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말 외환위기가 발발한 지 벌써 25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외환위기는 대한민국 역사에서 경제적 측면의 가장 큰 환란이었다. 고도성장 성공 신화에 취해 세계화를 향해 달리던 재벌 대기업들의 무리한 차입경영과 확장투자가 국가부도 사태까지 몰고 왔다. 갑자기 들이닥친 달러 기근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온 국민들이 고금리·긴축재정·대량해고·구조조정을 감당해야 했다.그 이후 25년은 한 세대에 걸친 시간이다. 그 시절을 온몸으로 겪었던 중년 노동자는 이제 황혼을 맞았고, 그때 태어났던 아이는 성인이 됐다. 그리고 당시 중·고교에 다
우리 사회 돌봄노동에 대한 전반적인 인식이 그러하듯, 요양보호사 업무도 누구나 할 수 있고 전문성이 필요 없는 일로 간주하면서 낮은 임금과 나쁜 노동조건을 당연시하는 분위기가 있다. 그렇다 보니 요양보호사를 구하기 어렵고, 젊은 노동자들은 이 일자리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런데 ‘요양보호사는 전문적인 직업인가’라는 질문에 많은 요양보호사들은 ‘그래야 한다’고 답한다.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가 도입된 지 15년, 요양보호사들은 일에 대한 만족도에서 가장 높은 것을 ‘성취감’으로 꼽았다. 애로사항으로 건강상의 문제와 부당한 대우도 있지만,
생활가전 렌털업을 운영하는 사용자가 생산직군을 별도의 교섭단위로 분리해 줄 것을 노동위원회에 신청한 사건이 있었다. 산별노조가 지난 3년간 그 회사의 설치기사를 시작으로 방문점검원, 영업관리직까지 조직을 확대해 3개의 지부로 편제했다. 각 직군들은 3개 지부 공동투쟁을 통해 모든 지부가 직군별 단체협약을 체결한 상황이었다. 산별노조는 그 후 생산직까지 조직을 확대해 생산직에도 산별노조의 지회가 설립됐음을 알리는 기자회견을 하기에 이른다. 그런데 기자회견을 하는 시기 즈음 설립된 기업별노조가 생산직 직원을 집중적으로 조직하면서 산별노
‘단결’이 노동운동·노동조합·노동자계급의 궁극적 지향이어야 한다는 사실을 부정할 사람은 없다. 노동정치 역시 마찬가지다. 진보정당 문제와 관련해 “일단 단결해야 하지 않겠습니까!”라는 외침이 호소력을 갖는 이유도 여기 있다. 한데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묻지 마 단결론’은 “단결이 중요하다”라는 외침과 동어반복에 그칠 공산이 크다. “단결이 중요하니까 단결해야 한다”라는 정언명령 이상의 메시지를 전달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노동운동이 왜 분열하는지, 단결에 실패하는지를 설명하지 못한다. 단순히 “의지 부족”과 “패배주의”라는 주
1. 15일 대법원은 개별 조합원에 대한 손해배상 책임을 엄격히 판단해야 한다는 판결을 선고했다. 현대차 5건과 쌍용차 1건 등 모두 6건의 판결을 대법원 1부와 3부에서 잇따라 선고한 것인데, 이러한 대법원 판결이 나오자 집권 국민의힘과 전경련 등 사용자들의 단체는 비판을 쏟아냈다. 특히 현재 국회에서 입법 추진 중인 노란봉투법과 맞물려 이번 대법원 판결이 그 입법의 정당성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노동단체를 중심으로 신속한 입법을 촉구했다. 그러자 고용노동부는 15일과 18일 두 차례나 보도참고자료를 내 “해당 판결은 노동조합 및 노
현대자동차와 쌍용자동차가 파업 참가 근로자들을 상대로 제기한 수백억원의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근로자들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는 대법원 판결이 지난 15일 선고됐다. 회사가 파업기간 동안 지출한 고정비, 매출 손실 등에 대해 파업에 참여한 근로자들과 노조의 연대책임을 막연히 인정해 왔던 종래 판결에서, 민법상 법리에 따라 파업에 참여한 근로자들의 책임을 개별적으로 심리·판단하라는 취지로서 근로자들의 책임이 상당 부분 면책 또는 제한될 여지가 열린 것이다. 전경련, 한국경총 등 사용자단체는 일제히 ‘산업현장의 불법행위를 조장하는 판결’
미군정과 행정관료기구남한에서 미점령권력은 1945년 9월9일 조선총독이 태평양방면 미육군총사령관 맥아더(Douglas MacArthur)의 대리인인 남조선 주둔 미군사령관 하지(John Reed Hodge) 중장에게 항복한 그 시각부터 시작된 것으로 볼 수 있는데, 맥아더는 이날 ‘조선 인민에게 고함’이란 포고 제1호, 제2호, 제3호를 발표했고 맥아더의 포고 제1호는 38도 이남의 모든 통치권과 행정권이 맥아더사령부의 군정하에서 시행된다는 것을 밝혔다. 따라서 인민공화국이 불법단체가 되는 것은 물론 중경에 있는 대한민국임시정부조차
지난달 21일 전·현직 총리가 맞붙은 그리스 총선에서 우파 성향 미초타키스 총리가 이끄는 집권당이 압승을 거뒀다. 조선일보는 5월23일 ‘그리스, 포퓰리즘에 두 번 속지 않았다’는 제목의 1면 머리기사와 3면을 모두 털어 ‘좌파가 거덜 낸 그리스… 12년간 구제금융 빚 갚으며 고통의 세월’이란 제목으로 대서특필했다.포퓰리즘은 좌파의 전유물이 아니다. 좌우 가릴 것 없이 포퓰리즘은 그 나라 국민들을 괴롭힌다. 필리핀 두테르테 전 대통령이나 인도 모디 총리가 대표적인 우파 포퓰리스트인데도 조선일보는 그들을 포퓰리스트로 부르진 않는다.
신혼여행지에서 시차 때문에 잠자리에서 뒤척이다 켠 휴대전화에서 김준영 금속노련 사무처장 관련 기사를 봤다. 고공농성 중 경찰들에게 곤봉으로 제압당해 피투성이가 된 그의 모습을 보고 폭압적인 공권력에 분노하는 것도 잠시, 곧 의문이 들었다. 도대체 김 처장이 왜?김 처장은 대단히 합리적인 노조간부다. 노조가 인원수만을 앞세워 완력으로 사측을 압박하는 것만으로는 노사문제가 해결될 수 없기에, 노사 간 최소한의 합의점을 찾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사람이다. 지역에서 그는 후배 노조간부들이 결기를 앞세울 때도 항상 사측도 만족시킬 대안을
‘아빠노동자’에 대한 논문 ‘남성 육아휴직 의무제를 통한 아빠노동자 탄생에 관한 사례연구’를 읽었다. 어느 기업은 남성들에게 배우자 출산 초기에 한 달간의 유급휴직을 줬다. 통상임금의 100%를 지급하고 임원 성과평가에 휴직 실천 여부를 반영했다. 이를 통해 회사 내에서 ‘당연히’ 사용하는 복지 제도로 자리매김했다. 남성들의 변화를 이끌어내 여성 직원들이 육아휴직 후 퇴사하는 문제를 해결하고, 여성들이 일할 수 있는 기업문화를 조성하기 위해서였다.그 결과 남성들은 육아의 어려움을 몸소 깨닫고 공동양육자로서의 자신을 생각하게 됐다.
“짐이 곧 국가다.”프랑스의 태양왕 루이 14세가 이렇게 말한 것이 17세기라고들 한다. 오늘날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사회에서도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정치인이나 세력이 있을까? 불행히도, 오늘날 역시 말로는 몰라도 실천으로 저 말을 신조로 삼고 있는 정치세력은 숱해 보인다. 그리고 한국 사회가 지난 2~3주 동안 새삼 확인한 것 역시 바로 공공의 안녕을 집권세력 자신의 안녕으로 이해하는, 그런 통치자의 존재였다.5월24일, 그동안 ‘용와대’ 앞 집회는 일단 경찰에게 금지하고 보도록 했던 윤석열 정부가 더욱 노골적으로 팔을 걷어붙이고
평화롭던 6월 어느 평일 아침, 서울에는 사이렌 소리가 울려 퍼졌다. 시간은 오전 6시41분. 누군가는 이미 출근했거나 슬슬 출근 준비를 해야 할 시간이었고, 누군가는 아직 잠들어 있을 시간이었다. 화들짝 놀라서 깨어나 우선 한 일은 가족과 친한 지인들에게 연락하는 것이었다. 가족과 지인들의 공통된 반응은 “출근은 어떡하지”였다. 절체절명의 순간에도 직장을 먼저 떠올리는 한국인들. 이것이 바로 K-직장인인가 싶은 순간이었다.많은 노동자들이 이런 상황에서 ‘출근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히는 이유는 가지각색일 것이다. 그 이유가 무엇
1. 자유의 세상이라고 요란했다. 틈만 나면 자유를 위한다고 외쳐댔다. 낮에는 사무실에서 PC를 켜면 포털뉴스에, 밤에는 집에서 TV를 틀면 9시 뉴스에 대통령이 자유를 부르짖었다고 보도해서 도대체 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무리 지겨워도 나는 윤석열 정부에서는 자유에 대한 권력의 노래를 듣지 않을 수 없다. 그렇게 되풀이 강조하는 자유란 무엇일까. 취임 이후 지난 1년여간 윤석열 대통령이 그토록 부르짖어 온 자유는 상식을 가진 시민이라면 알고 있는 그런 것일 거라고 누구나 생각할텐데 요즘 나는 자꾸 의문을 갖게 된다. 오늘 이 나
노동자들의 축제인 5월1일이 안타까움과 분노의 날로 변했다. 건설노조 소속 노동자가 경찰의 탄압과 단속에 항거하며 분신했고 끝내 우리 곁을 떠났다. 노동자가 생명을 내걸 정도로 윤석열 정부의 노조탄압은 도를 넘었고 노조 불법화는 노골적이다. 경찰을 앞세운 정부는 지난 1월부터 지금까지 건설노조만 19차례 압수수색했다. 천명이 넘는 조합원을 소환조사했으며 19명(석방자 3명 제외)을 구속시켰다. 그럼에도 건설노조에 대한 대대적인 단속은 진행형이다. 경찰의 단속이 끝나면 고용노동부나 국토교통부가 바통을 이어받는다. 정부의 이어달리기 단
사회적 뇌어떻게 인간 지능은 높아졌을까. 여성이 똘똘한 남자를 선택해서 그 유전자를 받아 지능이 점점 높아졌다는 것이 '성선택설'이다. 그렇다면 남자가 여자보다 지능이 높아야 할 것이다. 사실이 아니다. 도구를 이용하면서 인간 지능이 높아졌다는 것이 ‘도구지능설’이다. 그런데 똑똑해서 도구를 사용한 것인지, 도구를 사용해서 똑똑해진 것인지 불분명하다.인간은 모이고 연결돼 있어 지능이 발달했다는 것이 ‘사회적 뇌 가설’이다. 고립돼 자란 사람보다 여럿이 모여서 자란 사람이 더 많은 것을 배운다. 요즘엔 온라인 회의·교육 등 온라인 접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2013년 4월4일 필자는 덕수궁 대한문 앞에 있었다. 서울 중구청 직원들과 경찰이 덕수궁 대한문 인도 한편에 설치된 쌍용자동차 희생자 분향소 천막에 난입했다. 분향소를 부순 자리에 모래를 쏟아부어 거대한 화단을 설치하던 광경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사람들의 왕래가 잦은 곳에 사람들이 모이지 못하도록 한 조치였다. 박근혜 정권이 들어선 지 두 달이 채 되지 않은 때다. 그 후 전국 곳곳에서 집회 장소로 이용되던 공공장소에 대형화분 혹은 화단이 설치되고 이들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집회를 통제하고 감시했다.지
세상살이는 힘든데 희망은 보이지 않는다. 전태일은 수기에서 이렇게 말했다. “인간을 물질화 하는 세대, 인간의 개성과 참 인간적 본능의 충족을 무시당하고 희망의 가지를 잘린 채 존재하기 위한 대가로 물질적 가치로 전락한 인간상을 증오한다.” 그 이후 50년 이상이 지났다. 인간들은 희망의 가지를 붙들고 살아가고 있는가? 헬조선에서 청년들은 3포, 5포, 7포, N포를 말했다. 3포가 연애·결혼·출산 포기라면 5포는 여기에 취업과 내 집 마련이 추가되고 7포에는 인간관계와 희망이 추가됐다. 요즘 세상 돌아가는 형편을 보면 이 말이 실
부산 부산진구엔 서울 여의도공원의 5배나 되는 부산시민공원이 있다. 시민공원은 번화가인 서면 바로 옆이라 부산시 한가운데다.이 땅은 슬픈 한국사를 담고 있다. 일제가 1930년에 여기에 서면경마장을 조성했다가 1937년 중일전쟁 때 부산항 배후 군사기지로 바꿨다. 일제 패망 뒤 미군이 캠프 하야리아 기지로 반세기 넘게 차지했다가 2006년 철수했다.미군기지 철수 얘기가 흘러나오던 90년대 중후반부터 부산시 권력자들은 이곳에 아파트를 짓고 싶어 안달했다. 그러나 미군기지 철수와 공여지 반환을 요구하는 시민들이 당시 미군기지 앞에서 1
왕정과 계급사회를 넘어 등장한 근대는 ‘누가 시민인가?’라는 매우 정치적인 질문에서 시작됐다. 구한말을 다룬 드라마 에서 노비 출신으로 조선을 떠나 미군 장교가 된 유진초이는 양반집 애기씨이자 독립운동을 하는 고애신에게 ‘귀하가 구하려 하는 조선에는 누가 사는거요? 백정은 살 수 있소? 노비는 살 수 있소?’라고 묻는다. 전근대적 질서에 대한 질문을 해방 이후 80년이 지난 2023년에도 하는 이들이 있다.‘공익(公益)’ 공공의 이익을 위해 ‘복무’한다지만 전혀 공익적이지 않은 제도 가운데 놓인 사회복무요원이 바로
5명 미만 사업장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은 연차휴가와 연장근로수당 등 근로기준법의 핵심 조항을 적용받지 못하고 있다. 최저임금과 주휴수당, 사회보험 가입 등 법으로 보장된 권리조차 제대로 누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사업주가 영세하고 지불능력이 취약하며, 정부의 근로감독이 제대로 미치기 어렵다는 이유를 많이 들고 있다. 개인들이 운영하는 농림어업과 비사업체, 비공식 부문에 5명 미만 사업장이 다수 분포하고 있다는 것도 법적용을 어렵게 하는 이유로 덧붙이곤 한다.비공식 부문 비중 높아 근로기준법 적용 어렵다?2022년 상반기 통계청의 지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