의장에게 권고했다.

이은주 정의당 의원은 “그동안 사각지대에 방치됐던 간접고용 노동자들이 노동 3권을 누릴 수 있는 중대한 진전이 될 것”이라며 “(간접고용 노동자도) 이 법을 통해 노사 교섭과 법에 따른 정상적인 쟁의행위가 가능해져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의 길이 열린다”고 강조했다.

96년 날치기법으로 사라진 권리분쟁 쟁의권 ‘부활’
귀책사유·기여도 따라 개별 손배 범위 결정

개정안은 2조5호 노동쟁의 정의도 포함했다. 현행 노조법은 노사 간 ‘근로조건 결정’에 관한 주장의 불일치로 규정해 이익분쟁(임금인상, 단협 개정 등 근로조건 기준에 관한 권리)에 관한 부분만 쟁의행위 범위로 한정하고 있다. 개정안은 ‘근로조건 결정’에서 ‘결정’이라는 문구를 삭제했다. 96년 ‘노조법 날치기 통과’ 이후 사라졌던 권리분쟁이 쟁의행위 대상에 포함된 것이다. 이에 따라 단협 불이행, 부당노동행위 구제, 해고자 복직 등을 요구하는 ‘합법파업’이 가능해질 전망이다.

노조법 3조는 사용자가 노조 단체교섭이나 쟁의행위로 인해 손해를 입어도 배상을 노동자나 노조에 청구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그 범위가 지나치게 제한적이라는 비판을 받는다. 실제로 지난해 1월 서울쇼트공업은 점심시간에 노동가요를 틀었다는 이유로 노조를 상대로 8천240만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한국타이어는 같은해 8월 사고 발생 위험이 있는 설비 가동을 중단한 노동자 3명에게 9천만원의 손배소를 냈다. 노조활동을 옥죄는 수단으로 손배소가 남용되고 있다. 손배 청구 대상도 노동자 개인뿐 아니라 그 가족과 신원보증인에게까지 남발해 비판이 높다. 신원보증인은 주로 가족이다. 노동자 권리를 주장했다는 이유로 가족의 급여와 부동산까지 가압류를 가하면서 가정 파탄과 생존 위기로 내모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특히 법원은 불법파업을 이유로 민사상 공동불법행위로 인한 부진정연대책임을 인정하고 있다. 정길채 더불어민주당 정책위 노동 수석전문위원은 “사용자들은 이를 악용해 노조 탈퇴나 권리 포기시 소를 취하하는 방식으로 단체행동권 제약하는 수단으로 활용했다”고 설명했다. 개정안은 손배책임을 제한하는 취지로 배상의무자별로 책임 비율을 정하도록 한 규정을 신설하고 신원보증인에게 노조활동으로 인한 손배책임을 묻지 못하도록 했다.

노조법 2·3조 개정운동본부 공동집행위원장을 맡고 있는 이용우 변호사(민변 노동위원회)는 “현행 규정에 비춰 보면 일부 진전된 부분이 있지만 개정안이 손배·가압류 남용 상황을 실질적으로 저지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며 “손배 폭탄을 막으려면 최소한 개별 조합원이나 단순 파업에 대한 손배 책임 제한을 못 박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