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8일 어버이날이다. 경상도 시골 부모님 댁에 왔다. 아버지만 계신다. 지난해 이맘때 어머니가 장날 읍내에서 뇌출혈로 쓰러지셨다. 앰뷸런스를 타고 응급실로 가셨다. 큰 병원으로 옮겨 수술하고 치료받았지만 지금도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신다. 자식들 얼굴을 알아보지도 못하고 재활병원에 그냥 누워 계신다. 어머니가 갑자기 없어진 시골집에 아버지만 덩그러니 남았다. 이젠 아버지가 걱정이다. 여든 남자 노인의 일상을 돌봐줄 사람이 없다. 자식들은 다 타지에 나갔고, 먹고살기 바쁘다. 그 많은 농사일보다 세 끼 식사와 빨래, 청소가 문제다.
1886년 5월1일 수많은 노동자들이 더 이상 못살겠다고 하루 8시간 노동을 외치며 분연히 일어났다. 인간다운 삶을 요구하며 평화롭게 시위했지만 정부는 총으로 노동자를 무참히 짓밟았다. 공권력의 힘은 대단했다. 곧바로 7명의 노동자를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게 했다. 노동자에게 가혹하고 사용자에게 관대했던 법이 존재했던 150년 전 미국 산업화 시대의 모습이다. 그렇게 5월1일 노동절이 생겼다. 노동절은 국가가 노동자들의 노고를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날이기에 기쁜 날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노동자들의 피와 땀으로 만들어 낸 슬픈 날이기도
공장법(factory act)을 거론하면서 한국의 근로기준법이 낡았다는 논리를 끄집어낸 이가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다. 문제는 우리나라 역사에 공장법이 존재한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일제의 조선총독부가 식민지 조선에 공장법을 도입을 고민한 적은 있다. 당시 일본인 자본가는 물론 조선인 자본가도 반발했고, 이런 저런 이유로 결국 공장법 도입은 무산됐다.조선총독부가 공장법 도입을 고려한 이유는 식민지 조선에서 자본주의가 발전하면서 노동문제가 심각하게 대두했기 때문이다. 1911년 1만5천명이던 공장 노동자수는 1943년 33만5천명으
1. 오랜만에 고향에 왔다. 늘 그렇듯 시골의 공기와 풍경, 가족들과의 시간이 마음을 달래 준다. 이런 와중에 윤석열 정부의 지난 1년을 돌아보면서 글을 쓰는 일은 참으로 곤욕이다. 시골의 정취로 정화된 몸과 마음이 다시 탁해지는 느낌마저 든다.2. 지난 1일 윤석열 대통령은 노동절을 맞아 페이스북에 메시지를 남겼다. 선진형 노사관계로 가기 위해 노동 약자 보호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하면서 이를 위해 노사법치주의를 확립하겠단다. 윤 대통령이 글을 올린 시간은 오전 11시44분. 그 시각 강릉에서는 양회동 건설노조 강원건설지부 3지
비정규직 철폐니, 비정규직 차별 철폐니 하는 예스러운 논쟁이 있다. 어느 논쟁이 흔히 그러듯 명쾌한 답은 보이지 않는다. 시민들의 인식도 이와 크게 다를 것 없었다. 노회찬재단과 한국비정규노동센터가 발표한 ‘불평등 사회 국민인식조사’에 따르면, 비정규직 문제 해결 방향으로 비정규직 규모를 감축해야 한다는 의견은 40.7%고 정규직-비정규직 임금 격차 해소는 51.5%였다. 비정규직 규모 감축도 중요하나, 현실적인 대안으로 임금 격차 해소의 손을 조금 더 들어준 것이다.올해 한국비정규노동센터의 중점 사업은 노동기본권 사각지대에 놓인
“상담소에서 이번 노동절 집회에서 정부에 요구하는 구체적인 내용을 우리 조합원들에게 설명해 줄 수 있나요? 노동개악 막아 내자 하는데 너무 두루뭉술해서.”한국노총이 윤석열 정부의 주 69시간제 장시간 노동 가능 정책이나 노동조합 통제 강화 정책에 맞서 개최하는 5·1 노동절 집회를 앞두고 단위노조에서 교육을 요청해 왔다. 대부분 조합원이라면 언론에서 접한 윤석열 정부와 노조 사이의 갈등을 이해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던가 보다. 조합원들도 이러할 진데 노조에 가입하지 않은 시민들은 우리의 이야기를 알기나 할까.노동절은 133
유통산업발전법은 월 2회 대규모점포의 의무휴업을 규정하고 있다. 장시간 노동과 일요일 노동에 내몰리는 유통노동자들의 휴식권을 보장하는 단비같은 제도이다. 유통산업의 특성상 법률 등으로 강제성을 부여하지 않으면 회사별로 휴일을 정해서 쉬는 것, 특히 평일보다 매출액이 높은 일요일에 쉬는 것은 매우 어렵다. 이러한 특성을 반영해 유통산업발전법에서도 의무휴업일은 원칙적으로 공휴일 중에서 지정하되, 예외적으로 이해당사자와의 합의를 거쳐 공휴일이 아닌 날로 변경할 수 있도록 했다. 이에 따라 많은 지방자치단체들이 매월 둘째, 네째주 일요일을
하루 한 페이지, 오늘의 노동일력(instagram.com/laborcalendar)을 공유하는 일로 매일 아침, 잠의 세계에서 깨어난다. 일력에는 지역과 전국의 노동자들이 서로에게 건네는 마음을 담은 문장과 함께 기억하고 싶은, 기억해야 할 삶과 죽음의 기록들이 담겨 있다.한 해의 첫 절기 입춘부터 5월의 첫날까지 지난 87일. 노동·사회 운동의 역사적 투쟁들, 어떤 승리, 어떤 패배, 저마다의 상흔들과 날마다의 죽음들을 되짚는다. 어느 날에는 “작업물은 2분에 한 번씩 저장하는 습관을 들여야 합니다(2분 동안 대단한 일이 일어날
1. 다시 5월1일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노동절을 기념했다. 나라와 정당, 노동단체에 따라 목소리는 제각각이었지만, 2023년 세상은 노동절을 기념했다. 1886년 5월1일 미국 시카고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총파업투쟁을 하고, 3일 파업투쟁을 벌이던 맥코믹 공장 노동자를 향해 경찰이 발포하고, 이에 격분해서 4일 헤어마켓 광장에서 열린 규탄집회에서 경찰의 사격으로 70명 넘는 사상자가 발생했던 사건으로부터 137년이 지났음에도 오늘 세상은 여전히 기념하고 있다. 당시 노동자들의 총파업투쟁은 8시간 노동제 쟁취를 위한 것이었다. 하루
노동절 집회에 가려고 이른 점심을 먹으려다 민주노총 건설노조 강원건설지부 3지대장 동지의 분신 소식을 접했다. 동지는 노동절인 1일 오후 3시 구속영장 실질심사를 앞두고 있었다. 그는 아침 9시 30분께 춘천지방법원 강릉지원 앞에서 스스로 몸에 불을 당겼다. 하필 노동절에 영장실질심사라니. 하필 날은 왜 이리 화창한 건지. 평범한 사람을 투사로 만드는 세상이 분하고 억울하다. 동지의 분신을 두고 글을 쓰자니 눈물이 멈추지 않는다. 그래도 쓴다. 동지의 투쟁이, 건설노조의 투쟁이 한낱 뉴스거리로 그냥 지나가서는 안 되겠기에.동지가 소
주말에 아이를 데리고 직업체험 테마파크에 다녀오며 노동과 직업에 대한 이런저런 생각을 할 수 있었다. 이 글은 그 두 번째 이야기이다.지난 10여년 사이 이곳저곳에 직업체험관이 들어선 데는 직업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교육문화 확산과 무관하지 않다. 요즘은 유치원에서도 ‘장래희망, 내 꿈 찾기’ 수업을 자주 한다. 대학입시도 적성에 맞는 직업과 학과를 결정해 동아리 등 관련 활동 이력을 평가항목으로 삼는다. 그런데 이런저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특정 직업에 대한 선호로 인한 경쟁과 기피직업의 만성적 노동력 부족은 왜 더 심해질까.한국사회의
청년유니온은 창립 당시부터 최저임금에 주목했다. 최저임금이 근로기준법상 노동자에게 보장되는 최저선의 임금이기에 사회에 진입하는 청년세대가 최저임금 수준을 받게 될 거라는 예측, 경험적으로 각종 아르바이트를 수행하는 청년들이 최저임금 혹은 최저임금마저 받지 못하는 현실을 때문이었다. 청년유니온은 “최저임금은 청년임금”이라는 구호 아래 최저임금 인상 요구를 캠페인, 기자회견, 관련된 일터의 실태조사를 통해 지속적으로 대응했다.탄핵국면과 함께 사회적 요구들이 분출하는 가운데 최저임금 인상담론 또한 불평등을 완화할 수 있는 기재로서 사회적
나는 지난 4월7일자 이 지면에 ‘챗GPT’가 얼마나 블랙코미디인지 소개했다. 최근 미국 콜로라도대학과 텍사스대학 연구진이 챗GPT 같은 대형 언어모델을 가동할 때 데이터센터 열을 식히는 데 쓰는 냉각수 양을 분석해 발표했다. 연구진은 챗GPT와 문답 50개 정도를 주고받을 때마다 생수 한 통 분량의 물이 필요하다고 했다.(조선일보 4월25일 B1면, ‘물 먹는 하마, 챗GPT’)연구진은 지구온도가 2% 상승하면 전 세계 30억 명이 만성 물 부족에 놓인다고 우려했다. 그런데도 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은 지난 18일 하버드대
고용노동부가 지난해 말 발표한 우리나라의 노조 조직률은 2021년 말 기준으로 14.2%를 기록했다. 노조에 가입할 수 있는 임금노동자 2천58만6천명 중 293만3천명이 노조에 가입한 수치다. 이와 별도로 통계청의 경제활동인구 부가조사에서 집계되는 노조가입률은 2022년 8월 기준으로 12.4%다. 2천172만4천명 중 269만2천명이 가입한 것으로 나타난다.두 통계가 보여주는 것은 문재인 정부가 출범했던 2017년 이후 노조조직률의 뚜렷한 상승 흐름이다. 노동부 기준으로는 2016년 10.3%였던 노조조직률이 2017년에는 10
여전히 ‘노동시간’이 문제다. 1차 세계대전의 포화 속에서 국제노동기구(ILO)가 출범한 1919년 채택된 1호 협약이 바로 노동시간 협약이다. 백 년도 전에 “1일 8시간 노동 또는 1주 48시간 노동”을 국제노동기준으로 채택한 것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아직도 ‘1주일 평균 69시간 일해도, 아니 1주일에 80시간 이상 바짝 몰아서 일해도 괜찮다’고 강변하는 정부 밑에서 살고 있다.백 년 전 기준에도 미달하는 노동법도 문제지만 그런 수준의 노동법마저 적용받지 못하는 노동자들이 더 많다는 현실도 더 큰 문제이다. 600만명에 달
정부가 지난 3월6일 근로기준법 일부 개정안을 입법예고 했습니다. 이른바 ‘주 69시간제’ 논쟁이 격화되었습니다. 특히 노동시간 확대에 거센 반대 여론이 형성됐습니다. 개정안 자체를 전면 철회해야 한다는 주장에도 정부는 개정안에 대한 6천명 규모의 설문조사를 실시해 가다듬을 예정이라 합니다.정부는 일률적으로 모든 노동자의 노동시간을 확대하겠다는 의미가 아니라, 노동자에게 ‘더 많은 선택권’을 줘 많이 일하고 싶은 사람은 많이 일할 수 있게 하겠다는 의미라고 변명합니다. 물론 노동시간의 ‘확대 가능성’을 열어 두는 것 자체가 사회적
임금체계는 국가별 맥락에 따라 만들어졌다. ‘호봉제’ 내지는 ‘연공급제’라 칭해지는 임금체계는 1960년대 일본으로부터 우리나라에 도입됐다. 이 시기 우리나라는 경제가 지속해서 성장하던 ‘고성장 저임금’의 경제적 호황기로, 자본가들은 눈앞의 저임금 노동을 정당화하면서며 숙련노동자를 붙잡을 수 있는 유인책이 필요했다. 그 결과, 미숙련 노동자를 저임금으로 입사시켜 근속연수가 길어질수록 임금을 점차 올려주는, 평생 고용을 전제로 성립된 연공급제가 우리 사회 전반에 걸쳐 자리잡게 됐다. 특히 연공급제는 고용안정과 더불어 생애주기 흐름에
1. 이 빌어먹을 세상은 틈만 나면 자유다. 지난 19일에는 대통령의 4·19 기념사에서 들어야 했다. 4·19로 쟁취한 자유, 민주주의가 사기꾼들에 농락당하고 있다는 취지의 말을 윤석열 대통령이 했다는 뉴스를 듣자니 이제 자유가 지겹기까지 하다. 그런데 이 나라 대통령이 말하는 자유는 무엇일까. 대한민국 대통령이 자유를 위해 이토록 강렬하게 4·19 기념 연설했다는 걸 도대체 믿지 못하겠다. 권력에 피투성이로 맞서 싸웠던 이들의 자유를 위해서는 아닐 테다. 자꾸 궁금했다. 그래서 대통령이 생각하는 자유를 생각해봤다.내가 이 세상에
노동자지원센터의 필요성을 증명하기 위해 내가 근무하는 고양시노동권익센터를 간단히 소개하고자 한다. 고양시노동권익센터는 ‘고양시노동권익센터 설치 및 운영과 관한 조례’에 따라 설립했다. 2021년 10월부터 (사)한국노동조합총연맹경기도지역본부가 운영하는 기관으로 고양시에서 노동상담 및 법률지원, 노동인권교육 등 다양한 사업을 하고 있다.먼저 우리 센터는 지난해에 388건의 노동상담을 진행했다. 이 중 사용자가 요청한 7건의 상담을 제외하면, 381건이 모두 노동자들이 요청한 상담이다. 그렇다. 우리 센터에서 상담을 진행한 사람들 대부
윤석열 대통령이 전쟁에 나설 기세다. 중국과 러시아가 상대다. 평화 보장을 천명한 대한민국 헌법 위반이다. 윤 대통령은 직접 군대를 파견하지 않으니, 별문제 없다고 변명할 것이다. 하지만 당사자인 중국과 러시아도 그렇게 생각할까.기왕 국제적 전쟁에 대한민국 군대가 나서는 것이라면 윤 대통령이 총사령관의 자리에 서야 할 텐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한미군사조약에 따라 전쟁이 나는 순간 한국군 총사령관은 대한민국 대통령에서 미합중국 대통령으로 저절로 교체된다. 70여년 전 이승만이 전시작전통제권을 갖다 바친 덕분에 윤석열 대통령은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