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낮 더위가 가실 줄을 몰라, 올 여름은 징글징글 길기도 하지. 별일도 없이 땀만 죽죽 흘린다. 집 밖은 위험하니 모니터 속 사진 몇 장과, 작아서 보이지도 않는 글자를 노려보며 보내는 시간이 늘었다. 거북목이 따라 늘어났다. 갑작스러운 굉음에 놀라 창을 열고 하늘을 보니 시퍼런 하늘이 부쩍 높다. 거기 비행기가 남기고 간 태극 문양 연기가 또렷했다. 땅만 보며 걷던 노인이, 스마트폰만 들여다보던 여중생 무리가, 아기만 내려다보던 엄마도 다 같이 하늘 보고 탄성을 지른다. 누구에게나 익숙한 그 문양이 새삼 달리 보이는 시절이다. 얼마 전 딸아이와 함께 찾아간 서울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이며 임시정부기념관에 태극기가 많았다. 인근 광화문 광장에서 멸공 횃불 치켜든 노인의 등 가방에서, ‘빨갱이 민노총’을 규탄하던 극우 보수단체의 집회에서도 태극기가 휘날렸다. 케이팝스타를 찾아 먼 길 날아온 외국인 관광객의 가방에도 태극기는 있었다. 무슨 기념일에 우리도 태극기를 걸자는 딸아이의 말에 마음 복잡해지는 이유다. 철 지난 줄로만 알았던 이념논쟁이 징글징글 이어지고 있으니 더욱 그렇다. 바쁘단 이유로 늙은 엄마 아빠 집에 간 지가 오래다. 건강하기만 하면 됐다던 엄마가 어느 날엔가는 독립운동이라도 하느냐고, 이민 갔느냐고 뾰족한 농을 친다. 어느새 부쩍 하늘 높은 걸 보니 때가 됐다 싶었다. 마침 엄마 사는 집 근처에 독립기념관이 있으니, 딸아이와 가을 소풍 다녀올 계획을 세워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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