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명교 플랫폼C 활동가

‘단결’이 노동운동·노동조합·노동자계급의 궁극적 지향이어야 한다는 사실을 부정할 사람은 없다. 노동정치 역시 마찬가지다. 진보정당 문제와 관련해 “일단 단결해야 하지 않겠습니까!”라는 외침이 호소력을 갖는 이유도 여기 있다. 한데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묻지 마 단결론’은 “단결이 중요하다”라는 외침과 동어반복에 그칠 공산이 크다. “단결이 중요하니까 단결해야 한다”라는 정언명령 이상의 메시지를 전달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노동운동이 왜 분열하는지, 단결에 실패하는지를 설명하지 못한다. 단순히 “의지 부족”과 “패배주의”라는 주관적 평가에 머무를 뿐이다.

레포르마시(Reformasi, 개혁) 이후 인도네시아 노동운동에 전반적 평가 기준 역시 이런 틀에 갇혔다. 공산주의자 대학살(1965년)이라는 절멸의 시간 이후 수하르토 독재 30여 년 내내 노동운동은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야 했다. 어용노총 외 노조 설립이 불가능했고, 노총은 생산력 향상 지원부대 역할에 머물렀다. 한데 1997년 9월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을 받고, 이듬해 수하트로 정권이 몰락하자 노동운동에도 봄이 찾아왔다. 인도네시아 정부가 ‘결사의 자유’를 보장하는 국제노동기구(ILO) 협약을 비준하고, 직원 과반수 찬성 없이도 노조 설립이 가능하도록 법을 개정하면서 노조 설립이 용이해진 것이다. 심각한 절대빈곤과 높은 실업률, 노동정책의 변화로 인해 우후죽순으로 노조 붐이 일었다. 문제는 조직력이다. 2020년 기준 인도네시아 인력부에 등록된 노총은 16개, 산하의 업종별 연맹은 106개, 독립노조연맹은 55개에 달한다. 이에 반해 2005년부터 2016년까지 조합원수는 오히려 24% 감소했다.

이런 사실 때문에 레포르마시 이후 인도네시아 노동운동은 민주화의 역설과 분열이 야기할 나쁜 사례로 지목됐다. 법 조항에서 노동자들은 노조 결성권을 얻었지만, 동시에 노동시장 유연화로 그 효과의 상쇄를 경험해야 했다. 법이 정한 외주화의 범위는 청소·경비와 외식업 등에 그치지만 근로감독이 매우 느슨해 고용이 크게 불안정해졌다. 노동자의 삶이 악화되고, 노조의 효능감이 줄어들었다. 모두 세계은행이 제안한 신자유주의적 노동시장 개혁의 결과다. 특히 최근에는 플랫폼 기업들의 난립으로 불안정성이 높아졌고, 설상가상 정부가 노동개악을 밀어붙이면서 암울한 전망이 대두되고 있다.

분열 극복을 위한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1998년 여름 반둥에서는 전국 곳곳에 흩어져 있는 31개 노동운동단체 활동가 120여명이 집결해 진보적 전국연대노조 건설에 대해 논의한 바 있다. 이것이 실패한 후로부터 19년 후인 2017년 말에도 각지에 흩어져 활동하던 활동가들이 모여 파편화된 노동운동을 재통합하기 위한 논의가 있었다. 하지만 일련의 시도들은 이렇다 할 성과를 얻지 못했다. 이 대목까지 살펴보면 모든 논거는 “단결만이 살 길이다”로 모아지는 듯하다.

전제성 전북대 교수(정치외교학)를 비롯한 여러 연구자들에 따르면 기실 인도네시아 노동운동의 분열에는 역사적 맥락이 있다. 우선 그것은 하향식 조직노선과 상향식 조직노선의 강력한 견해차에서 기인한다. 전자는 신자유주의 정권에 정면으로 도전하면서 전국 조직을 일거에 위로부터 결성하고, 지방으로 침투하는 것을 자신의 조직화 노선으로 삼아왔다. 빡빠한(Muchtar Pakpahan) 등 유명 활동가들은 과감한 투쟁을 통해 서구 운동사회로부터 명성을 획득하고, 이를 근거로 펀딩을 받아 활동했다. 1998년 진보적 연대노조 건설을 주장한 이들 역시 이런 맥락에 있다. 이들은 “지역에 기반한 조직들을 일터에 기반한 조직들로 전환하고, 노동자 대표성을 강화”하기 위한 통합을 주장했는데, 주지하다시피 이 회의는 “지방에서 기반을 더 닦자”는 결론으로 허무하게 끝났다.

그러나 어느 사회에서든 진실은 단순명쾌한 논리로 설명될 수 없다. 이 회의의 주최측 실무자였던 노동운동가 헤마사리(Hemasari)는 노조 통합 결의가 무산된 이유를 조직 이기주의 탓으로 돌린다. 이에 반해 수라바야지역노조 활동가 등 시기상조론을 제기한 활동가들은 주최측이 회의 준비과정에서 다른 의견을 무시하고 자기 의도 관철에 골몰했던 것, 전국연대노조의 본부를 자카르타가 아닌 반둥에 설치하자고 느닷없이 제안했던 것 등 패권주의를 지적한다. 제안자들의 기업가적인 수완이 운동세력 간의 불신을 심화시켜 연대 자체를 저해했다는 것이다.

인도네시아 노동운동은 대체로 풀뿌리 조직화에 근거한 상향식 조직노선을 지향해 왔다. 지역별 노동자 교육과 조직화를 통해 전국적 성격을 확보하는 과정에서 경험 많은 활동가들을 양성해온 이 흐름은 이미 그 효용성을 검증했다. 특히 노동운동 탄압이 엄혹했던 수하르토 독재 시기에 이처럼 분산적인 풀뿌리 조직화 운동은 사회운동적 노조주의를 지향하며 생존했다. 자유화 조치 이후에도 그것은 유용했는데, 외국계 자본이 홍수처럼 쏟아져오는 상황에서 정경유착으로 얼룩진 정치권력에 맞서려면 교섭의 사회적 성격을 강화해 나가면서 지역사회에 들어온 자본을 정치적으로 압박해야 했기 때문이다.

물론 단결을 강화하기 위한 부단한 노력과 더불어, 전국적 네트워킹은 언제나 필요하다. 그것이 부족하면 중앙에서 이뤄지는 정치적 공간을 진공상태로 만들 공산이 크고, 어느새 관료주의자들이나 신자유주의적 포용성을 지지하는 엘리트들이 노동정치 의제를 장악할 위험이 크다. 인도네시아 노동운동은 풀뿌리 조직화를 통한 강화만이 아니라, 보다 통합적인 사회운동 네트워크를 형성함으로써 명실상부한 내셔널센터를 건설해야 할 과제를 안고 있다.

노동운동에게 노동자들의 정치적 단결은 반드시 실현해야 하지만 멀리 있는 꿈이다. 이 꿈을 이루려면 다각도의 지난한 과정이 필요하다. 우선 노조 간 협력과 연대를 통해 노노 갈등을 감축해야 하고, 정파 노조의 양산을 멈춰야 한다. 조합원 교육과 원활한 소통을 통해 노조 지도부와 조합원 사이의 간극을 극복해야 한다. 풀뿌리 조직화는 이를 위한 기본 토대다. 조직화가 없으면 정치세력화든 통합정당이든 모두 헛물켜기에 불과할 것이다. ‘묻지 마 단결론’이 위험한 이유는 진짜 단결을 위한 길을 망각하게 하고, 더 많은 갈등을 낳는다는 점에 있다.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플랫폼C 활동가 (myungkyo.hon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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