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정호 전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직실장

지난달 21일 전·현직 총리가 맞붙은 그리스 총선에서 우파 성향 미초타키스 총리가 이끄는 집권당이 압승을 거뒀다. 조선일보는 5월23일 ‘그리스, 포퓰리즘에 두 번 속지 않았다’는 제목의 1면 머리기사와 3면을 모두 털어 ‘좌파가 거덜 낸 그리스… 12년간 구제금융 빚 갚으며 고통의 세월’이란 제목으로 대서특필했다.

포퓰리즘은 좌파의 전유물이 아니다. 좌우 가릴 것 없이 포퓰리즘은 그 나라 국민들을 괴롭힌다. 필리핀 두테르테 전 대통령이나 인도 모디 총리가 대표적인 우파 포퓰리스트인데도 조선일보는 그들을 포퓰리스트로 부르진 않는다. 그리스 정치가 한국에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대단하다고 이래 과하게 반응하는지 모르겠다. 가까운 미래에 그리스에 좌파 정부라도 들어서면 한국만 곤란해질 뿐이다.

동아일보 같은 보수신문도 이날 18면(국제면)에 ‘그리스 전·현직 총리, 총선 대결 … 현직 승리’라는 2단 제목으로 담담하게 보도하는데 그쳤다. 조선일보 보도는 과유불급이다.

정부와 집권 여당이 야간 문화제를 문제 삼자 보수언론이 부화뇌동한다. 동아일보는 5월23일 사회면에 <“0~6시 옥외집회 더는 안돼” 법개정 추진>이란 제목의 머리기사를 실은데 이어 같은 면에 <불법집회 난무하는데… 경찰 기동대 인력 5년새 61% 줄어>라는 제목의 별도기사도 썼다.

같은 날 동아일보는 30면에 <‘쾌적한 환경’ 권리 뺏는 10년째 확성기 욕설 시위>라는 제목의 데스크칼럼까지 실었다. 이런 류의 기사와 칼럼은 헌법에 명시된 집회의 자유를 무시하는 것은 물론이고 반세기 가까이 금지했던 야간집회를 위헌이라고 한 2009년 헌법재판소 결정조차 무시한다. 아무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는 집회는 없다. 동아일보는 이런 단순 사실조차 잊었다.

반면에 한겨레는 같은 날 5면에 <지금도 경찰 면책 폭넓은데… 집회 과잉대응 면죄부 주나>는 제목으로 헌법에 명시된 집회의 자유를 위축할 우려가 있다고 보도했다. 한 사안을 바라보는 시각이 이렇게나 다르다.

한쪽에선 외국인 가사도우미를 도입해 저출산을 해결하고 여성 경제참가율을 높이자고 하지만 정작 전문가인 조혁진 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외국인 가사도우미 도입한 나라들, 출생률 증가 효과 없었다”(경향신문 5월26일 8면)고 분석했다.

일본 원전 오염수 방류를 둘러싼 보도도 신문마다 천양지차다. 오염수 방류 보도에서 압권은 횟집을 운영하는 함운경 씨의 입을 빌린 조선일보 5월26일자 10면 보도였다. 조선일보는 <“오염수 괴담대로면, 내달 한일 횟집 다 문 닫아야”>라는 제목으로 보도했다. 작은 제목엔 ‘美문화원 점거 주도했던 함운경씨’라고 달았다. 조선일보는 좌파 운동권조차 이렇게 말한다고 강조하고 싶겠지만 조금만 눈 밝은 독자라면 함씨가 일찍이 윤석열 정부에 줄 선 사람임을 안다.

대통령 선거 넉 달전인 2021년 12월 22일 윤석열 후보는 전북 군산에 내려가 함씨가 운영하는 횟집에 찾아가 면담하고 저녁을 함께 먹으며 우애를 다졌다. 민주당 의원들이 ‘그렇게 좋으면 오염수 너희가 마셔라’라고 조롱하는 것도 역겹지만, 윤 대통령을 후보 시절부터 극찬하며 지지한 함씨를 586 운동권 대부인 양 앞세운 보도도 우습다. 언론이 아전인수에 급급하는 사이 진실은 사라지고 만다.

전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직실장 (leejh6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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