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의정부지법 고양지원 청사 전경. <홍준표 기자>

하청노동자가 크레인에서 떨어진 무게 190킬로그램의 철근에 맞아 숨진 사고와 관련해 법원이 원청 대표에게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지난해 1월27일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이후 5번째 선고다.

원하청 책임자 모두 집유, 원청 법인 벌금 2천만원

의정부지법 고양지원 형사5단독(김윤석 판사)은 6일 오전 중대재해처벌법(산업재해치사)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경기 부천시 소재 소형건설사 ‘건륭건설’ 전 대표 A(52)씨에게 징역 1년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검찰이 지난해 11월30일 기소한 후 1심 결론이 나올 때까지 약 1년이 걸렸다.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등으로 기소된 원하청 현장소장과 하청 대표(실경영자)에게는 각각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이 선고됐다.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하청 소속 철근 작업반장과 크레인 운전기사는 각각 금고 1년과 금고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원하청 법인에는 각각 벌금 2천만원과 1천500만원이 부과됐다.

재판장은 약 15분간 주요 판결내용을 낭독했다. 원청 현장소장은 업체 로고가 새겨진 작업복을 입고 법정에 섰다. 방청석에는 중부지방고용노동청 관계자 2명이 참관했다. 노동청 직원들은 ‘건륭건설 중대산업재해 사건 재판 모니터링 결과’ 서류를 들고 재판 결과를 주시하는 모습이었다.

김 판사는 “피고인들이 안전보건 확보의무와 안전조치의무 불이행, 업무상 과실 등으로 인해 피해자가 사망하는 중대재해가 발생했다”며 “사고 경위를 보면 피고인들 중 일부라도 주의의무를 다했더라면 이 사건 사고 발생을 막을 수 있을 것으로 보여 피고인들의 죄책이 매우 무겁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다만 △신호수 역할을 하던 피해자의 과실 △일부 피고인이 유족과 합의 △대체로 범행 인정하면서 반성 △중대재해처벌법상 의무 이행을 위한 노력 등을 유리한 정상으로 참작했다.

법원 “건설현장 일반 매뉴얼일 뿐 현장 위험성 진단·개선 전무”

법원은 검찰 공소사실도 대부분 인정했다. 검찰은 A씨가 ‘안전보건관리체계의 구축 및 이행 조치’를 정한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4조)을 다수 위반했다고 판단했다. 구체적으로 △유해·위험요인 확인 및 개선 절차 마련 △안전보건 관리책임자 업무수행 평가기준 마련 △도급업체의 산재예방을 위한 조치 능력과 기술에 관한 평가기준·절차 마련 의무를 위반했다고 봤다.

A씨측은 재판에서 3가지 의무위반 중 1가지(산재예방을 위한 조치 능력과 기술에 관한 평가기준·절차 마련 의무를 위반)만 유죄로 인정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나머지 의무위반에 관해선 “중대재해처벌법이 정하는 절차를 모두 마련했으므로 범죄 성립이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김 판사는 유해·위험요인 확인 및 개선 절차를 마련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김 판사는 “원청인 건륭건설은 안전보건 관련 전문가와 컨설팅 및 자문계약을 체결해 안전보건 경영시스템 매뉴얼을 만들고 초청 강연과 자문을 받은 사실이 인정되지만 이는 일반적인 공사현장에서 지켜야 할 매뉴얼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건륭건설의 공사현장 특성에 따른 절차로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위험성 평가  했지만 형식만 갖춰
크레인 '한줄걸이' 위험성 누락해 사고 

아울러 위험성 개선 절차도 전혀 없었다고 질타했다. 원청은 지난해 2~3월 두 차례 위험성 평가를 실시해 평가표를 만들었다. 2월에 작성된 평가표에는 크레인 작업시 ‘한줄걸이’ 위험성 제거 필요성이 기재돼 있었다. 김 판사는 “당시 평가표는 공사현장의 실질적인 위험요인을 확인해 작성한 것이 아니라 다른 현장 경험 등을 기초로 형식적으로만 작성된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3월 작성된 평가표에는 위험요인에 대한 평가가 누락됐고, 결국 ‘한줄걸이’ 작업의 위험성이 개선되지 않아 사고에 이르게 됐다”고 꼬집었다.

‘안전보건 관리책임자 업무수행 평가기준 마련’ 또한 안전보건 경영시스템 매뉴얼 내용으로 볼 때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실제 원청 현장소장은 수사기관에서 “안전보건 관리책임자가 해당 업무를 충실하게 수행하는지 평가기준이 있는지도 모른다”고 진술했다. 김 판사는 “A씨 주장과 같이 공사현장에서 지켜야 할 일반적인 기준을 정한 매뉴얼에 관련 규정을 뒀더라도 이를 안전관리 책임자의 평가기준을 마련했다고 인정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번 사건은 지난해 3월 9일 오후 12시50분께 건륭건설이 시공한 고양시 덕양구의 한 상가 신축공사 현장에서 발생했다. 당시 철근콘크리트 공사를 하도급받은 하청업체 K사 소속 노동자 B(사망 당시 37세)씨는 이동식 크레인에서 떨어진 무게 약 190킬로그램의 철근에 머리를 맞아 목숨을 잃었다. 중량물을 단단히 고정해 이동해야 하는데 작업자가 한 줄로 철근을 크레인 슬링벨트에 묶는 바람에 인양하던 중 풀려 철근이 8미터 높이에서 낙하한 것으로 조사됐다. 상시근로자는 50명 미만(원청 18명)이지만, 당시 공사금액이 88억원이라 중대재해처벌법이 적용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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