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랗게 물든 가을 위로 사람이 조르륵 앉아 일한다. 옛 궁궐 추녀마루 끝자락에 붙은 어처구니를 닮았다. 귀신을 쫓기 위해 올린 것이라는데, 이제는 거기 CCTV가 그 비슷한 노릇을 한다. 잘 보이라고 닦고, 조이고, 기름칠하는 건 여전히 사람 몫이다. 어처구니없다는 말이 흔히 쓰인다. 너무 뜻밖이어서 기가 막히는 상황을 이른다. 국정감사 한창이었던 저
공공운수노조 대전지역일반지부 현대해상 콜센터 노동자들이 23일 서울 영등포구 현대해상 빌딩 앞에서 '진짜 사장이 책임져라, 총파업 투쟁으로 임단협 투쟁 승리하자! 현대해상 콜센터 상담사 차별 철폐를 위한 2차 파업 결의대회'를 하고 있다. 이들은 금융권 성과급 차별에 항의하고 휴게시간 30분 보장을 요구하고 있지만 사측은 동의하지 않고 있다. 앞서 현
안전고리도, 안전모도, 안전교육도 없이 일용직 하청노동자가 툭, 떨어졌다. 먼 길 떠났다. 이해할 수도, 손 놓고 있을 수도 없어 먼 길 나선 늙은 엄마 눈물이 툭, 아들 영정 위로 흐른다. 내 아들을 살려내요, 내 아들을. 아무것도 필요 없어요. 이 엄마의 가슴은 찢어지도록 아픕니다. 지금이라도 무릎 꿇고 비세요. 빌어야 합니다. 영정 끌어안고 엄
한 마을 사는 아이 친구 엄마가 자전거를 처음 배운다기에 여러 사람이 모였다. 50년 만의 첫 두 바퀴라니. 이게 될지 싶은 걱정도 있었지만, 응원의 목소리가 더 컸다. 어쩌다 성공이라도 한다면 마을잔치를 벌일 기세였다. 가족끼리는 운전 가르치는 거 아니라는 선지자 가르침 따라 옆집 아빠가 나섰다. 이론교육은 잠시, 실전 훈련이 혹독했다. 갸우뚱거리는
한낮 더위가 가실 줄을 몰라, 올 여름은 징글징글 길기도 하지. 별일도 없이 땀만 죽죽 흘린다. 집 밖은 위험하니 모니터 속 사진 몇 장과, 작아서 보이지도 않는 글자를 노려보며 보내는 시간이 늘었다. 거북목이 따라 늘어났다. 갑작스러운 굉음에 놀라 창을 열고 하늘을 보니 시퍼런 하늘이 부쩍 높다. 거기 비행기가 남기고 간 태극 문양 연기가 또렷했다. 땅만 보며 걷던 노인이, 스마트폰만 들여다보던 여중생 무리가, 아기만 내려다보던 엄마도 다 같이 하늘 보고 탄성을 지른다. 누구에게나 익숙한 그 문양이 새삼 달리 보이는 시절이다. 얼
집 옥상 화단에 장미 덩굴이 사방으로 뻗쳐 커가는데, 어찌 된 일인지 여름 다 가도록 빨간 꽃 피울 기미가 보이질 않아 이상하다고 여겼다. 사람 다니는 길로 무심코 자란 가지들을 쳐내느라 땡볕에 땀 흘렸다. 잔가지를 치우다 그만 가시에 찔렸다. 피 흘렸다. 서울고등법원 정원에 자란 장미 나무에는 그래도 꽃이 달렸다. 크기도 색깔도 영 시원찮기에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국가손배 파기환송심 선고를 받고 나온 쌍용차 노동자들 표정을 보면서도 그랬다. 낯빛이 어두웠다. 비 한 방울 끝내 야박했던 그해 여름, 하늘에선 비 대신 최루액이 쏟아지
무사고 사이에 사고가 끼었다. 한 글자 작은 차이에 사고가 있다. 빵 만드는 공장 반죽기에 끼어 노동자가 죽었다. 처음도 아니다. 밥벌이 나선 사람이 퇴근하지 못해 그날 저녁 밥상에 국이 싸늘하게 식는다. 갓 지은 고봉밥 오른 제사상을 받는다. 향냄새 짙다. 그 공장엔 무사고와 안전예방 구호 새긴 형광 조끼가 많고, 안전보건경영시스템 인증 팻말도 있고, 재해 예방을 위한 두툼한 지침서도 있을 테다. 대체 무엇이 없어 한 글자 작은 차이 사고를 불렀는지 보려고 찾아간 국회의원들을 막아선 배짱이 또한 두둑했다. 정문 앞 위생모자 쓴 사
땀에 전 티셔츠와 장마철 습기 머금고 꿉꿉했던 이불이 땡볕 아래 잘도 마른다. 바람 타고 바스락거린다. 힘든 시절의 작은 위안이다. 지글지글 뜨거워 원망스럽던 한낮의 볕이 이렇게 반가울 때도 있는 법이다. 먹고 돌아서면 설거지가 한가득이고, 입고 돌아보면 빨래통이 꽉 차 있다며 혀를 차던 늙은 엄마 얘기를 이제는 잘 알게 됐다. 집안일은 과연 끝이 없다. 숨이 턱턱 막혀 오는 이 더위엔 그래도 끝이 있을 테니 벌게진 얼굴로 헐떡거리며 버티게 된다. 살다 살다 이런 더위는 처음이라는 딸아이 얘기에 잠시 웃게 된다. 함께 길에 나섰다가
파업 나선 병원 노동자들 옆으로 공사가 한창이다. 병원은 크고 번듯해지는데, 거기 일하는 사람들 처지는 그렇지 못하다고 단결투쟁 머리띠 두른 저들이 말했다. 사람에게 투자하라고 외쳤다. 안전제일, 저 유명한 구호는 무언가 짓고 부수는 터 어디든 붙어 익숙하지만, 실상 야속한 말에 그친다. 안전을 지운 자리에 돈이 붙어 비로소 참말이 된다는 게 사람들 쓰린 뒷말이다. 철근을 아끼고, 비 오는 날 콘크리트 타설하던 건물에서 보글보글, 저녁 밥상이 하루 또 무사하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겠다는 권력자와 정치인의 잦은 약속 또한 저
된더위 속 길에 나서 길을 찾는 사람들은 저마다 살길을 찾는다. 모자와 쿨토시, 얼음물이 흔한데 휴대용 선풍기도 빼놓을 수 없다. 손풍기라고 불린다. 저 작은 것은 제 얼굴과 목을 겨우 달랠 만큼의 바람이 나오는데, 그 시원함이란 아스팔트 위에서 땀 흘려본 사람은 잘 안다. 여름철 집회 필수품으로 꼽힌다. 손에 쥐어야 한다는 불편함이 있어 목에 거는 형태의 것도 나오는데, 그 부담스러운 모양 탓에 대세를 이루지는 못한다. 구호 외치느라 올린 주먹들 속에서 종종 손풍기를 찾아볼 수 있다. 저기 쭉 뻗은 팔 끝에도 손풍기가 있다. 노조
택배노조 경기지부 소속 조합원들이 7일 서울 강남구 쿠팡CLS 본사 앞에서 쿠팡의 대리점 계약해지 계획 통보와 원청 갑질 등을 규탄하며 삭발하고 있다.
민주노총 서울지역본부와 너머서울 주최로 7일 저녁 서울 세종대로 파이낸스빌딩 앞에서 열린 노동·민생·민주·평화 파괴 윤석열 정권 퇴진 촛불 집회에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이 3일 오전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후쿠시마 핵 오염수 해양 투기 반대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비옷 입고 계단에 선 사람들이 조속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개정안 통과를 말했다. 내내 쏟아지던 비가 끝내 퍼부었다. 종이로 만든 구호 팻말은 젖어 구겨졌다. 형태 없이 찢어졌다. 비 소식에 사람들은 물에 젖지 않는 방수 신발을, 등산복 브랜드의 그럴듯한 우비를 챙기기도 했는데, 헛일이 됐다. 찔꺽찔꺽, 물이 빠지지도 않는 신발 속에서 발이 퉁퉁 불어갔다. 방수 우비 안쪽에선 땀이 샘물처럼 솟아 흘렀다. 보려고 쓴 안경은 눈가리개가 됐다.일하는 사람들에 우산이 되겠다고 나선 노조 사람들은 우산도 없이 속절없이 젖었다.
사람의 목소리는 종종 멀리 나아가질 못해 가슴에 녹슨 못으로 남는다. 쿡쿡 찔린 상처가 곪아 간다. 억울함과 분노를 품은 말들이 더욱 그렇다. 확성기가 필요한 이유다. 기자회견이, 1인 시위가, 집회와 파업 같은 단체행동이 모두 크게 말하기다. 그도 부족해 사람들은 굶고, 노숙하고, 바닥을 기는 행동으로 확성한다. 망루를 쌓아 높이 올라 농성하고서야 비로소 목소리가 높았다. 사람이 모였다. 단신 기사가 인터넷에 돌았다. 제 몸에 불을 놓고서야 유서로 남긴 말이 정치권 힘 있는 사람들 담벼락을 넘었다. 참담한 마음에 주먹 꼭 쥔 사람
민주노총은 22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일본 핵 오염수 해양투기 저지 기자회견을 열고 “바다에 버려지는 오염물질이 인체에 치명적인데도, 일본과 가장 인접한 한국 정부는 핵 오염수가 오히려 안전하다고 선전한다”며 “과거 전쟁범죄를 일으켰던 일본이 이번엔 세계를 상대로 벌이는 환경범죄에 윤석열 정부가 동참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웃지도, 그렇다고 울 수도 없는 상황을 한 장의 사진에 담는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나는 오늘도 실패한다. 법정 앞을 기웃거리던 사진기자는 회전문 나오는 사람들 표정을 읽느라 긴장한다. 굳게 다문 입을, 옆자리 선 사람 눈매를 살핀다. 일찍 들이닥친 노안 탓인가, 보이질 않는다. 눈치껏 찍는 수밖에. 웃음이 얼마간 번지는 걸 본 누군가, 만세 포즈 요청을 했는데 화이팅에 그쳤다. 손잡고 활동가 윤지선의 통화내용을 얼핏 듣고 나서야 분위기를 파악했는데, 어라, 마냥 웃는 사람이 거기 없었다. 파기환송은 기꺼이 반길 만 한 일이
서울 영등포구 대림동. 건설노조 사무실 앞에서 ‘뻗치기’하던 기자와, 교대를 기다리던 경찰이 땡볕을 피해 감나무 그늘 아래에 앉고 섰다. 어어, 저기! 누군가 외쳤고 깜박 졸던 오디오맨이 화들짝 놀라 카메라 옆으로 달렸다. 허공에 새똥이 날렸다. 미처 피하지 못한 기자가 물티슈를 찾았다. 사람들 웅성거림이 멈추지 않았다. 깃털도 나지 않은 어린 새 한 마리가 2층 옥상 끄트머리에 위태롭게 매달렸다. 곧 떨어졌다. 날개를 두어 번 휘저어 봤지만 소용없었다. 툭, 바닥에서 아직 죽지 않은 어린 새가 몇 번 고개 들어 움직였다. 옆자리
강성희 진보당 의원과 택배노조가 30일 오전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해고나 다름없는 쿠팡로지스틱스서비스(CLS)의 클렌징(배송구역 회수) 제도 폐지를 촉구했다.
깃발 올려 행진하는 사람들이 사선에 섰다. 용산 방향이다. 사선은 힘이 세다고, 시선을 잡아끄는 힘이 있다고 사진 책에서 배운다. 버릇처럼 써먹는다. 언젠가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고 외치며 분신한 청년의 이야기도 어떤 책에서 배웠다. 눈을 뗄 수 없었다. 하지만 먼 얘기였다. 노조 탄압에 항의해 분신한 사람의 이야기는 오늘 길에서 듣는다. 땡볕 아래 시커멓게 탄 사람들이 눈 붉혀가며 곱씹는 그이의 유언을 듣는다. 사실 저들 밥벌이 나선 일터가 사선이다. 죽고 다치는 일이 건설 현장에 흔했다. 온갖 불법과 탈법이 또한 많았다. 그것 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