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지원 <자본주의는 왜 멈추는가> 저자

노동시장 이중구조와 관련한 두 가지 사건이 최근 눈에 띈다. 한 달 가까이 뉴스 헤드라인을 장식했던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 파업과 현대모비스 계열사 설립 노사합의다. 전자는 노사합의 이후 사측이 천문학적 손해배상을 청구해 사회적 논란이 재점화했고, 후자는 계열사가 8천여명의 하청노동자를 직접고용할 계획인데, 계열사의 타당성을 두고 노동계 내부에서 논쟁이 붙었다.

원·하청 문제, 또는 노동시장 이중구조 문제는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가장 뜨거운 쟁점이다. 2000년대 이후 진보든 보수든 일관되게 실패한 정책도 바로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혁이었다.

노동시장 이중구조는 노동시장이 두 개의 서로 섞이지 않는 부분으로 나뉘어 있다는 뜻이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또는 대기업과 하청·중소기업으로 나뉜다. 이런 이중구조에서는 각자의 재능과 노력보다 저 구분 선에 따라 노동조건이 천양지차로 갈린다.

원인은 양자 사이에 지대(rent)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생산에 대한 기여 이상의 소득”을 의미하는 지대가 커지면, 누군가의 소득 증가가 다른 누군가의 소득 감소로 이어진다. 오늘날 한국 노동시장에서 지대를 얻는 사람은 대기업 정규직이고, 그만큼 소득을 빼앗기는 사람은 중소·하청기업 노동자 또는 대기업의 비정규직이다. 대기업이 교섭력 우위를 이용해 하청과 중소기업, 그리고 비정규직을 쥐어짜 초과이윤을 만든다. 그리고 그 초과이윤 일부를 자신의 일자리를 웬만해선 빼앗기지 않는 정규직 노동자와 공유한다. 정부가 끼어 있는 공공부문에서도 원리는 비슷하다. 노동자가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이중구조의 상층에 있는 집단에서는 노사가 지대 ‘동맹’을 맺는다.

그렇다면 왜 이런 이중구조를 수십 년간 개혁하지 못했던 것일까? 나는 대우조선해양과 현대모비스의 원·하청 쟁점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흔히 노동시장 이중구조가 외환위기 이후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과정에서 탄생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실은 그보다 역사가 길다. 이중구조는 1980년대 후반 노동자 대투쟁의 발발, 그리고 3저 호황 종료와 함께 본격화했다. 자동차·조선 같은 노동집약적 제조업에서 민주노조 운동이 활발해지며 임금이 상승하자 대기업은 아웃소싱과 기계화에 박차를 가했다. 3저 호황이 끝나면서 수익성이 악화한 것도 중요한 이유다. 예로 현대차와 대우차는 1인당 설비자산(기계)이 1990년대 초에 급증했고, 비슷한 시기에 중소기업 상생전략이란 명분으로 노동집약적 공정 상당 부분을 아웃소싱했다.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에서는 1980년대 말에 줄었던 사내하청이 1990년대부터 다시 급증했다. 당연히 이때부터 임금격차도 커지기 시작했다. 아웃소싱된 하청에는 노조가 없었고, 원청의 수익성 악화 부담도 함께 짊어져야 했기 때문이다.

대규모 아웃소싱을 동반한 자동화·기계화에 노동조합은 속수무책이었다. 무엇보다 노동조합 체계가 기업별이었기 때문이다. 단체협약은 공장 밖에서 무용지물이었다. 이 무력감이 노동조합을 더욱 임금인상에만 집착하도록 만들었다. 이런 조건에서 1998년 외환위기 이후 노동시장 유연화가 밀어닥쳤다. 파견이 금지된 제조업이었지만, 간접고용과 기간제가 자리를 잡았다. 그러자 자동차 공장에서는 양쪽 바퀴를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나눠 끼우는 황당한 조립라인이 만들어졌고, 아예 하청노동자만으로 공장 전체가 운영되는 비정규직 공장도 나왔다. 조선소에서는 전체 인원의 절반 이상을 사내하청으로 채우는 게 ‘뉴노멀’이었다. 떨어지고 으깨지는 위험한 일들도 모두 사내하청의 몫이었다.

이러한 아웃소싱과 기업별 노조의 결합이 어떤 결과로 나타나는지는 대우조선 사내하청 파업에서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십수 년간 이어진 하청의 열악한 노동조건은 원청 노조가 어쩔 수 없는 불가항력의 영역으로 방치됐고, 심지어 파업 와중에도 원청 노조는 느닷없이 금속노조 탈퇴 찬반 투표를 벌였다. 새로운 사건이라기보단 30년 넘게 이어진 아웃소싱과 기업별 노조의 역사가 참담한 형태로 드러난 것이라 하겠다.

또한 노동시장 이중구조에 대응해야 하는 노총과 산별노조의 딜레마는 현대모비스 사례에서 잘 나타난다. 민주노총과 금속노조의 최고 강령 중 하나는 간접고용까지 포함하는 비정규직 철폐다. 그런데 문제는 ‘어떻게’라 하겠다. 민주노총과 금속노조는 공식 성명을 통해 계열사 설립이 불법파견 리스크를 피하려는 꼼수라고 규탄했다. 반면 대다수의 현대모비스 사내하청 노조(지회)들은 계열사로의 통합을 통해 단일화된 사용자와 강화된 노조 교섭력을 확보할 수 있고, 이후 자동차 부품사 전반의 노동표준을 상향할 수 있는 발판을 만들었다고 주장한다.

물론 공공부문과 일부 민간기업에서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자회사 꼼수로 해결해 노동자들이 곤란을 겪은 사례가 적지 않다. 민주노총과 금속노조는 이를 강조한다. 하지만 실질적 효과를 가진 전국협약이나 산별협약이 부재한 상태에서는 ‘정규직화’가 불법파견 소송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것도 누차 확인된 팩트다. 민주노총과 금속노조의 입장은 노조의 힘이 아니라, 그리고 보편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단체협약이 아니라, “특수한 조건”에서 불법파견 판결을 받아 낼 수 있는 개별적 소송으로 정규직화를 쟁취하라는 이야기와 다르지 않다. 안타깝지만 현실이 그렇다.

한편 정부는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해결한다며 임금체계 개편을 꺼내 들었다. 핀트에서 벗어난 대책이다. 일자리 지대가 오로지 노동자 탓이라고 생각해선 안 된다. 일자리 지대는 대기업 또는 공공부문 사용자가 취하는 지대의 일부분을 공유한 것이다. 그래서 임금체계 개편의 대상이 되는 이중구조 상층의 임금 유연화가 밑바닥 노동자의 임금인상이라는 낙수효과로 이어지기 어렵다.

정부가 초기업적 단체협약을 지원하는 게 이중구조 개혁의 가장 빠른 길일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정부가 나선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정부가 나서 지금껏 실패했다. 노동시장 이중구조의 핵심 고리는 앞서 봤듯 노동조합의 격차다. 기업별 노조는 이중구조와 한 몸이다. 전국적·산업적으로 실현 가능한, 그리고 보편적 타당성을 가진 단체협약을 체결하는 초기업적 노조(산별노조)가 있다면, 이중구조는 역으로 위로부터 무너질 가능성도 있다.

<자본주의는 왜 멈추는가> 저자 (jwhan7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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