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이 끝나지 않는다. 누구나가 지쳐 간다. 나름의 방법을 찾아 그저 견딘다. 길에 나설 이유 많은 사람들은 오늘 또 달궈진 바닥을 긴다. 얼굴 금세 벌겋게 달아올랐고 땀이 분수처럼 솟았다. 쉬는 틈에 머리 위로 쏟아진 물줄기가 시원하다. 폭염에 단비다. 잠시 더위를 잊었다. 다시 기었고 또 붉어 갔다. 숨이 가빴다. 나름의 방법으로 견뎌 나아갔다. 해고자
이걸 왜 이제야 샀나 싶은 게 있다. 장맛비 내려 몹시도 꿉꿉하던 날, 마르지도 않은 옷을 거둬 입던 사람은 빨래 건조기가 보물 같다. 틈만 나면 예찬한다. 가득 찬 먼지통을 비우며 뿌듯해한다. 저녁상 생선을 굽다가 뜨거운 기름 튀어 손 좀 아파 본 사람은 에어프라이어가 반갑다. 닭 다리를 구울지 닭 날개를 요리할지 퇴근길 행복한 상상에 젖는다. 한때 제습기가, 힘센 무선청소기가 그랬다. 저기 휴대용 선풍기도 목록에 든다. 바람 세기 보잘것없대도 폭염경보 속 땡볕 아래 절절 끓던 아스팔트에 앉고 선 사람들에게 그만한 위안이 없다.
서울 대한문 앞에 태평소와 북소리 울리면 창칼 든 옛날 옷차림 무관들이 박자 맞춰 행진한다. 스마트폰 든 사람들이 셀카 찍느라 등진 채 웃는다. 과거와 현재가 한자리 머문다. 멀리 관광 온 외국인들이 이국의 색과 소리를 살피고 듣느라 가만 섰다. 다양한 국적이 한데 섞인다. 온갖 나라 말 설명이 순서대로 흐른다. 또 성조기와 태극기, 이스라엘 국기가 거기
언젠가 농성천막 뜯겨 나간 자리에 화단이 봉분처럼 솟았다. 상복 입은 해고자들이 새로운 영정을 들고 그 자릴 다시 찾아와 비석처럼 머물렀다. 상을 차리고 조문객을 받는 일은 새롭지도 않아 누구나가 능숙했다. 갖은 악다구니를 견뎌 자리 잡았다. 땡볕 아래 쏟아지던 온갖 욕설과 저주와 조롱을 삼켰다. 달빛 아래 반복되던 군가와 랩 음악 소리를 그저 듣고 흘렸다
대~한민국, 익숙한 응원의 함성이 늦은 밤에 높았고, 새 아침 벌건 눈을 한 사람들은 목이 쉬었다. 가슴 뜨겁던 승리의 장면을 복기하느라 점심상에 콩나물해장국이 식었다. 속이 시원했다. 국무총리는 “또 현실이 상상을 앞섰다”며 축구 승리에 찬사를 보냈다. "대통령도 밀어내고 독일도 밀어냈다"며 외국방송 앵커는 놀라워했다. 단결 투쟁 결사 투쟁, 오랜 싸움
법 없이는 살아도 밥 없이는 못 살아 밥벌이 간절한 사람들이 욕을 듣고 발에 차이고 침을 맞아 가며 높은 분 시중을 든다. 언제 잘릴 지 몰라 파리 목숨이다. 지옥 같았다고, 노예였다고 전했다. 포토라인에서 고개 숙인 채 연신 죄송하다던 재벌가의 실력자들은 곧 제 발로 걸어 나왔다. 구속영장은 기각됐다. '벤데타' 가면 쓴 노동자들이 과연 법 앞에 만인이
천막에서 살지만, 또 길거리에 떠돈 지 오래라지만 저기 해고자도 한 표 쥔 게 있어 투표했다. 온 나라가 파란색으로 물들었다. 환호성이 터졌다. 약속 읊느라 입이 부르튼 정치인들이 새로운 시작 앞에 포부를 밝혔다. 그게 참 불안하다고, 마음이 편치 않다고 천막 사는 해고자는 말했다. 우리 같은 사람 신경이나 쓸까를 걱정했다. 22일째니 파란색 농성 천막은
창문 없는 공장에서 기타 만들던 임재춘씨가 오늘 세종로 오래된 천막농성장을 지킨다. 품 들여 구멍 곳곳에 뚫어 바람 지나기를 바란다. 묵은 짐도 치웠다. 여름 준비다. 이날로 4천145일째라니, 아마도 열두 번째 여름일 거라고 짐작했다. 오랜 법정 다툼 끝에 대법원은 "미래에 올 지 모를 경영상 위기에 대처하기 위한 정리해고는 정당하다"고 판결했다. 헛웃음
언젠가 광화문 네거리에 컨테이너 높은 벽이 섰다. 분노한 시민의 행진을 막았다. MB산성이라 불렸다. 사다리 따위를 동원했지만 무리였다. 불법 엄포가 따랐다. 사람들은 다치거나 연행됐다. 거기 또 언젠가 경찰 차벽이 빈틈없었고 최루액 물대포가 바닥에 꽂혔다. 밧줄 따위가 나왔지만 무리였다. 우산은 찢어졌고 버틴 사람들은 바닥을 굴렀다. 다치고 연행되고 죽었
전북 군산 문 닫은 자동차공장 안 무재해 기록판에 초록색 칸이 늘어 간다. 5월도 지금껏 무사했다. 생산라인 멈춘 공장에 드나드는 사람이 뜸하니 무재해는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초록 풀도 늘어 간다. 사람 발길, 손길 닿지 않는 자리면 어김없이 그렇다. 멈춘 공장 빈터마다 우거졌다. 봄꽃 진 자리엔 여름 들꽃이 피었다. 공장 주변 농성 천막과 현수막이 다
금속노조 파인텍지회 조합원과 연대단체 회원 등 '파인텍 고공농성 200일 공동행동' 참가자들이 공장 정상화와 단체협약 이행을 촉구하며 24일 서울 마포대로에서 오체투지 행진을 하고 있다. 전날 서울 양천구 목동에 있는 파인텍의 모기업 스타플렉스 앞에서 출발한 행진단은 25일 청와대 앞까지 사흘에 걸쳐 19.1킬로미터를 오체투지로 이동한다. 파인텍지회 홍기탁 전 지회장과 박준호 사무장은 스타플렉스가 노조와 약속한 고용승계, 단체협약 등을 이행하지 않는다며 지난해 11월12일 목동 열병합발전소 75미터 높이 굴뚝에 올라
낯선 땅 평양에서 열린 공연 제목이 ‘봄이 온다’라기에, 또 이런저런 꽃 피기에 봄이 왔구나 했다. 웬걸, 며칠 푹푹 찌더니 번개 친다. 곧 천둥소리 따랐다. 장맛비 같은 비가 쏟아진다. 앞이 캄캄하다. 땀이 많아 슬픈 사진기자들은 뜨겁거나 젖은 아스팔트 위에서 만나 서로를 도닥인다. 서머 이즈 커밍, 고난의 계절 여름 앞이다. 눈으로 흘러든 땀은 쓰렸다.
봄이라고 강변이며 또 어디 공원에는 원터치 텐트가 빼곡하다. 발 뻗기도, 앉기도 빡빡한 그 좁은 곳에서 연인은 나란히 다정했고, 뛰놀다 지친 아이들이 누워 뒹굴다 잠들었다. 식어 빠진 치킨에 김빠진 맥주라도 곁들이면 만찬이었다. 민들레 홀씨와 흙먼지쯤은 양념이었다. 오늘 세종로 소공원이며 정부서울청사 앞에도 텐트와 돗자리며 농성 천막이 빼곡하다. 소공원 쪽
평소 아이를 돌봐 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멀리 사는 엄마가 말했다. 괜찮다고 대답했지만 아쉬울 때가 있다. 노동절에 출근하려는 데 아이 맡길 곳을 찾느라 가슴 졸여야 했다. 가깝지도 않은 처가에 아쉬운 소리를 좀 했다. 장난감 선물 인심 후한 할머니 품에 안겨 아이는 하루 잘 지냈다. 품에는 평소 노래를 부르던 변신 공룡을 끼고 있었다. 장난감 쇼핑에 심취했던지 마트에서 그만 바지에 쉬를 했단다. 그러거나 말거나 새 팬티와 바지 입고 아이는 저녁 내내 신났다. 마음이 놓였다. 할머니는 해결사였다. 할머니 등은 편안한 침대였고, 할머니
어린이집 소풍날 아침, 도시락 가방 싸는데 저 원하는 포크와 숟가락 따위 골라 가며 꼼꼼하게 참견하던 아이가 어제 산 지도 위에 엎어져 뒹군다. 하나 배웠다고, 여기가 우리나라라며 가리킨다. 나라마다 선으로 나뉘어 있단다. 과연 한반도 허리를 가르는 선은 거기 지도에 없었다. 아이 보기엔 한 나라였다. 서울에서 평양 거쳐 대륙으로 뻗는 길도 구불구불 이어져
늦은 벚꽃 바람에 날려 마석 모란공원 오솔길이 꽃길이다. 노조 조끼 입은 사람들이 그 길 따라 올랐다. 손에 든 비닐봉지엔 사과와 배, 소주 따위 제수가 들었다. 길옆으론 진달래가 피었다. 꽃 떨군 자리에는 연초록 새잎이 돋아나 봄볕에 반짝거렸다. 무덤가에도 봄이 깊었다. 일행은 검은 비석 앞에 머물러 절을 했다. 소주를 따랐다. 종범아 맘 편히 먹어라, 약속 지켰다. 노조 지회장이 혼잣말했다. 비석에 새긴 사진이 참 이상하지 않냐고 물었다. 이쪽저쪽에서 봐도 자기를 쳐다본다는데, 사진기 든 사람들 답이 흐릿해 또 혼잣말에 그쳤다.
머리 위 냉면 국물은 찰랑거릴 뿐 넘치는 일이 없다. 흐트러짐 없이 자연스러운 걸음걸이는 마치 패션쇼 런웨이의 그것과 닮았다. 하루 이틀 솜씨가 아닐 테다. 오랜 노동의 성취였다. 시장통 흔한 풍경이다. 늙은 엄마도 한때 고춧가루며 참깨 자루를 머리에 이고 다녔다. 한 손엔 비닐 주머니를, 또 한 손으로는 어린 자식 손을 잡아 챙겨야 했으니 곡예는 필요한
동료 영정을 든 사람들이 서울 서초동 높은 빌딩 앞에 모여 죽음의 이유를 물었고 삼성 깃발을 불태웠다. 소화기 든 경찰이 뛰어들어 불을 껐다. 연기가 자욱했다. 눈 벌건 사람들이 차 벽 앞에서 울었다. 노조 탄압 때문이었다고 외쳤다. 2013년의 일이다. 노조 출범 4개월이 채 안 된 때였다. 그해 'S그룹 노사전략' 문건이 공개됐다. 노조와해 전략과 문제인력 이름이 거기 빼곡했다. 흐지부지, 미제로 남았다. 다음해 5월, 또 사람이 죽었다. 남은 사람들은 상복 입고 길에서 한 가족처럼 살았다. 곧 사람들 기억에서 잊
비닐을 깔고 침낭을 늘어놓으니 저기 어두운 밤 누울 자리다. 휴업 1년여, 할 일이 없으니 못 할 일도 없었다. 천장 없는 노상이었지만 마른자리였고, 낮이면 봄볕 아래 따뜻했다. 보송보송 잘 마른 침낭에 들어 잠들기 전, 집에 전화 한 통을 잊지 않았다. 말이 길지는 않았다. 낮이면 효자로 따라 걸었다. 청와대 100미터 앞에 주저앉아 버티기를 이어 갔다.
평택 자동차공장 앞에 예쁜 카페가 하나 있는데 이름이 ‘차차’다. 거기 봄볕 들어 꽃과 나뭇잎에 알록달록 생기가 돌았다. 온기 가득했다. 지난밤 몰아치던 진눈깨비에 젖은 조끼를 말리고 정리하던 남자는 쉴 줄을 몰라 또 형광등을 갈았다. 모든 동작엔 절도가 배었는데 그게 다 차 고치던 솜씨라고 했다. 카페에 왔으니 차 한잔 하라고, 차 만들던 누군가가 차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