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땀에 전 티셔츠와 장마철 습기 머금고 꿉꿉했던 이불이 땡볕 아래 잘도 마른다. 바람 타고 바스락거린다. 힘든 시절의 작은 위안이다. 지글지글 뜨거워 원망스럽던 한낮의 볕이 이렇게 반가울 때도 있는 법이다. 먹고 돌아서면 설거지가 한가득이고, 입고 돌아보면 빨래통이 꽉 차 있다며 혀를 차던 늙은 엄마 얘기를 이제는 잘 알게 됐다. 집안일은 과연 끝이 없다. 숨이 턱턱 막혀 오는 이 더위엔 그래도 끝이 있을 테니 벌게진 얼굴로 헐떡거리며 버티게 된다. 살다 살다 이런 더위는 처음이라는 딸아이 얘기에 잠시 웃게 된다. 함께 길에 나섰다가도 이러다 죽는다며 얼른 집에 들어간다. 끝간 데 없는 칼부림 소식과, 더위 속 일하다 스러진 노동자 얘기와, 그늘 한 점 없는 대규모 야영 행사 뉴스를 듣고 있자니 한숨이 깊다. 해가 길어 저녁 느지막이 빨래를 걷는다. 보송보송하고 좋은 냄새가 나는 이불을 깔고 누워 무사한 하루를 되새김한다. 꾸역꾸역 여름을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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