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2월23일 제주대 학생생활관 철거 과정에서 무게를 이기지 못한 굴뚝이 무너지며 굴삭기를 덮친 모습. 하청인 철거업체 대표가 현장에서 즉사했다. 산업안전보건공단 재해조사의견서

하청업체 대표가 중대재해로 숨진 사고에 대해서도 법원이 원청 대표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수급인도 원청에 노무를 제공했다면 종사자에 포함해야 한다는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 입법취지가 반영된 것으로 해석된다. 법 시행 이전에는 책임을 물을 수 없었던 원청 대표의 처벌에 의미가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럼에도 여전히 선고형이 징역형의 집행유예에 불과해 ‘강제력’이 없다는 비판은 더욱 가중될 전망이다.

‘처벌불원’ 중요한 양형요소라는 법원

제주지법 형사2단독(배구민 부장판사)은 18일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제동종합건설’ 대표 홍아무개씨에게 징역 1년2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원청 법인에는 벌금 8천만원이 선고됐다. 업무상과실치사 등 혐의로 함께 재판에 넘겨진 원청 현장소장에게는 금고 1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원청 현장 관리감독자(건축이사)·원청 안전관리자(실장)·공사 책임감리자(건축사사무소 대표)는 각각 금고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이날 선고는 지난해 12월30일 검찰이 기소한 지 약 10개월 만에 내려졌다. 지난달 1일 열린 첫 공판에서 피고인들이 공소사실을 모두 인정하면서 바로 검찰 구형이 진행됐다. 배 판사는 “피고인들이 모두 범행내용을 인정하고 있고 노동자와 유족의 진술, 변사자 사체검안서와 결과보고서 등 각종 공문서를 보면 전부 유죄로 인정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가장 중요한 양형요소로 유족의 처벌불원을 가장 중요하게 고려했다”고 강조했다. 안전관리자 등이 처벌 전력이 없고 재발 방지 대책이 마련된 점 등도 반영됐다.

“노무 제공자도 보호대상” 원청 대표 기소

철거업체 대표 A(사망 당시 55세)씨는 지난해 2월23일 제주대 학생생활관 철거 과정에서 무너진 굴뚝에 깔려 즉사했다. A씨는 굴삭기를 이용해 굴뚝(높이 약 12미터) 중간 지점을 파쇄하던 중 무게를 지탱하지 못한 굴뚝 상단 부분(약 6미터)이 낙하해 굴삭기를 덮쳤다. 수사 결과 사전조사가 실시되지 않았고, 작업계획서에 위험요인이 반영되지 않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검찰은 원청 대표가 △유해·위험요인 확인·개선 절차 마련 △안전보건 관리책임자 업무수행 평가 기준 마련 의무 △안전보건 관련 종사자 의견 청취 절차 마련 및 개선 이행 △중대산업재해 매뉴얼 마련 및 이행 점검 등 안전보건 확보의무를 이행하지 않았다고 봤다.

특히 검찰은 수급인의 사망에 중대재해처벌법을 적용했다. 법이 ‘도급·용역·위탁 등 계약의 형식과 관계없이 사업 수행을 위해 대가를 목적으로 노무를 제공하는 자’를 보호대상으로 정하고 있는 점에 따른 것이다. 대검찰청은 ‘중대재해처벌법 벌칙해설서’에서 “각 단계의 수급인 자신도 원사업주의 종사자에 해당하게 되고, 개인사업자인 수급인이 원사업주를 위해 노무를 제공하는 경우 적용된다”고 해석한 바 있다. 이에 따라 A씨도 ‘종사자’로 해석했다.

선고 7건 중 무려 6건 실형 피해, 법조계 “진정한 처벌불원 의문”

법조계는 ‘종사자’ 개념이 확대됐고 실제 유죄가 인정된 점에 의미를 부여했다. 기업에서 안전보건관계법령 자문을 담당하는 정인태 사내변호사는 “전면개정된 산업안전보건법은 관계수급인의 ‘근로자’를 위한 안전보건조치 의무만 있어 하청대표가 사망한 경우 업무상과실치사상죄만 문제가 됐다”며 “법원이 하청업체 대표 사망에 대해서도 원청 책임을 물은 점은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번 사건도 ‘실형’이 선고되지 않아 비판이 지속되고 있다. 검찰은 원청 대표 홍씨에게 징역 2년을, 원청 법인에는 벌금 1억5천만원을 구형했다. 구형량의 절반 정도가 선고된 셈이다. 중대재해전문가넷 공동대표인 권영국 변호사는 “궁박한 상황에 놓인 유족의 처벌불원 의사가 진정한 것인지 의문”이라며 “부동문자와 같은 처벌불원서를 이유로 처벌을 약화한 관행이 반복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원청을 변호한 홍대겸 변호사(법무법인 한원)는 선고 직후 “항소하지 않을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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