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동철 한국노총 부천노동상담소 상담실장

신혼여행지에서 시차 때문에 잠자리에서 뒤척이다 켠 휴대전화에서 김준영 금속노련 사무처장 관련 기사를 봤다. 고공농성 중 경찰들에게 곤봉으로 제압당해 피투성이가 된 그의 모습을 보고 폭압적인 공권력에 분노하는 것도 잠시, 곧 의문이 들었다. 도대체 김 처장이 왜?

김 처장은 대단히 합리적인 노조간부다. 노조가 인원수만을 앞세워 완력으로 사측을 압박하는 것만으로는 노사문제가 해결될 수 없기에, 노사 간 최소한의 합의점을 찾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사람이다. 지역에서 그는 후배 노조간부들이 결기를 앞세울 때도 항상 사측도 만족시킬 대안을 찾을 것을 주문한다.

몇 해 전 김포의 OB맥주 물류센터에서 일하는 하청노동자들이 노조를 결성하고 부천·김포지역의 일반노조에 가입한 일이 있었다. OB맥주는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생산·유통의 핵심 업무인 물류업무를 외주화하고 용역업체에 위탁해 왔다. 물류창고 사무실과 지게차 등 자재와 작업 도구까지 OB맥주가 제공하기에 불법파견 요소가 다분했다.

1년 단위로 수십 년간 일하고도 최저임금 수준인 하청노동자들이 결국 노조를 결성했고, 노조를 결성하자 바뀐 용역업체는 노조 핵심 간부들을 고용승계 하지 않았다. 1년이 넘는 기간 OB맥주 김포 물류센터에서 천막농성에 돌입한 노조는 상급단체인 금속노련을 찾아 지원을 요청했다.

원청인 OB맥주는 법적으로 사용자가 아니라며 교섭을 거부했다. 용역업체의 대체인력을 통해 파업 중인 조합원 업무를 수행했다. 모양새가 이번 포스코 하청 노조의 투쟁에 사용자 책임을 회피하는 포스코를 똑 닮았다. 상급단체인 금속노련과 한국노총이 개입하고 언론에 OB맥주 물류 하청노동자들의 문제가 이슈화되자 OB맥주는 그때야 교섭에 나섰다.

그러나 노조간부들에 대한 고용승계는 결국 이뤄지지 않았다. 법의 테두리 안에서 할 수 있는 없던 그들은 그때야 높은 곳으로 올라 스스로를 고립시켜 투쟁하는 고공 농성자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OB맥주 광고탑에 올라 사용자 책임을 회피하는 OB맥주의 부당함을 알리자는 의견도 있었으나 김준영 처장은 단호하게 이를 거부했다. 한 사람에게 가해지는 투쟁의 부담이 너무 크기 때문에 부족하더라도 모두가 책임을 질 수 있는 투쟁을 하자고 했다. 그렇게 고용승계는 이뤄지지 못했지만, 그에 따른 보상을 받는 현실적 대안으로 투쟁은 마무리됐다.

그랬던 그가 높이 7미터의 망루에 홀로 올라 포스코의 무책임한 하청 인력운용에 항의하며 용역업체의 성실한 교섭을 촉구한 이유는 미안함 때문이었을 것이다. 소속 지역노조가 400여일 넘게 인간다운 근로조건을 요구하며 투쟁했으나 가시적 성과물이 나오지 않은 상황을 그는 부끄러워했다.

2020년 6월 성암산업은 폐업하고 포스코에 작업권을 반납했다. 그리고 소속 노동자들을 집단 해고했다. 앞서 포스코는 하청 성암산업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작업을 쪼개 다른 협력업체에 맡기고 싶어했다. 노조를 통해 하청노동자의 권리를 지키고 있었는데 분할 매각을 할 경우 노조와 조합원은 흩어지게 돼 근로조건 저하가 불 보듯 뻔했다.

박옥경 위원장을 비롯한 성암 노동자들은 그해 여름 상경해 국회 앞에서 노숙하며 투쟁했다.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의 중재로 합의가 이뤄졌다. 성암산업의 작업권을 사들인 5개의 협력업체로 노동자들이 잠시 흩어져 있다가 2021년 8월 현재의 포운이 통합해 고용승계 하기로 했다.

그러나 포운은 회사 통합 뒤 결성된 광양지역기계금속운수산업노조와의 교섭에 성실히 임하지 않았다. 2021년부터 포운의 교섭해태로 노사갈등이 다시 불거졌다. 광주지방노동위원회가 조정을 중지한 후 2022년 4월부터 포운 노동자들은 광양제철 앞에서 천막농성에 돌입했다. 70여 차례의 교섭에도 사측은 노조의 임금 정상화 요구를 무시했다.

김준영 처장에 대한 공권력의 폭력적 진압에 항의하며 광양에서 개최된 규탄대회에서 이 투쟁의 당사자인 박옥경 위원장은 지난 400여일의 투쟁에서 느낀 외로움을 토로했다. 그들이 요구했던 임금 13% 인상 요구를 두고 사측에서는 “박옥경 위원장이 강성”이라며 “타협점이 없다”고 음해했다고 한다.

그러나 박 위원장은 포스코 하청노동자가 요구한 임금인상 13%는 올해만이 아닌 지난 2020년부터 3년간의 인상분에 물가인상률을 더한 것으로, 동종업계가 22% 인상된 점을 고려할 때 결코 무리한 요구가 아닌 최소한의 요구였다고 주장했다.

법과 제도의 미비점을 파고들어 노동자를 무시하는 기업의 탐욕 앞에 노동자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정부의 편향적 노동정책 덕분에 사태는 노정 간 본격적 대결로 접어들었다. 지역의 작은 하청노동자들의 문제가 전국적 노사갈등으로 확대했다. 김준영 처장은 구속된 뒤 자신에게 쏟아지는 관심이 포운노동자들의 투쟁으로 모일 수 있기를 당부했다. 그의 바람대로 포운노동자들의 투쟁이 외롭지 않도록 힘을 모아야 할 과제가 우리에게 놓여 있다.

 

한국노총 부천노동상담소 상담실장 (leeseyh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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