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다운 변호사(법무법인 지향)

현대자동차와 쌍용자동차가 파업 참가 근로자들을 상대로 제기한 수백억원의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근로자들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는 대법원 판결이 지난 15일 선고됐다. 회사가 파업기간 동안 지출한 고정비, 매출 손실 등에 대해 파업에 참여한 근로자들과 노조의 연대책임을 막연히 인정해 왔던 종래 판결에서, 민법상 법리에 따라 파업에 참여한 근로자들의 책임을 개별적으로 심리·판단하라는 취지로서 근로자들의 책임이 상당 부분 면책 또는 제한될 여지가 열린 것이다. 전경련, 한국경총 등 사용자단체는 일제히 ‘산업현장의 불법행위를 조장하는 판결’이라며 반기를 들었다. 고용노동부는 ‘현재 국회 계류 중인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법(노조법) 개정안의 근거가 될 수 없다’며 판결의 파급력을 덮는 데 급급했다.

노동계는 환영 입장을 밝혔지만 한쪽에서는 여전히 강력한 규탄과 비판의 목소리가 있었다. 현대차 비정규직으로 조직된 노조가 불법파견이라는 회사의 위법한 조치의 시정을 요구한 쟁의행위, 그리고 쌍용차의 경영실패로 촉발된 정리해고 저지에 나선 쟁의행위 모두가 ‘불법행위’라는 본질적 입장을 시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개별 근로자의 책임을 별론으로 하더라도, 노조가 위법한 쟁의행위에 원칙적 책임이 있다고 한 부분도 마찬가지다. 회사가 노조 활동에 타격을 입히거나 노조의 단결력을 악화시킬 목적으로 특정 조합원만 거액의 민사소송 및 가압류를 신청한 뒤, 노조 탈퇴나 활동중지 등을 요구하기 위한 수단으로 행사된 무분별한 소제기권이 권리남용에 해당한다는 주장도 대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미 우리나라 헌법과 노조는 근로자의 단결권을 기본권으로 규정하고 이에 대한 민·형사상 면책의 원칙을 선언했다. 마찬가지로 ‘파업할 권리’는 국제노동기구(ILO)에 의해 정립된 국제노동기준이자 국제인권규범에도 확고하게 자리 잡은 ‘기본적인 인권’이다. 국제사회는 1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노조의 파업과 집회, 시위를 불법으로 규정하던 억압적 태도에서 벗어나 20세기에 들어서면서부터 노조에 대한 적극적 보호 기조를 보편적으로 확립했다. 이는 단지 1919년 ILO 헌장과 이에 후속하는 결사의 자유 및 단결권 보장 협약에 의해서 확보된 권리일 뿐 아니라, 1948년 세계인권선언과 국제인권의 양대규약인 UN 사회권 규약과 자유권 규약에서도 승인하고 있는 인권이다. 즉, 노조나 근로자가 사용자를 상대로 파업과 쟁의행위에 나아갈 권리는 우리나라가 단지 ILO 협약의 형태로 채택한 국제노동기분의 내용이 될 뿐만 아니라, 국제인권법 내용으로 일반적으로 승인된 국제법규이거나 국제관습법에 해당한다.

특히 ILO는 노조나 근로자가 자신의 요구사항을 관철시키거나 고충을 표현하기 위해 ‘파업할 권리’가 가장 필수적으로 보장돼야 한다고 본다. 누구든지 평화적인 파업을 조직하거나 참여했다는 이유로 일체 어떠한 형태의 형사처벌이나 체포, 구금, 추방을 하는 것은 금지된다고 선언한다. ILO 결사의 자유 위원회는 2017년 대한민국 정부에 대한 제1865호 사건에 관한 보고서에서도, 근로자들이 평화로운 파업을 조직하거나 참여했다는 이유로 형사재판을 받거나 체포, 구속의 위험이나 가능성에 노출되는 것만으로도 결사의 자유에 대한 심각한 침해를 구성한다고 했다. 향후 무죄 판결이 선고되더라도 근로자가 수사와 재판절차를 겪는 것만으로 이미 결사의 자유 원칙에 위배된다고 봤다. 쟁의행위의 목적이 구조조정 과정, 해고, 차별 등 사용자와 교섭 가능한 사항 등에 국한되지 않으며, 근로자의 사회적·경제적 이익 증진을 위해 폭넓게 허용되는 점은 물론이다.

파업은 본질적으로 사용자에게 손실과 타격을 주기 위한 목적에서의 집단적인 노무제공 거부다. 근로자들은 파업 기간 상응하는 임금을 포기하면서 그 대가를 지불한다. 이를 넘어선 사용자의 손해를 근로자에게 배상하라고 하는 것은, 파업권을 기본권이 아니라 사법적 판단에서 예외적으로 정당화될 수 있는 행위라고 오인한 것이다. 지난주 스위스 제네바에서 진행된 111차 국제노동총회(International Labour Conference)와 그에 앞선 노조국제조직협의회(Council of Global Unions)에서 연달아 나온 한국 정부의 노동탄압에 대한 강도 높은 규탄은 노동기본권에 대한 이러한 후진적 사고와 결코 무관하지 않다. 파업할 권리는 국제적으로 확고하게 정립된 기본권으로 더 이상 정치적인 논쟁거리조차 되지 않는다. 우리나라는 ‘파업은 불법’이라는 전근대 봉건적 사고에서 벗어날 때, 비로소 기본적인 인권과 자유민주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근대 국가로서의 자격을 갖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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