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어린이집 소풍날 아침, 도시락 가방 싸는데 저 원하는 포크와 숟가락 따위 골라 가며 꼼꼼하게 참견하던 아이가 어제 산 지도 위에 엎어져 뒹군다. 하나 배웠다고, 여기가 우리나라라며 가리킨다. 나라마다 선으로 나뉘어 있단다. 과연 한반도 허리를 가르는 선은 거기 지도에 없었다. 아이 보기엔 한 나라였다. 서울에서 평양 거쳐 대륙으로 뻗는 길도 구불구불 이어져 있다. 옛날에 같이 살았는데 어른들이 크게 싸워서 지금은 갈라져 산다고 했다. 그럼 그 사람들은 영어 말하냐고 아이가 물었다. 같은 말 쓴다, 가족이었는데 못 보는 사람도 있다고 구구절절, 아빠는 아침 분주한 시간을 깜박 잊고 평화며 통일에 대한 오래 묵은 상상을 펼쳤다. 적절한 표현 고르느라 말이 자꾸 끊겼다. 반공 포스터를 그리고 평화의 댐 모금에 코 묻은 돈 뜯기며 자란 탓이다. 우리 대통령하고 북쪽 국무위원장이 내일 만난다고 알려 줬다. 사이좋게 지내보자고 하는거라고 또 구구절절. 아이는 지루했던지 세계지도 위 남극 방향에 누운 고양이와 손발 맞춰 투닥거렸다. 나중에 평양으로 소풍 가자고 꼬셨더니 금세 신나서 좋단다. 기차 타고 중국도 가자니 스페인도 가겠단다. 플라밍고 춤이라나, 어디선가 보고 배운 허튼 몸짓을 선보였다. 그래 소풍 가자. 도시락이며 달달한 간식 싸 들고 어디든 가자. 기차 타고 칙칙폭폭, 자동차 몰고 붕붕 가자. 일단 어린이집엘 가자. 지각할까 봐 마음 바쁜 아빠가 약속을 남발했다. 평소 재촉하던 목소리만 높던 아침 시간이 오늘 제법 평화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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