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종진 노무사 (서비스연맹 법률원)

생활가전 렌털업을 운영하는 사용자가 생산직군을 별도의 교섭단위로 분리해 줄 것을 노동위원회에 신청한 사건이 있었다. 산별노조가 지난 3년간 그 회사의 설치기사를 시작으로 방문점검원, 영업관리직까지 조직을 확대해 3개의 지부로 편제했다. 각 직군들은 3개 지부 공동투쟁을 통해 모든 지부가 직군별 단체협약을 체결한 상황이었다. 산별노조는 그 후 생산직까지 조직을 확대해 생산직에도 산별노조의 지회가 설립됐음을 알리는 기자회견을 하기에 이른다. 그런데 기자회견을 하는 시기 즈음 설립된 기업별노조가 생산직 직원을 집중적으로 조직하면서 산별노조와 기업별노조 두 조직 간에는 생산직군 직원을 대상으로 본격적인 조합원 모집 경쟁이 시작됐다. 산별노조가 생산직지회 설립을 알리는 기자회견을 한 지 8일째 되는 날, 회사는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 생산직군만 별도 교섭단위로 분리를 신청했다.

교섭단위분리 결정제도는 하나의 사업 또는 사업장에는 하나의 교섭단위가 원칙이라고 설정한 교섭창구 단일화제도에서 예외를 인정하는 제도이다. 교섭단위분리 결정할 때는 현격한 근로조건의 차이, 고용형태의 차이, 교섭관행 등을 고려해 교섭단위 분리의 필요성이 인정돼야 한다. 해당 사업장은 기존 직군이 월급제이지만 생산직군은 시급제여서 근로조건에서 다소간 차이가 있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지만, 생산직군도 기존 직군과 마찬가지로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서 정규직이고 주 40시간제도가 적용되는 등 그 외 사항들은 주목할 만한 큰 차이를 볼 수 없다. 이에 산별노조에서는 교섭단위 분리는 근로조건의 통일적 형성이라는 단체교섭의 본질을 해하고, 특히 하나의 산별노조가 회사 내 조직대상을 확대하는 과정에서 전체 직종을 아우르는 대표성을 획득해 가는 국면에서 하나의 교섭단위를 통한 교섭이 사용자와 대등한 교섭력을 보장하는 체계라고 주장했다. 더군다나 회사는 노동위의 방문점검원 교섭단위분리 결정에 불복해 소송까지 벌이는 상황이었다. 그런데도 생산직군에는 추가적인 교섭비용을 무릅쓰고 교섭창구를 분리하겠다는 입장이다. 사용자가 교섭단위분리 결정제도를 자신이 주도하는 교섭질서로 이용하고 있다는 주장도 덧붙였다.

서울지노위 초심과 중노위 재심은 사용자의 교섭단위분리 결정 신청을 인정했다. 구체적인 사안에서는 다소간 차이가 있지만, 일급제와 월급제로 임금체계가 달라 호봉표도 다른 생산직군과 판매직군에서 두 직군 간에 현격한 근로조건의 차이와 고용형태의 차이가 있다고 볼 수 없다며 교섭단위 분리를 할 수 없다고 한 법원의 판단을 인용해 이를 주장했으나 노동위원회에서 이러한 판단은 고려되지 않았다.

교섭단위분리 결정은 추가적인 별도 교섭을 제도화하는 것이므로 사용자의 교섭비용 증가를 수반한다. 그래서 사용자가 신청했으나 기각된 교섭단위분리 결정 사건을 찾아보기 어렵다. 이 사건도 그랬다. 교섭비용을 스스로가 떠안겠다는 사용자의 의지를 확인해서인지 노동위는 기존 직군과 생산직군에서의 모든 차이는 교섭단위를 분리하는 근거가 됐다. 심지어 서울지노위는 다른 직군들에서 직군별 실무교섭을 했던 사실마저 교섭단위 분리 필요성의 근거가 됐다.

교섭창구 단일화제도는 교섭단위를 사실상 기업별교섭으로 강제하는 문제점을 넘어서 사용자의 의도에 따라서는 교섭단위 분리를 통해 산별노조가 개별 기업과 행하는 대각선 교섭까지 무력화할 수 있게 한 결정에 다름 아니다. 교섭단위를 분리하면 분리할수록 산별노조는 분리된 단위에서도 일일이 과반수로 조직이 돼야 해당 교섭단위에서도 교섭권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특정 직군에서만 교섭대표노조이고 다른 직군에서는 교섭대표노조가 아닌 산별노조는 해당 산업은커녕 특정 기업에서도 교섭력을 발휘할 수 없게 된다. 물론 산별노조가 아니라 기업별노조인 경우에도 교섭단위분리는 교섭력을 약화시키는 것은 마찬가지다. 산별노조에서 그 폐해가 도드라지는 것은 산별교섭을 하지 못한 상황에서 개별기업과 교섭에서도 대표성이 박탈되기 때문이다.

교섭단위분리 결정 신청 자격에서 사용자를 배제하자는 견해도 존재한다. 해당 견해대로 사용자의 신청 권한을 배제하도록 법을 개정하면 되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교섭창구 단일화제도는 온통 위헌적 요소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현재 헌법재판소에는 교섭창구 단일화제도의 위헌성을 다루는 헌법소원 사건이 계류 중에 있다. 사용자가 신청한 교섭단위분리 결정사건의 결과를 보면서 다시금 교섭창구 단일화제도 철폐의 필요성을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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