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법을 둘러싼 논란이 한창이다. 6월에 국회가 열리면 뜨거운 감자로 떠오를 것으로 보인다. 핵심은 기간·파견제 사용기간 연장여부다. 우리보다 일본이 이를 먼저 실천했다. 일본도 최근 이 법의 개정을 추진 중이다. <매일노동뉴스>가 일본 현지를 방문해 그 실태를 살펴봤다.


“돈도, 집도 없었어요. 이곳저곳 면접을 봤지만 부르는 데는 없었죠. 다른 선택을 할 수도 있지 않았냐구요? 제가 선택할 수 있는 건 없었습니다.”
스즈키 시게미츠(36)씨는 파견노동자다. 지난해 12월 계약해지 됐으니 정확히 얘기하면 해고자였다. 4년 동안 같은 공장에서 같은 일을 했지만 3번이나 소속회사가 바뀌었고, 스즈키씨는 그때마다 회사 소속인 기숙사를 옮겨 다녔다.

스즈키씨가 4년간 일한 곳은 일본 최초로 트럭·버스의 디젤엔진을 생산한 ‘(주)미쓰비시후소버스·트럭’(미쓰비시후소). 미쓰비시후소는 일본에 5개, 포르투갈과 대만에 공장을 운영하고 있는 글로벌대기업이다. 고용된 노동자만 1만8천여명에 달한다. 스즈키씨가 일했던 가와사키공장은 규모가 가장 크다.

스즈키씨가 가와사키공장에 입사한 것은 지난 2005년 3월이다. 도쿄에서 버스로 3시간가량 거리에 있는 미야기현 센다이시에서 영업하는 파견회사를 통해서였다. ‘동양워크’라는 이름의 이 파견회사는 센다이시 인근에서 노동자를 모아오는 모집책 역할을 했다. 스즈키씨가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고 말한 ‘파견의 길’은 여기에서 시작됐다.

두 번 팔려간 파견노동자

조립공정에 배치된 스즈키씨는 미쓰비시후소 직속이 아니었다. 나중에야 알았지만 미쓰비시후소는 구내청부(사내하청)를 활용해 트럭을 생산했다. 스즈키씨가 속한 라인은 사내하청 회사인 ‘오사카후지공업’(오사카공업)이 관리하는 구역이었다. 사내하청 회사가 지방의 파견회사를 모집책으로 내세워 도쿄(가와사키) 쪽으로 노동자들을 끌어 모으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파견회사가 어느 지역에나 있어 파견노동자를 원하는 기업은 전국적인 망을 확보하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러한 파견방식은 명백히 ‘불법’이다. 스즈키씨는 “오사카공업으로부터 ‘당신이 동양워크에서 파견된 사람이라는 것을 미쓰비시후소 사람에게 얘기하지 말라’는 얘기를 들었다”고 기억했다. 업무지시는 원청으로부터 받고, 라인은 사내하청 회사에 속하고, 계약은 파견회사와 맺었다. 2004년 제조업까지 파견이 허용되면서 파견과 사내하청이 기괴한 동거를 하고 있는 것이다.

기괴한 동거는 2006년 말까지 2년 가까이 지속됐다. 캐논과 마쓰시다 같은 대기업이 부당한 방법으로 사내하청을 쓰고 있다는 보도가 이어져 사회문제로 떠올랐다. 문제가 터지자 대기업들은 2006년 사내하청을 쓰지 않고 파견제로 바꾸겠다고 공표했다. 미쓰비시후소도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다. 당장 내부 단속부터 시작했던 모양이다. 미쓰비시후소는 오사카공업에 파견을 받아 쓰는 것은 계약위반이라며 시정을 요구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스즈키씨는 2006년 12월 오사카공업의 정사원이 됐다.

말이 좋아 정사원이지 바뀐 것은 없었다. 잔업수당을 빼고 16만~17만엔(시급 1천300엔)이던 급여수준도 같았다. 그나마 무늬만 정사원 기간은 3개월 만에 마감됐다.
오사카공업이 ‘(주)에이시오’라는 파견회사를 세워 노동자들을 다시 편입시켰기 때문이다. 스즈키씨의 소속도 오사카공업에서 에이시오로 바뀌었다.

지난해 미국 금융회사인 리먼브라더스 파산으로 시작된 경기침체와 실적악화를 이유로 미쓰비시후소는 500명을 감원했다. 지난해 12월25일 단행된 해고에 파견노동자가 440명, 기간공(기간제노동자) 60명이 이름을 올렸다. 물론 스즈키씨도 포함됐다. 현재 지방정부가 운영하는 직업훈련공 과정을 듣기 위해 면접을 기다리고 있다는 스즈키씨. 3개월간 진행되는 직업훈련공 과정에는 17명을 뽑는데 150명이 지원했다고 한다. 10대 1의 경쟁률을 뚫고서야 겨우 훈련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그에게는 마지막 남은 희망이다. 그는 “수입이 없기 때문에 생활보호제도를 이용하거나 죽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빈곤의 구렁텅이로 내모는 ‘파견’

지난해 5월 비영리단체(NPO)인 가마가사키지원기구는 넷카페(피시방)나 만화방·패스트푸드점에서 숙박하고 있는 100명을 인터뷰했다. 일본에서는 이들을 ‘넷카페 난민’이라고 통칭했다. 흥미로운 사실은 20대 후반에서 30대가 중심인 넷카페 난민들 대다수는 파견노동자였거나 현재 파견노동자 신분이라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올해도 이어지고 있다. 도쿄 시내 만화방과 피시방에는 낡은 구두가 복도에 나와 있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20대 후반인 A(남)씨 역시 그런 생활을 했다. 그는 일용등록 파견노동자다. 파견회사에 이름을 올려놓고 일이 생길 경우에만 계약을 맺는다. 한 현장에서 하는 일은 짧게는 2~3일에 끝나고 보통 1주일 동안 이어진다. 주로 창고나 공장에서 물건을 검품하거나 구분하는 일을 해온 그는 파견회사 두 곳에 등록해 놓고 있다. 파견회사는 일자리가 생기면 휴대전화로 그에게 알려준다. 메일에 구인정보가 들어오면 직접 담당자에게 전화연락을 해서 가기도 한다.

현재 A씨는 6개월 넘게 피시방에서 숙박하고 있다. 5시간에 490엔 하는 숙박용(오버나이트패키지) 요금제를 사용하면 한 달에 피시방 숙박비로 1만엔이 든다. 사실 그는 오사카시 동북쪽에 매달 3만8천엔씩 내는 원룸이 있다. 원룸이 있는데도 야숙을 하는 이유에 대해 그는 “요새 나라와 교토 쪽 일이 잡혀 있어서 집까지 가기가 힘들다”고 말했다.

이는 오롯이 ‘교통비’ 때문이다. 교통비는 상상을 초월한다. 예를 들어 교토에서 오사카까지 신칸센을 타면 1천380엔이 든다. 그는 원룸에서 가까운 오사카시의 대기업 운송회사나 가전회사의 전지 공장, 장난감 공장, 오사카시 냉동 창고에서 일을 했을 때는 집에서 지냈다고 했다.

생활비에 비하면 급여는 터무니없이 적었다. A씨의 일급은 교통비를 포함해 6천~7천엔이었다. 보통 한 달에 20일을 근무하면 13만엔가량을 받았다. 하지만 꼭 필요한 지출을 하고 나면 남는 게 없다. A씨는 “겨우 생활을 하고 있어 저축을 할 여력은 없다”며 “건강하고 특별히 곤란한 일은 없지만 건강보험에 가입하지 않았기 때문에 병이 날까 불안하다”고 말했다.
 


소잃고 외양간 고치는 일본

지난해 6월8일 아키하바라에서 인파를 무차별 살상한 살인사건이 일어났다. 가해 당사자인 가토 도모히로(25)는 휴일마다 교통이 통제돼 인산인해를 이루는 아키하바라 거리로 트럭을 몰고 들어가 걸리는 대로 사람을 찔렀다. 7명이 사망했고 8명이 다쳤다. 가토 도모히로씨는 시즈오카현 자동차 공장에서 시급 1천300엔을 받고 일하던 파견노동자였다.

“나는 인원수 보충을 위한 부품에 지나지 않고 존재 가치를 인정받지 못해 화가 났다. 게다가 6월5일 아침 직장의 라커룸에서 내 작업복이 없어졌다.”
그가 경찰서에서 한 진술이다. 전문가들은 그의 범행이 직장을 잃게 된 ‘상실감’에서 비롯된 것으로 진단했다. 일본에선 가토 도모히로씨와 처지의 비정규직이 늘어나고 있다.

일본 후생노동성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6월까지 20만7천여명의 비정규직이 일자리를 잃거나 잃을 예정이다. 그 가운데 파견노동자가 63.9%로 대다수였고, 기간공이 21%를 넘겼다. 그 뒤를 하도급노동자(청부)가 7.8%로 이었다. 마음껏 사용하고도 책임을 지지 않는 간접고용형태인 파견노동자와 하도급노동자(청부)는 반 이상이 해고됐다.

최근 일본에선 이를 개선하려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노동·사회단체들이 움직이고 있다. 지난해 말부터 올해 1월5일까지 진행된 ‘해넘이 파견촌’이 대표적인 운동이다. 대부분 파견노동자들은 회사가 제공하는 유료 기숙사에서 생활하고 있어서 파견촌은 해고와 함께 살 곳을 잃는 노동자들의 실태를 가감 없이 보여줬다. 정치권의 경우 7월 예정인 중의원 선거에서 파견 문제가 이슈로 제기되고 있다. 일본 정부도 파견노동에 대한 규제를 강화한 입법안을 국회에 제출한 상태다.
 
지난 14일에는 정부입법안보다 훨씬 강한 규제를 담은 야당 단일안이 합의됐다. 사민당 당수인 후쿠시마 미즈호 의원은 “규제완화 때문에 비정규 노동자 문제가 일어난 것을 보면 일본 국회가 노동 재규제의 길로 가는 것은 중요한 의미”라며 “이런 움직임이 한국에 영향을 미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도쿄/ 글·사진 한계희 기자 gh1216@
통역/ 김미진(일본 조치대 석사과정)

 

 

<2009년 5월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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