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 구멍이 난 것처럼 비가 쏟아져 내려왔다. 낮은 곳, 땅 아래, 생을 기댄 이들이 갈 곳을 잃고 목숨도 잃었다. 하늘에 난 구멍보다 더 큰 구멍들이 사회적 안전망 곳곳에 나 있었다. 숨이 들고 나는 틈이 되지 못하고, 사람을 가두고 사람을 삼키는 덫이 된 구멍들이 엉켜 결국은 거대한 닫힌 세계를 이룬다. 쏟아지는 비는 흐르지 못하고 삼키고 쓸어가 버린다. 내내 고인다. 일하는 이들, 가난한 이들이 몸을 피할 곳, 생을 견딜 곳을 더는 찾기 어렵다.115년 만의 폭우.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자료에 따르면(15일 오후 6시 기준)
얼마 전 대법원에서 유의미한 판결이 나왔다(대법원 2022. 7. 14. 선고 2022두33323 판결). 가해자 방어보다 피해자 보호를 우선에 두는 내용이다.가해자는 2심에서 피해자들을 익명으로 처리하는 바람에 피해자를 특정할 수 없어 가해자 방어권이 제대로 보장되지 않았다고 주장했으나, 대법원은 피해자의 2차 피해 등을 우려해 가해자 주장을 배척했다.관련 기사를 보자마자 일전에 서울시에서 권익조사관으로서 다뤘던 사건과 유사해 반가운 마음에 대법원 판결문을 찾아봤다. 당시 가해자는 위 대법원 판결의 가해자와 같은 논리로 대응하며
1. 오랜만이었다. 머리가 뜨겁게 달아오르고 심장이 붉게 뛰었다. 자유와 인권, 민주주의…. 느닷없이 튀어나온 말에 내 머리와 심장은 제멋대로 날뛰었다. 푸른 청춘의 기억들이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그 말 하나에 이 나라의 광장과 거리로 뛰쳐나갔던 시절이었는데, 그 시절을 떠올리다니 엉뚱했다. 그 단어만으로 다시 달아오르고 뛰다니 분명히 머리도 심장도 내 것이 아닌 듯 반응하고 있었다.“자유와 정의, 인권의 가치를 최우선으로 삼는 당원과 지지자도 있다”며 “오로지 자유와 인권의 가치와 미래에 충실한 당이 돼야 한다” “민족주의와 전체
노동시장 개혁을 위한 ‘미래노동시장연구회’가 지난달 18일부터 매주 회의를 열며 활동을 시작했다. 4개월간 노동시장 개혁 방향을 정리해 제도개선안을 정부에 제시할 계획이다. 12명의 교수로 구성된 연구회는 윤석열 행정부의 노동정책의 근간을 만든다고 알려져 출발부터 관심을 모았다. 과연 연구회가 좋은 변화를 이끌 수 있을까. 나는 구성원이 풍부한 내용과 식견을 갖춘 학자임을 의심하지 않는다. 다만 민주주의라는 운영 원리상 행정부 소속 위원회로, 그것도 연구자만으로 좋은 정책을 만들 수 있는지 의문이다. 그들의 가치나 방향성 혹은 학문
집권여당이 사퇴 의사를 밝힌 사람까지 불러 최고위원회를 열 만큼 다급했다.“친윤그룹이 주도하는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회가 속전속결로 출범 수순에 돌입했다. 국민의힘 최고위원회는 지난 2일 사퇴하겠다는 최고위원들을 불러 비대위 체제 전환을 최종 결정할 상임전국위원회 및 전국위 소집 안건을 의결했다.”집권여당이 절차적 정당성 논란까지 일으키면서 비대위로 전환했다고 비판한 이 기사는 “‘사의’ 배현진 불러 정족수 채운 與 최고위 … 親李 ‘위장 사퇴 쇼’”라는 제목을 달았다. 이 기사는 보수·극우정당을 좋아하는 매일경제 8월3일자 6면 머
하이트진로에서 생산된 주류를 배송하는 화물연대 소속 물류 노동자들이 운임 정상화를 요구하며 파업을 벌이고 있다. 하이트진로는 하청 물류회사 소속 노동자들과 하청 회사 간 문제로 “자신들은 관계없다”며 억울해한다.상담을 하다 보면 대기업이나 중견기업에서 물류나 청소 등 외주 업무를 수행하는 하청노동자들의 상담이 비일비재한데 형식적으로는 하이트진로의 주장이 맞다. 물류노동자들은 하이트진로와 근로계약을 체결한 노동자가 아니다. 이들은 하이트진로의 물류 배송업무를 위탁받은 하청업체와 계약을 맺고 일을 한다. 그러니 하이트진로 입장에서는 ‘
51일간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들의 파업이 끝났다. 그런데 이후가 더 중요하다. 하청노동자들이 온몸으로 드러낸 현실을 바꾸는 것은 지금부터 시작이기 때문이다. 조선업의 중층적 하도급 구조를 어떻게 바꿀 것인지, 왜곡된 임금구조는 어떻게 바꿀 것인지에 대한 논의도 이제 시작되고 있다.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들의 투쟁에서 드러났듯이, 기업들이 손해배상을 파업권 침해 도구로 사용하는 일이 많아지고 있다. 그래서 파업에 대한 손해배상을 엄격하게 제한하는 ‘노란봉투법’ 제정 필요성도 커지고 있다. 그런데 손해배상 면책은 노사관계에서 성립한다
폴란드에 가는 기차 안에서 글을 쓴다. 7시간 동안 기차를 달려 도착할 곳은 크라쿠프다. 바르샤바 이전엔 이곳이 폴란드 수도였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소금 광산이 있고, 공산주의 시대에 건설된 계획 도시인 ‘노바후타(Nowa Huta)도 있다. 크라쿠프에서 기차로 한 시간 거리엔 프랑스어로 오시비엥침이라고 불리는 작은 도시가 있다. 독일어로 더 널리 알려져 있는데, 아우슈비츠로 불린다. 독일 나치 시대의 강제수용소가 이 도시에 있다.수용소 입구에는 ‘노동이 그대를 자유롭게 하리라(Arbeit macht frei)’라는 문
해고는 임금을 받아 생활하는 노동자에게 당장 생계를 위협하는 가장 무서운 말이다. 사용자가 내뱉은 “너 나가”는 근로자에겐 당장 목숨줄이 달린 문제가 된다. 근로기준법 적용을 받는 택배노동자는 근로기준법에 따라 해고 제한 조항이 적용되므로 그나마 안정적인 계약관계가 유지되는 편이다. 해고가 근로자의 의사와 무관하게 사용자의 일방적인 의사표시로 이뤄지는 만큼 근로기준법은 23조부터 27조까지 해고의 이유과 절차, 방식을 제한하고 있다. 그리고 이를 위반하는 경우 해고를 무효로 한다.근로기준법상 근로자의 지위에 있다면 사장이 근로자에게
1. “사내하청은 파견이다.” 지난달 28일, 포스코 광양제철소의 사내하청업체 근로에 대해서 파견근로에 해당한다는 대법원의 판결 선고가 있었다. 당사자인 원고 노동자들은 물론이고, 많은 노동자들이 환호했다. 원고들과 같은 사내하청업체 소속으로 포스코 광양제철소에서 근무하고 있는 노동자들뿐만 아니라, 포스코에서 근무하고 있는 다른 사내하청업체 소속 노동자들, 그리고 포스코와 같은 작업 방식으로 제철소에서 근무하고 있는 사내하청업체 소속 노동자들, 나아가 제철소를 넘어 자동차·조선 등 유사한 방식의 사내하청 노동자들까지도 자신들도 원청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성별에 따른 임금격차가 가장 심각한 나라로 분류된다. 남성이 월평균 100만원의 임금을 받으면 여성은 68만원을 받는 것으로 조사된다. 이전 문재인 정부에서는 성별 임금격차 해소 등을 위해 직무급제 도입 계획을 밝혔다. 이는 직무급제가 차별받는 노동자를 위한 ‘공정한 임금’이라 판단한 것이다. 물론 출산과 양육부담 때문에 경력단절이 빈번한 여성들에게는 개인의 장기근속 여부에 따라 연공혜택이 차별적으로 작동한다는 점에서 호봉제가 일부 불리하게 작용할 우려가 있다. 그러나 이미 직무급제가
뛰어난 복지혜택, 저녁이 있는 삶, 사기업에 비해 안정적인 고용관계, 시간이 지날수록 호봉이 올라가 상향되는 봉급 등 다양한 장점을 가지고 있는 직업이 있다. 그 직업이 되기 위해서는 엄청난 경쟁률을 뚫어야 한다. 합격의 문턱을 넘기 위해 긴 시간과 엄청난 노력을 들여야 한다. 투입한 시간과 노력에 대한 보상심리일까? 합격 후 그들의 업무처리 방식은 참담하다. 관료제의 대표적인 예시로 인용되는 그 직업은 관료제의 장점이 아닌 문제점만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그 직업의 문제점과 관련한 사례를 소개해 본다. 단언컨대, 이 글을 보는 모
37.8도. 사람의 체온이 아니다. 2022년 어느 초여름 저녁 쿠팡 물류센터 내 온도였다. 아직 열대야가 시작되기도 전인 7월 초 한밤중 온도였다.여름이 시작되면 폭염에 대비하기 위한 고용노동부의 지침이 나오지만, 더위가 그 기세를 꺾고 물러날즈음 폭염대책에 대한 논의도 사그라든다. 여름은 점점 길어지고 더위의 정도는 심해지지만, 더위에 노출된 노동자들을 위한 실질적인 대책은 마련되지 않고 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실외 작업 중심으로 실효성이 크지 않은 대책이 반복되고 있다는 점이다. 산업안전보건법은 고온에 의한 장해를 예방하기
언제나 밀당관계에는 밀당이 있다. 밀고 당기기는 탄생부터 시작된다. 한 몸이던 엄마와 아이는 서로를 밀어내 출산한다. 아이는 배고프거나 아프면 울음으로 엄마를 당긴다. 관계의 밀당은 성장하면서 친구 관계나 연애에서도 부단히 작동한다. 너무 매달리면 관계는 기울고 너무 밀어내면 관계는 끊긴다. 사업이나 계약에도 밀당이 벌어진다. 밀당 없는 관계가 좋을까. 그러나 밀당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다.집단적이고 사회적인 관계에서 밀당은 규모나 작용하는 요소들에서 차이가 있다. 그럼에도 밀당이 작동한다. 정치에서도 너무 경쟁 정당을 밀어내면 정
국가권력 서열 3위의 막강한 실력자 낸시 펠로시 미 하원의장이 지난 3~4일 양일간 한국을 방문했다. 예고되지 않은 방문이었다. 상대국 대통령의 여름휴가 중에 들이닥친 느닷없는 방문이었다. 이걸 놓고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해 윤석열 정권에 비판적인 쪽에서는 대통령이 휴가를 취소하고 그를 만났어야 한다는 둥, 오산 미군기지 비행장으로 입국했을 때 정부 대표가 아무도 영접하지 않은 것은 의전상 큰 결례라는 둥 비판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문제 삼아야 할 것은 국회의장이라는 일국의 고위 당국자가 상대국을 공식 방문하면서 그 나라 최고 권력자
지난달 프리랜서로 일하는 조합원의 ‘임금체불’ 노동상담이 들어왔다. 사실상 (임금)근로자이지만 명목상 프리랜서인 ‘위장’프리랜서가 아니었다. 다년간 숙련(?)된 임금체불 노동상담 레퍼토리는 무용지물이었고, 근로기준법은 꿔다놓은 보릿자루가 됐다. “계속 주지 않으면 소송밖에 답이 없습니다”라고 말하고는 다른 방법은 없을까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근기법이 적용 안 되니 임금체불을 들고 노동청에 갈 수도 없고, 소송하기에는 액수가 너무 적었다. 적당한 방법이 하나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노조의 ‘위력행사’.프리랜서 조합원과 함께 ‘체불임
다른 언론이 앞서 보도한 기사를 뒤늦게 보도하는 건 맥 빠진다. 그래서 이런 기사를 물먹은 기사라 한다.지난달 22일 조선일보는 7개월 전 상대방 허락 없이 성관계 사진을 찍고 도중에 다른 사람과 통화하면서 이 상황을 중계해 논란을 일으켜 퇴직했던 유기홍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9급 비서관이 7개월 만에 8급으로 급수를 올려 복직했다고 보도했다.조선일보는 지난해 12월21일 ‘여친과 성관계 영상 찍고, 지인에 전화 중계… 與의원 9급 비서 사과’란 제목으로 이 비서관의 비리를 첫 보도 했다.한겨레는 지난해 12월과 지난달에 걸쳐 조선일
조선업 구조조정을 계기로 많은 노동자들이 조선소를 떠났다. 이들 중 일부는 경기도 반도체 공장, 울산·여수·대산(충남)의 석유화학산업단지, 발전소 같은 플랜트 건설현장으로 떠났다. 이들이 건설현장으로 떠난 첫 번째 이유는 임금이다. 임금 하락이 발생한 조선소에 비해 임금 수준이 높기 때문이다. 또 다른 중요한 문제가 있다. 안전관리다. 조선소에서 플랜트로 넘어온 작업자들과 대화를 나누곤 한다. 이들 대다수가 조선소에 비해 플랜트에서 일하는 게 상대적으로 안전하다고 한다. 임금도 임금이지만, 다치지 않고 안전하게 일 할 수 있는 플랜
옥포 조선소 하청노동자 파업으로 대우조선해양의 민낯이 드러났다. 참혹한 노동조건에 관해서는 더 말할 필요조차 없을 것 같다. 저임금·고강도·장시간 노동에 불안정한 고용, 그리고 두 배가 넘는 원하청 임금격차까지. 말 그대로 엉망진창이다.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대우조선은 세계 최상위권 대형 선박 제조업체며, 동시에 “소나기 퍼붓는 옥포의 조선소에서”라는 노동가요 가사가 있을 정도로 한국 노동운동의 중요한 산실이기도 했다. 도대체 무슨 일이 대우조선에서 벌어진 것일까.현재 기업 상태부터 보자. 솔직히 말해 대우조선은 회
빨리 온 여름이 맹렬하다. 6월부터 시작된 더위가 정점에 달했다. 봄과 가을이 짧아지고 여름과 겨울이 길어지는 기후 변화를 온몸으로 체감하는 요즘이다.더위는 약자에게 더 가혹하다. 비정규 노동자만 봐도 그렇다. 비정규 노동자는 냉난방 시설이 미비한 일터에서 장시간 노동에 시달린다. 휴식·휴가 등 쉴 권리를 온전히 보장받지 못하며, 소득이 낮아 주거 및 에너지 지출을 감당하기 버겁다.더위를 참지 못한 비정규 노동자들이 거리로 나왔다. 지난 6월23일 공공운수노조 쿠팡물류센터지회는 ‘폭염대책 마련과 성실교섭 촉구’를 요구하며 투쟁에 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