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2·3조 개정안, 일명 ‘노란봉투법’이 지난 21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를 통과했다. 노란봉투법은 2009년 정리해고에 반발한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 파업에 참여한 노동자들에게 2014년 47억원의 손해배상 판결이 내려지자 이듬해 시민들이 4만7천원씩 자발적인 모금운동을 한 데서 유래했다. 19·20대 국회에서 발의됐으나 모두 폐기됐고, 21대 국회에서 9년 만에야 빛을 볼 수 있게 됐다.

이번 국회에서도 순조롭지만은 않다. 정부·여당과 재계의 반대 속에서 더불어민주당 주도 야당이 단독처리를 했고, 본회의 통과까지는 상임위 직회부라는 우회로를 통하지 않으면 쉽지 않은 상황이다. 대통령 거부권 행사 카드까지 도사리고 있다.

이 과정에서 잘 알려지지 않은 수많은 조력자들이 있다. 그중 한 명이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고민정(44·사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다. 고 의원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이 아닌데도 지난해 11월 노조법 2·3조 개정 운동본부가 제안한 내용을 받아 노조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노동·시민단체의 요구가 집대성됐다는 상징성이 있다.

<매일노동뉴스>가 지난 23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고민정 의원을 만났다. 고 의원은 KBS 아나운서 출신으로 문재인 정부 청와대 대변인을 역임했다. 21대 총선에서 서울 광진구을에 출마해 당선했다. 현재 민주당 최고위원이다.

“400억원? 500억원? 죽으라는 거구나”

- 우여곡절 끝에 노조법 개정안이 환노위를 통과했다. 소회가 남다르시겠다.
“민주당다운 법안이 처리됐다. 2015년 처음 발의돼 여러 해가 지났다. 노조법만큼은 민주당이 주도권을 가지고 통과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다. 운동본부와 같이 발의를 준비한 이유다.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그래도 한 발 뗐다는 큰 의미가 있다.

그 법안을 준비하면서 쌍용차·현대중공업·대우조선해양 등 노동자들과 여러 차례 간담회를 했다. 숨이 턱턱 막히더라. 400억원, 500억원, 이런 숫자를 듣는 순간 죽으라는 거구나 생각했다. 저조차 숨이 턱턱 막히는데 당사자들은 오죽할까. 내가 저분들 숨구멍 하나라도 만들어 드려야겠다, 사람을 살려야겠다는 생각이 강했다.”

- 이번에 통과한 노조법 개정안은 사용자 범위를 확대하고 쟁의행위 범위를 권리분쟁까지 넓혔으며, 배상의무자별 책임비율을 정하고 신원보증인에게 책임을 묻지 못하게 손배책임을 제한하는 내용을 담았다. 어떻게 평가하나.
“2조에서는 사용자 범위를 확대하고, 3조에서는 손배책임을 좀 더 구체화했다. 저는 2조에 좀 더 힘을 기울였다. 파업을 합법이 되도록 만들어야 했다. 헌법에서는 노동 3권을 보장하는데 노조법에서는 파업을 인정하지 않는 게 많다. 2조 개정으로 사용자 범위를 넓혀 합법파업 범위도 넓히려 했다. 기존에는 근로조건 결정과 관련해 이익분쟁만 파업이 가능했다. 임금인상이나 복지 같은 사유에만 쟁의행위를 인정했다. 이번 개정안에 따라 정리해고, 해고자 복직, 노동자 삶에 영향을 미치는 영역도 합법 쟁의행위에 해당한다. 3조는 개개인에게 책임을 명확히 하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뭉뚱그려졌다. 예컨대 15명에게 640억원, 이런 식으로 손배를 물어 서로에게 부담을 지우고 노조가 파괴될 수밖에 없었다. 사측은 네가 노조에서 빠지면 손배책임에서 면제해 줄게 하는 식으로 활용했다. 남은 일부 몇몇에게만 모든 게 가중되고, 결국 노조가 파괴된다.”

- 하지만 의원이 발의한 개정안에는 못 미치는 내용이다. 노동자 개념 확대와 노동자 개인에게 손배 청구를 하지 못하게 하는 내용이 반영되지 못했다.
“그렇다. 저는 노동자 범위도 바꿔야 한다고 여겼다. 학습지교사·골프장 캐디 등 특수고용직은 노동자로 정의되지 않아 그분들 쟁의행위는 불법이 된다. 산업이 변화하면서 새로운 고용형태의 노동자가 탄생하고 있어 노동자 정의도 새롭게 할 필요가 있다. 지난 몇 년간 노동자로 인정받은 사례가 있어 이번에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했지만 들어가지 못해 아쉽다. 또한 처음에 합법 쟁의행위로 시작했지만 도저히 교섭이 안 되고 회사가 꼼짝도 안 해 점거 등을 했을 때는 손배 청구를 한다. 개정안에서 합법 영역을 손배에서 제외했는데 이것도 빠졌다. 아쉬움이 많다.”

“위헌? 사법·입법부 무시한 위험한 주장”

- 환노위 소속이 아닌데도 노동·시민단체 요구를 받아안은 노조법 개정안을 발의했다는 점에서 눈길을 모았다. KBS 새노조에서 활동한 것으로 안다. 계기가 궁금하다.
“대학 시절 노래패를 하면서 사회적 거부감이 심한 노동자에 관해 고민을 많이 했다. 나도 곧 노동자가 되고, 부모님도 노동자니까. KBS에 들어가서도 임금과 복지도 중요하지만 불합리함이 없고 억울한 사람이 없게 하는 것이 노조라고 생각했다. 언론자유가 침해당하고 짓밟힐 때 같이 힘을 모으는 게 맞다고 생각해서 선배들과 열심히 함께했다. 그런 과정을 거치다 보니 노동자, 노조에 친숙해졌다.

또 하나는, 저는 초등생 아이가 둘이다. 첫째이자 마지막 이유는 우리 아이들이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자는 것이다. 두 아이가 불편함 없이 차별 없이 살아야 한다고 늘 생각한다. 아이들 99% 이상은 어떤 분야의 노동자가 될 텐데 이들이 권력과 돈에 짓밟히지 않게 하려면 제도와 법밖에 없다. 이런 고민을 하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져야 좋은 세상을 물려줄 수 있을 것이란 생각에 운동본부와 손을 잡았다. 운동본부는 어떤 마음으로 저에게 왔을까.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 파업 당시 워낙 토론회와 간담회가 많았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제가 민주당 지도부에 있고, 환노위는 아니지만 뭔가 법안을 책임감 있게 통과시킬 것으로 여겼는지…. 왜 저였을까. 감사할 뿐이다.”

이번에 노란봉투법이 불붙게 된 계기는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 파업이다. 대우조선은 470억원 손배소에 하청노동자 67명을 업무방해로 집단고소했다. 현실이 이런데도 재계와 정부·여당은 개정안이 위헌 소지가 있고, 불법파업을 조장하며, 법치주의를 흔들며, 기업·국가경쟁력을 저해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개정안은 현대중공업과 CJ대한통운 판결 흐름과 맥을 같이하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도 노조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의견을 표명했다.

- 재계와 정부·여당은 위헌이라고 주장한다.
“얼마 전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법치주의 근간을 흔든다’고 말했다. 역사에 길이 남을 발언이 될 것이다. 평생을 노동운동 관련된 곳에 있었던 분으로서 아무리 본인을 선택해 준 대통령이라고 해도 본인 소신을 뒤집는 발언이다. 굉장히 괴로워할 거라고 생각한다.

이 법을 위헌이라고 하는데, 무책임하고 위험한 발언이다. 2010년 현대중공업 대법원 판결에서 그대로 따왔는데 이게 위헌이면 당시 판결도 위헌인가. 이를 논의해 입법한 입법부까지 위헌이라고 하는 것이다. 사법부도 입법부도 판단이 틀리다는 행정부 발언이 법치주의 근간을 뒤흔드는 것이다.”

“끝까지 믿고 기다려 준 운동본부에 감사”
다수의석을 가진 민주당은 그동안 노란봉투법에 대해 적극적이지 않다는 지적을 받아 왔다. 노조법 2·3조 개정 운동본부와 정의당은 국회 안팎에서 농성을 하며 민주당을 압박했다. 국민의힘은 “개정안 강행처리 이유는 이재명 대표 방탄을 위한 것”이라고도 주장한다.

- 민주당 지도부는 어떤 고민 속에서 단독처리를 결정하게 됐나.
“이재명 대표 방탄용이 맞으려면 검찰에 소환되고 구속영장이 나오고 이런 한 달 정도의 경우를 대비해야 하는데 그보다 훨씬 이전부터 이재명 대표와는 어느 정도 이야기를 마쳤다. 노조법 통과 방향으로 가자는 큰 틀은 이미 잡혔다. 다만 위헌요소가 있다는 일부 주장이 있어 어떻게 하면 위헌요소를 제거할까에 논의의 초점이 있었다. 밖에다 대고 무조건 된다, 안 된다고 할 수 없었다. 매일매일 협상과 논의의 나날이었다. 저는 일이 되게 하는 게 중요하다고 봤다. 민주당 안에도 위헌요소가 있다거나 재계가 주장하는 대로 반대하는 사람이 있다. 민주당에는 진보만이 아니라 중도·보수 등 성향이 다양하다. 민주당 안에서 설득하고 이해를 구하는 데 시간이 필요했다. 당대표와 원내대표, 정책위의장, 환노위원장과 간사 등 만나서 많이 이야기를 나눴다.

운동본부도 내부 사정을 모르니까 답답했을 것이다. 되는 거냐, 민주당은 뭘 하는 거냐고 했다. 한다, 다만 이런 논의과정이 있다, 이렇게 공개적으로 말할 수는 없었다. 내부 물밑논의가 정말 많았다. 그 과정에서 참고 이해하고 도와준 운동본부에 감사하다. 쉽지 않았을 것이다. 운동본부가 민주당에 끌려가는 거 아니냐고 비판도 들었을 텐데 끝까지 믿어 줘서 감사하다.”

- 환노위 소속이 아니라서 입법과정에서 답답함이 있었을 것 같다.
“아쉬움이 있다. 디테일에서 찬반이나 어떤 의견들이 있었는지. 하지만 우리 당 이수진(비례) 의원이 큰 역할을 하고, 이은주 정의당 의원도 든든하고, 저보다 더 전투력이 세니까. 저는 민주당 지도부 차원에서 놓아 버리지 않게 만드는 게 중요했다. 그게 합이 잘 맞았다.”

환노위 의결을 거친 노조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려면 앞으로 갈 길이 멀다. 법제사법위원회로 넘어간 뒤 60일간 논의가 없으면 본회의로 직회부 돼 넘어가고, 30일간 여야 합의가 안 되면 본회의 부의 여부를 표결하게 된다. 6월 본회의에서야 통과 가능성이 전망된다. 그 뒤엔 대통령실 고위관계자발로 나오는 대통령 거부권 행사라는 암초가 기다리고 있다.

▲ 정기훈 기자
▲ 정기훈 기자

“사람 목숨 중요하다면 노동정책 다시 그려야”

- 대통령 거부권 얘기가 벌써부터 거론된다.
“국민의힘 의원들 간 유행어가 있다고 한다. ‘대통령에게 거부권을 건의하겠다.’ 이건 입법기관으로서 의무를 저버린 것이다. 정부·여당이 궤를 같이할 수밖에 없겠지만 그래도 견제라는 게 있다. 그래서 삼권분립 아닌가. 만천하에 대놓고 거부권 행사를 건의하겠다니, 대통령에게 스스로 독재자가 되라고 여당에서 부추기는 것이다.

노조법도, 양곡관리법도, 방송법도 모든 걸 거부권 행사를 요청한다고 한다. 그러려면 국회의원 하지 말아야지. 만에 하나 거부권을 행사하면 사법과 입법을 완전히 짓뭉개 버린, 삼권분립을 완전히 무너뜨린 불명예스러운 역사로 기록될 것이다. 그런 걸 생각하길 바란다.”

- 윤석열 정부는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을 내세우며 노동개혁을 주장하지만 정작 그 대상은 화물연대·건설노조 같은 비정규·특고 노동자가 되고 있다. 연일 ‘노조 때리기’를 하며 대대적으로 압박하고 있다.
“윤 정부 노동개혁은 적폐규정이다. 좌표를 찍는 행위다. 최근 노조에 회계장부를 내라, 아니면 국고보조금을 끊는다고 압박한다. 회계장부를 보여줄 의무가 없다고 대법원에서도 판단하고 있다. 그런데도 그게 불법이라고 한다면, 윤 정부의 법전은 무엇인가. (대통령이) 불법을 방치하면 그게 국가냐고 했는데 역으로 묻고 싶다. 산업안전 규정을 지키지 않는 불법, 불법파견을 하는 불법, 이런 기업의 불법은 왜 방치하나? 심지어 사람이 죽어 나가는데, 사람 생명이 중요하지 않나? 이태원 참사에 사과하지 않은 정부를 보면, 사람 생명이 중요하지 않나? 비정규직과 정규직이 똑같은 일 하는데 임금차이가 그렇게 많으면 안 된다고 하는데, 그래서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을 노조가 강하게 주장하는 것 아닌가. 문제제기는 하는데 대책은 없다. 대책 없는 대통령이다. 말은 내뱉고 그에 대한 대책은 없고. 윤 대통령 신뢰는 바닥으로 떨어진다. 대한민국 위상도 떨어진다. 우리 전체가 힘들어진다. 그 위상을 떨어뜨리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지금이라도 윤 대통령은 사람 목숨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면 노동 분야를 다시 들여야 봐라. 다시 ‘1’부터 그려야 한다.”

-문재인 정부 노동존중 사회 정책이 뒤집히고 있다.
“너무 아쉽다. 정권을 잃어버린 게 이 정도 후폭풍이 있을지 경험하지 못했다. 이 정도로 절박하고 두려울 수 있는 사회가 될 거라고 상상도 못했다. 경험하지 못한 세상을 하루하루 살고 있다. 윤 대통령에게 정말 부탁하고 싶은데, 문재인 정부에서 벗어났으면 한다. 문 정부가 잘못이나 틀린 게 있으면 보완하면 된다. 새 정책을 개발하면 된다. 하지만 이전 정부 모든 걸 지우면 대한민국 5년을 모두 지우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박근혜 정부 탄핵 이후 들어섰지만 모든 것을 지우지 않았다. 밖에서 외교 성과를 내면 노무현·이명박·박근혜 정부가 만들어 문재인 정부가 성과를 낸 것이라고 문 전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말한 것을 들은 적이 있다. 그것이 대한민국이다.”

- 노조법은 후속입법이 필요하지 않겠나.
“맞다. 노조법 개정안이 아직 환노위 단계에 있고, 본회의까지 통과해야 끝난다. 노조법 2·3조는 또다시 개정이 필요하고, 무엇보다 헌법 개정이 필요하다. 지금 시대에 너무 맞지 않는 법에 사람을 끼워 맞추려는 비정상적인 상황이다. 그러자면 더더욱 다음에 재선이 돼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하하)”

- 앞으로 정치 계획은.
“앞서 말씀드린 대로 노조법에 못다 담은 내용을 담아 새롭게 개정하려고 한다. 또 하나는, 저출생과 청년 문제에 포커스를 맞춰 의정활동을 하려고 한다. 문재인 정부에서도 많이 느끼고 주장했지만, 돈 준다고 아이를 낳지는 않는다. 결국은 청년이슈이고, 우리 아이들 미래다. 그래서 노동이슈가 눈에 밟힌다. 청년이 노동의 하위단위에 다 연결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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