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세정 공인노무사 (돌꽃 노동법률사무소)

노동절 집회에 가려고 이른 점심을 먹으려다 민주노총 건설노조 강원건설지부 3지대장 동지의 분신 소식을 접했다. 동지는 노동절인 1일 오후 3시 구속영장 실질심사를 앞두고 있었다. 그는 아침 9시 30분께 춘천지방법원 강릉지원 앞에서 스스로 몸에 불을 당겼다. 하필 노동절에 영장실질심사라니. 하필 날은 왜 이리 화창한 건지. 평범한 사람을 투사로 만드는 세상이 분하고 억울하다. 동지의 분신을 두고 글을 쓰자니 눈물이 멈추지 않는다. 그래도 쓴다. 동지의 투쟁이, 건설노조의 투쟁이 한낱 뉴스거리로 그냥 지나가서는 안 되겠기에.

동지가 소속된 강원건설지부는 노조 토목건축분과위원회 산하 조직이다. 토목건축분과위원회는 형틀, 철근 등 토목 직종 건설 노동자들로 구성돼 있다. 전신은 1980년대 후반에 결성된 ‘전국건설일용노동조합’이다. (2007년 토목건축·타워·전기·건설기계 조직이 하나의 노조를 만들면서 현재의 '전국건설노동조합'이 됐다.) 지금은 건설 노동자가 노동조합 하는 게 대수롭지 않은 일이지만, 건설일용노조는 “일용직도 노동자다”, “노가다가 아니라 노동자다”라는 당연한 명제를 외치며 탄생했다.

‘일용직 노가다’들의 노조는 그간 많은 것을 바꿨다. 건설노동자도 건설업에서 퇴직하면 퇴직금을 받을 수 있고(퇴직공제), 고용보험에 가입한다. 불법 하도급(오야지) 관행을 근절해 건설업체 직접 고용을 쟁취했고, 임단협 체결로 일당과 고용안정을 보장했으며, 안전보건에 관한 부분도 개선됐다. “노조가 있어서”“노조에 들어와서” 현장이 좋아졌다는 말을 얼마나 많이 들었는지. 노가다가 무슨 노조냐는 무시와 탄압에 지지 않고 투쟁해 온 성과다.

건설현장은 무법지대다, 건폭이 활개를 친다, 노조의 폭력이 난무한다는 보도가 연일 쏟아지면서 ‘건설노조=폭력배’라는 공식은 사실인 양 되풀이 된다. 왜 이런 투쟁이 전개되었는가 하는 과정은 오간 데 없고, 투쟁 방식이라는 결과만 조명되는 행태가 억울하다.

건설노조가 무법지대를 만든 게 아니라, 건설현장이 무법지대라서 건설노조가 결성됐고 투쟁하는 것이다. 안전하게 일하고, 함부로 잘리지 않으며, 정당한 임금을 받겠다는 건설노동자의 당연한 요구와, 그 당연한 요구를 듣는 척도 하지 않는 자본과 정권에는 단 한 톨도 말하지 않으면서 건설노조를 폭력배라고 쉽게 비난한다. 어떤 노동자나 노조에도 ‘조폭’, ‘폭력배’라는 용어를 쉽게 붙이지 않는다. ‘건폭’이라는 말은 어떤 노동자를, 어떤 투쟁을 노동자 일반으로부터 분리해 낙인찍고 계급화하는 언어이며, 건설노조의 투쟁을 호도하려는 무기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탄압은 끝을 모르고 강해진다. 오로지 노조 무력화만을 목적으로 한 압수수색과 영장 청구, 15명의 구속, 950명을 대상으로 한 경찰 소환 조사, 공정거래위원회의 건설기계 노동자들에 대한 과징금 부과, 단체교섭 거부 해태, 조합원 고용 거부가 계속된다. 바로 지난주에도 건설노조 경인지역본부의 두 동지에게 영장이 발부돼 수감됐다. 당장 이번주도 전국에서 영장실질심사가 여럿 진행될 예정이다. 건설현장에 혼란을 만드는 것은 건설노조가 아니다. 건설현장이 왜 무법지대인지 모두가 분명하게 알아야 한다.

건설노조를 비난하는 사람들이 과연 건설현장에 제대로 가보기나 했을지 궁금하다. 귀가 찢어질 듯 날카롭게 울려 퍼지는 소음, 자욱한 분진, 금속과 목재로 만들어진 자재들과 콘크리트가 뿜어내는 열기가 현장을 압도한다. 노동자들은 하루종일 형틀 작업의 주자재인, 개당 12킬로그램에 육박하는 유로폼을 양손에 하나씩 2개를 들고 나른다. 나 같은 사람은 결코 불가능하다. 작업은 또 어떤가. 위아래 좌우 모든 쪽으로 몸을 돌렸다가 숙였다가 젖혔다가 하면서 끊임없이 망치를 내리친다. 반나절만 있어도 귀는 먹먹하고, 소리를 지르며 대화하느라 목은 쉬고, 분진 때문에 눈과 코가 계속 가렵다. 건설노동자들은 이곳에서 사람답게 일하겠다고 투쟁하는 것이다. 소음, 분진, 열기, 강도 높은 작업 한 가운데서 더 이상은 노예처럼 일하지 않겠다고 싸우는 것이다.

나는 수습을 마치자마자 건설노조에서 일했다. 갓 수습을 뗀 노무사로 정신이 없었는데, 건설현장을 잘 알았을 리 없다. 현장의 언어를 배워가면서 느낀 것은 건설노조는 하고 싶은 이야기가 참 많다는 점이었다. 피라미드식 다단계 하도급 구조에서 왜 이윤은 위로, 위험은 아래로 흐르는 것인지, 어째서 조합원들이 새벽마다 투쟁가를 틀고 팔뚝질을 해대는지, 노조가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모든 투쟁에 건설노조가 맨 앞에 서는 것은 왜인지. 건설은 인류의 근간이 되는 사업이며 가장 오래 이어질 사업이다. 4차 산업혁명으로 기계가 인간을 대체할 것이라지만 글쎄, 어느 세월에 기계가 건설현장 숙련공을 따라잡을까. 건설업은 쉽지 않을 것이고, 그러니 건설노조도, 건설노조의 투쟁도 함께 오래 존재할 것이다.

강원건설지부 3지대장 동지의 분신을 선택이라고 부르지 않기를 바란다. 오늘의 사건은 선택지나 대안이 될 수 없다. 동지에게 분신은 아무런 희망도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억울함, 절망감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을 것이다. 이 생각을 하면 가슴이 또 미어진다. 고통 속에 있을 동지, 그 곁을 지키는 동지들과 가족들에게 위로와 지지를 보낸다. 정부와 사법부가 침묵하지 않고 책임지기를 바란다.

이 글의 제목은 ‘건설의 노래’ 가사에서 가지고 왔다. 건설노동자가 멈추면 세상이 멈춘다. 끝내 우리가 세울 노동자 세상을 위하여 건설의 힘으로 우뚝 서자.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