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스무 살이 되기 전부터 하루 3교대제로 주 6일간 반도체 포토공정 노광작업과 검사 및 세척업무를 하다 너무 힘들어 몇 년을 못 채우고 퇴직한 노동자다. 그로부터 약 10년 후인 2006년 그녀는 30대 초반의 젊은 나이에 현대의학으로 완치가 없는 불치병, 노인성 질환이라는 파킨슨병을 진단받았다.입·퇴원을 반복하고 수술도 몇 차례를 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병과 좌절도 깊어지던, 병 진단일로부터 10년쯤 지난 어느 날 반도체 생산공정이 직업성 암을 비롯한 각종 희귀질환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뉴스가 들려왔다. 그녀와 가족은 곤궁
전 세계 고용은 1990년대부터 꾸준하게 줄어들고 있고, 피고용자 내부의 양극화는 더 심화하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노동소득분배율 하락과 중위소득 하락 지표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경제사학자 아론 베나나브(Aaron Benanav)는 이와 같은 고용감소의 원인이 1970년대 이후 전 세계적인 생산능력 과잉에 따른 탈공업화에 있다고 본다. 지난 수십년, 자본은 이윤추구를 위해 국경을 넘나들며 공급사슬을 재편해 왔고, 노동의 힘은 약화해 왔다.실제 선진국들의 노조 조직률은 급격히 하락하고 있다. 지난해 9월 초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
1. 막상 하고 나면 그렇지 않은데, 하기 전까지는 괜히 하겠다고 했다는 생각까지 드는 경우가 있다. 지난 23일 했던 인터뷰도 그랬다. 국회방송에서 정년연장에 관해서 인터뷰를 하고 싶다기에 재판과 상담이 없는 일정을 찾아 약속을 잡았던 것인데, 가만히 들어 보니 그냥 정년연장에 대해 인터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청년고용과 연계해서 한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정년연장의 필요성 등을 살피는 프로그램이 아니라, 청년고용에 정년연장이 미치는 영향을 중심으로 하는 것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인터뷰 시작 전까지 ‘할 일도 많은
2018년은 장시간 노동이 사회적 이슈였다.근로기준법은 1주 52시간(연장근로 12시간 포함)을 초과해 노동할 수 없도록 개정됐다. 당시 집배원의 장시간 노동 역시 큰 이슈였다. 노사와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집배원 노동조건 개선 기획추진단’은 2017년 기준 집배원 1명당 연간 2천745시간이라는 장시간 노동을 개선하기 위해 단계적 실현 방안을 강구했다. 장기적으로 집배원 1명당 연간 노동시간을 1천800시간으로 줄이자는 내용을 제시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현재까지도 집배원의 노동강도는 여전히 강하다. 그 이유는 바로 아무런 법률적
지방 소도시에서 일하던 이진오는 금속노조 지회장으로 활동하다가 해고당한다. 덩달아 이진오의 동료들도 회사에서 구조조정을 당한다. 노동자 해고를 서슴지 않던 경영진은 회사를 다른 기업에 매각한다. 마침내 이진오는 해고 노동자를 대표해 45미터 발전소 공장 굴뚝에 올라간다. 이진오와 노동자들의 주장은 아주 명확하다. ‘복직과 고용승계’.굴뚝에 오른 지 한 달이 되고, 100일이 지났는데도 회사는 아무 반응이 없다. 힘이 들지만 이진오는 묵묵히 이겨 낸다. 사실 이진오에게는 삼대째 금속노동자의 피가 흐른다. 1대 증조부 이백만은 일제 강
부산에서 제일 가는 번화가인 서면의 한복판 서면 일번가라 불리는 곳에 서면시장이 있다. 이 전통시장이 언제부터 그곳에 자리 잡았는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상인들은 1971년부터 서면시장번영회를 구성해 부산을 대표하는 전통시장으로 키워왔다. 서면시장번영회의 회원인 상인들과 시장을 찾는 시민들을 위해 사무직·시설직·주차관리직 노동자들이 일해 왔다. 이들은 항시적인 인력부족으로 사무직 노동자가 시설직 업무까지 떠맡기도 하고, 법정노동시간을 넘어 일하면서도 초과수당을 받아본 적이 없었다. 주차관리직 노동자들은 제대로 된 식사시간도 보장받지
2022년 9월15일과 16일 우즈베키스탄 수도 사마르칸트에서 열린 상하이협력기구(Shanghai Cooperation Organisation) 정상회의. 세계 역사는 이 회의를 1980년대 말 미국과 소련의 공동 노력으로 이뤄진 냉전의 종식 이후 지금껏 유지돼 온 글로벌 체제가 사실상 막을 내리고 새로운 시대로 전환된 역사적 분기점으로 기억할 것이다.2001년 6월14일과 15일 중국 상하이에서 처음 열린 상하이협력기구 정상회의는 지난 20년 동안 “상호신뢰, 상호이익, 평등, 상호협의, 문화적 다양성 존중, 공동발전 추구”의 기
한 달에 한 번 상담소의 운영비를 정산하기 위해 부천 원미구의 한 농협 점포를 방문한다. 업무상 불가피하게 직접 계좌이체를 해야 하는데 점심이 지나 오후 2시쯤 농협 점포를 방문하면 내 앞으로 4~5명 정도의 대기 인원이 있다. 대출 상담을 하는 2명의 여신담당 직원을 제외하면 입출금 창구에서 고객을 응대하는 직원은 3명 남짓이다.직원 한 명당 업무의 특성에 따라 대기하는 시간은 조금씩 달라지지만 고객 한 명당 최소 5분에서 길게는 15분 이상이니, 최소 15분에서 최대 45분으로 평균 20분 이상이 걸린다. 해가 거듭될수록 대기시
일곱 권짜리 조사보고서와 한 권의 백서가 도착했다. ‘가습기살균제사건과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의 종합보고서였다. 그동안 밝혀진 내용도 있고 이번 특조위에서 특별하게 더 조사해 알려진 내용도 있다. 많은 사회적 참사가 그 진상을 밝히지 못한 채 종합보고서를 내지 못하고 묻힌 것에 비하면, 비록 ‘세월호 침몰’의 원인은 확정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여야 합의로 만든 조사위원회의 공식 보고서라는 점에 의미가 있다. 문호승 조사위원장은 발간사에서 “이 보고서를 참사 희생자와 그 가족, 우리 국민과 미래세대에게 바칩니다”고 했다. ‘
어느 날 선배 노무사에게 지하철에서 일하는 분들의 산재신청을 준비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지하철이란 이야기에 ‘이번에도 정비직군이구나’ 싶었다. 하지만 상담 날 들은 직종 이름은 다소 낯설었다. 지하철 보안관이라고 했다.지하철 보안관은 말 그대로 지하철과 역사에서 승객들의 안전과 질서를 담당하는 사람들이다. 지하철과 역사를 순찰하며 이른바 질서저해자를 단속하고, 지하철 탑승객들에게 민원이 들어오면 즉시 현장으로 출동해 민원 사항을 해결하는 등의 일을 한다.그렇다면 지하철 보안관들의 하루 업무 중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일은
“거참 말 안 통하네.”평화로운 어느 월요일 아침. 카페의 고요한 정적을 깨는 소리와 함께 예기치 못한 실랑이가 벌어졌다. 실랑이의 주인공은 바로 나. 청소노동자에게 일방적으로 윽박지르는 사람을 차마 두고 볼 수 없어 그를 막아 세우고 몇 마디 대화를 나눴다. 그러자 곧 ‘말 안 통하는 사람’이라는 대꾸가 돌아왔다.왜 그는 나와 말이 통하지 않는다고 느꼈을까? 우리는 같은 언어(한국말)로 대화했지만 실상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비트겐슈타인의 유명한 테제처럼 나의 한계는 나의 언어의 한계다. 나의 언어의 한계는
1. ‘노란봉투법’을 두고서 야단이다. 이은주 정의당 의원을 포함해 정의당과 더불어민주당 등의 의원 56명이 지난 14일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개정안’을 제안했다. 이에 대해 사용자단체와 이를 대변하는 보수언론들, 그리고 집권여당 국민의힘을 중심으로 “노란봉투법은 민노총 구제법”(조선일보), “불법파업 부추기는 ‘노란봉투법’ 강행에 재계 ‘직장점거하는 행위 금지해야’”(헤럴드경제), “노란봉투법=황건적 보호법”(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 “노란봉투법 국회통과되면 거부권 요청할 것”(이동근 경총 부회장), “노조에
국가보안법과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이 세간의 쟁점이 되고 있다.이달 15일 헌법재판소에서 국가보안법 2조·7조의 위헌성 여부 심리를 위한 공개변론이 있었다. 종래 일곱 차례나 이 법의 위헌성 여부를 따지는 헌법재판이 있었으나 모두 합헌으로 결정 났다. 그 과정에서 공개변론은 한 번도 없었다. 또 15일에는 정의당·더불어민주당 의원을 비롯한 56명의 국회의원이 노동자의 파업권을 무력화하기 위해 남발되는 손해배상·가압류를 제한하는 일명 노란봉투법을 발의했다.필자는 이 난에서 그 두 악법 각각에 대해 의견을 밝힌 바 있다.
경로 의존성한 번 일정한 경로에 의존하기 시작하면 나중에 그 경로가 비효율적이라는 사실을 알고도 여전히 그 경로를 벗어나지 못하는 경향을 ‘경로 의존성’이라고 한다. 사회심리학이나 경제학을 비롯해 곳곳에서 쓰이는 용어다. 한편으로 보면, 익숙한 습관을 따르는 것이 가장 효율적일 수도 있다. 관습으로 자리 잡은 것들은 그것이 단지 편한 것만이 아니라 효율적이라는 것이 증명됐기 때문일 것이다.경로를 바꿔야 할 때가 있다. 특히 전환기에 ‘경로 의존성’은 그냥 퇴행이나 몰락을 의미한다. 정치권에서도, 재계에서도, 노동계에서도 전환기라는
이달 초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뜨겁게 달군 사건이 있었다. 웹툰 작가가 유산을 이유로 휴재 요청을 했는데도 거부됐고, 과로하다가 결국 심신의 건강을 해치게 된 사실이 밝혀졌다. 플랫폼측에서는 “휴재 요청을 거부한 적이 없다”고 대응했다. 이에 해당 작가는 자신이 분명히 휴재를 요청했는데도 거부당했음을 다시금 밝혔다. 다른 웹툰 작가들 역시 유사한 직·간접적 경험을 들어 작가 마음대로 휴재할 수 없는 현실을 고발했다.근로기준법 60조1항에 따라 사용자는 1년간 80퍼센트 이상 출근한 근로자에게 15일의 유급휴가를 줘야 한다. 근
재작년 여름철 일이다. 공장 내 설비 개조 공사가 잡혔다. 설비를 교체하고, 기존에 사용하던 주변 배관을 철거하고, 새 배관을 설치하는 작업이었다. 배관팀 한 팀이 설치작업을 하고 있었다. 일반적인 작업이면 숍(=공방)에서 배관을 미리 만들었지만, 공사 구간이 복잡했다. 현장에서 하나하나 용접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공사 난도가 높고, 공장 실내에서 작업할 수밖에 없었다.배관공이 현장에서 사전에 그려진 도면을 기준으로 배관을 짜고, 보조공이 배관을 그라인더로 자르고 다듬었다. 용접공은 배관을 이어 붙여 라인을 제작하고 있었다.
‘노잼 도시’ ‘공공기관의 도시’ ‘공무원의 도시’대전광역시를 말할 때 따라붙는 수식어다. 1990년 국토의 균형발전과 균등한 지역발전을 목표로 중앙행정기관의 지방 이전이 결정되고 1997년 정부대전청사로 통계청·조달청 등 각종 행정기관이 이전했다. 그 뒤 대덕연구단지·청사를 중심으로 공공기관이 타지에서 대전으로 이전해 오거나 설립했다.올해 대전청년유니온 활동을 시작하며 우리 지역의 노동이슈는 무엇이 있을지 고민했다. 함께 활동을 시작한 동료와 대화한 끝에 ‘바로 곁에 있는 청년노동자들의 이야기부터 들어 보자’는 결론에 이르렀다.
노동시장 이중구조와 관련한 두 가지 사건이 최근 눈에 띈다. 한 달 가까이 뉴스 헤드라인을 장식했던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 파업과 현대모비스 계열사 설립 노사합의다. 전자는 노사합의 이후 사측이 천문학적 손해배상을 청구해 사회적 논란이 재점화했고, 후자는 계열사가 8천여명의 하청노동자를 직접고용할 계획인데, 계열사의 타당성을 두고 노동계 내부에서 논쟁이 붙었다.원·하청 문제, 또는 노동시장 이중구조 문제는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가장 뜨거운 쟁점이다. 2000년대 이후 진보든 보수든 일관되게 실패한 정책도 바로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혁
“전대미문의 급작스러운 이동이었다. 도시의 한가운데에 있었건만, 장 발장은 도시에서 벗어나 있었다. 그리고 눈 깜짝할 사이에, 즉 뚜껑 하나를 쳐들었다가 다시 닫는 사이에, 대낮에서 완벽한 암흑 속으로, 정오에서 자정으로, 요란한 굉음에서 고요 속으로, (…) 극도의 위험에서 가장 절대적인 안전함 속으로 건너갔다.”(빅토르 위고, 중)빅토르 위고의 소설 중 장 발장이 마리우스를 업고 하수도로 도망가는 장면이다. 위고는 수십 페이지에 걸쳐 파리 하수도의 역사와 실태를 해부하고, 모습을 상세히 묘사했다.
어떻게 하다 보니 직장내 괴롭힘과 관련된 사건을 두 개 진행하고 있다. 그중 하나는 직장내 괴롭힘 피해자를 대리해 사용자의 객관적 조사 실시와 이후 적절한 조치를 촉구하는 고용노동청 진정 사건이다.해당 사건에서 사용자는 피해자의 신고에도, 일반적인 직장질서 문란 사건으로만 처리했다. 가해자에 대한 징계 역시 직장내 괴롭힘으로 인한 것이 아니라 단순 취업규칙 위반으로만 결정됐다. 그에 따라 가해자와 피해자 분리 같은 후속 조치가 전혀 이뤄지지 않았고, 가해자의 2차 가해로까지 이어졌다.이렇듯 문제가 많은 상황이어서 사건 자체는 수월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