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제경보산업 홈페이지 갈무리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처음으로 ‘법정 최저형’ 미만의 선고가 나왔다. 아파트 설비과장 사고로 기소된 공동주택 관리업체 대표가 1심에서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상시근로자 50명 이상 사업장에서 사망자가 1명 이상 발생했을 경우 경영책임자에게 1년 이상의 징역형을 처하도록 정한 법 조항에 못 미친다. 법인의 벌금형 3천만원도 법정형 상한선인 벌금 10억원의 3%에 그쳤다.

검찰의 구형량이 법정 최저형인 징역 1년에 머물러 선고형량이 더 낮아졌다. 법인에 대한 구형도 벌금 1억5천만원에 불과했다. 이 때문에 처벌 수위가 강제력을 담보하기 힘들다는 지적이 지속해서 제기되고 있다. 이번 사건까지 총 6건의 선고 중 실형이 선고된 사례는 2호 선고인 한국제강 대표(징역 1년)뿐이다.

관리업체 대표, 징역 8개월에 집유 2년 선고
안전모 미착용 ‘방치’한 관리소장, 같은 형량

서울북부지법 형사5단독(이석재 부장판사)은 12일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아파트 관리업체 ‘국제경보산업’ 대표 정아무개(62)씨와 업무상과실치사 등 혐의로 기소된 전 관리소장 배아무개(63)씨에게 각각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국제경보산업 법인은 벌금 3천만원을 선고받았다.

국제경보산업 소속 아파트 설비과장인 A씨는 지난해 4월15일 서울 동대문구의 한 아파트 1층 현관에서 사다리에 올라 천장 누수방지 작업을 하다가 약 1.1미터에서 추락해 목숨을 잃었다. 천장은 높이 3.2미터로, 약 2.5미터 높이의 사다리에 올라 확인해야 해서 추락 위험이 있었다. 하지만 관리소장 배씨는 2인1조로 작업 중 A씨가 안전모를 착용하지 않은 채 사다리에 오르는 것을 봤는데도 안전모 착용을 지시하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검찰은 정씨가 △유해·위험요인 확인·개선 절차 마련 △안전보건 관련 종사자 의견 청취 절차 마련 및 개선 이행 점검 △안전보건 관리책임자 업무수행 평가 기준 마련 의무 등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 4조를 다수 위반했다고 판단했다. 정씨가 유해·위험요인을 확인해 개선하는 업무절차를 안전관리 책임자인 배씨에게 전달하지 않아 사고가 발생했다고 봤다. 피고인측은 공소사실을 모두 인정했다.

법원은 이례적으로 대표와 관리소장에게 동일한 형량을 부과했다. 배씨의 책임을 중하게 판단한 점이 작용했다. 이 부장판사는 “피고인은 비교적 낮은 높이에서 작업한다는 안일한 생각에 사고 당시 피해자 바로 옆에 있었으면서도 안전모 미착용을 방치해 피해자를 사망에 이르게 했다”고 지적했다.

‘피해자 건강상태’ 원인 삼은 법원
법조계 “검찰이 법 적용 효과 무력화”

그럼에도 형량은 구형량에도 못 미쳤다. 이 부장판사는 피해자의 좋지 않은 건강상태가 사고에 영향을 미쳤다고 판단했다. 또 △유족이 합의해 선처를 탄원한 점 △피고인들이 잘못을 인정한 점 △사고 이후 안전보건 관리체계를 정비해 주기적으로 점검한 점을 유리한 양형으로 참작했다.

피고인측은 항소 포기 의사를 밝혔다. 피고인들을 변호한 최은영 변호사(법무법인 사람앤스마트 서울주사무소)는 <매일노동뉴스>에 “피고인 회사는 사고 이후 위험성 평가 등 안전보건 관리체계를 구축해 6개월마다 주기적으로 점검하는 절차를 마련했다”며 “검찰 구형량이 법정형 하한이라 항소하지 않는 쪽으로 정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소규모 기업에 치중한 기소에 비판 목소리를 냈다. 최 변호사는 “소규모 기업은 비용상 컨설팅을 받거나 체계를 구축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다”고 호소했다.

법조계는 집행유예 판결이 중대재해 발생 기업에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다고 비판했다. 중대재해전문가넷 공동대표인 권영국 변호사(법무법인 두율)는 “대표는 무방비 상태에서 일을 하도록 방치했는데도 검찰은 법정 최저형을 구형함으로써 약한 처벌을 의도한 것으로 보인다”며 “검찰이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효과를 미미하게 만들어 실효성을 부정하도록 만드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손익찬 변호사(공동법률사무소 일과사람)는 “일상에서 반복적으로 수행되는 작업의 중대재해에 대해서도 사업주의 안전보건 확보의무를 확인했다는 점에 의미가 있지만, 검찰 구형량이 지나치게 낮다”고 꼬집었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